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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다섯, 그 산이 멀리 바라보이는 곳에....
김태종  |  dp47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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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년 05월 26일 (화) 08:28:37
최종편집 : 2009년 05월 26일 (화) 10:51:12 [조회수 : 16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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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느님이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는 것으로 시작되는,
제물을 드릴 곳이 모리야 땅의 한 산이라는,
그래서 그 산에서 일어나는 일이
극적인 것이라는 사실이야 모를 이가 없을 터,

여기서 먼저 나는
엊그제 하갈에게 나타난 하느님이 우리 정서로 볼 때
용왕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산신의 모습이 드러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실제로 성서의 다른 곳인 열왕기상 20장 23절에는
시리아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신을 산신으로 파악했다는 말이 나옵니다.

산신이나 용왕,
그리고 구약성서 전체를 흐르고 있는 전쟁의 신으로써의 야훼,
선과 악을 나누는 율법이나 도덕의 신,
그것말고도 수없이 많은 여러 가지 모습의 신이
야훼로 수렴되고 있음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수렴으로 그칠 일이 아니라는 생각,
그렇게 수렴된 신이
각자 개인의 삶에서 각각의 상황에 적절한 신으로 환원되고
그것이 다시 집단적 종교행위를 통해 통합되고 수렴되는
거룩한 순환이 있을 때
비로소 신이 살아있다고 말하는 건강한 종교가 가능하다는 것,

이미 수렴된 신으로 모든 상황을 설명하려고 하고
거기에 개인의 종교적 욕구나 성향을 함몰시키는 것이
종교를 병들게 하는 것은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긴 하지만
그걸 고정, 또는 고착시키는 위험에서 벗어날 때에만
비로소 종교가 가지런한 숨을 쉴 수 있다는 것까지를 살피며
다음 이야기를 위해 여기서 접습니다.
(창세기 22장 1-4절)

날마다 좋은 날!!!
- 들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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