蘭 전시회에 다녀오며 2009.03.28 20:44

TV에서 난전시회를 보고는

별러서 오늘 서울대공원 식물원에 다녀왔다.

요일에 상관하지 않는 나는 사람이 많은 걸 보고서야

오늘이 토요일인 걸 알았다.

 

사람이 많거나 적거나 상관않는 나이건만

사람이 많으면 일단 신경을 쓰게 되는 건

쉬려면 앉아야 하고, 앉으려면 혼자인 게

드러나니까 내심 부끄러워서이다.

 

작업하는 아저씨에게 식물원 가는 길을 물으니

저기 삼거리에서 셔틀을 타고 가라고 친절히 일러준다.

가까이 갈 때엔 벌써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하는 수없이 걸었다.

관심밖의 동물을 보면서....

 

 

 

 

난전시는 바로 사자우리 뒤에 있는 식물원에서였다.

 

  

 

 

 

정부가 난을 사치품으로 인정하여 축하나 선물용을 금지하였다지만 

그동안 꾸준히 가꾸고 개발한 탓으로

지금은 세계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이번 전시는 15회째, 그래 그런지 규모가 크고, 관람객도 많다.

 

 

 

 

꽃전시도 요즘은 설치미술로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복주머니란이 아닌지 궁금했지만 물을 사람이 없고....

 

 

 

 

 

야외에 설치된 오두막에서 쉬면서

김밥도 먹고 따끈한 물에 커피도 타서 마셨다.

 

 

 

face painting도 구경하고

나도 소원을 담은 종이를 나무가지에 매달았다.

그게 바로 <코리안아쉬람 화이팅>이란 글씨였지만....

 

 

 

 

햇빛은 따뜻한데 바람이 차서 일찍 돌아왔다.

한 시가 좀 넘은 시간에 사람들은 꾸역꾸역 들어오고

유모차에 탄 아기들은 추울까봐 내가 걱정이다.

 

 

계단에서 넘어지고나서부터는 제일 무서운 게 계단인데

그런 계단을 오르내리며 하루를 보냈다.

오르내린 계단은 모두 3백 30여 개,

어디를 가나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으면

아무데도 갈 수 없는 요즘이 야속하기만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저 아프지말 일이다.  

 차가운 밤거리 |2009.03.27 22:02

 

 

 

나의 걸음을 멈추게 했던 목련꽃이 벌써 하나 둘 지고 있다.

목련꽃은 美醜를 떠나 그대로 피고 지련만

사람들은 꽃을 보고 좋아하고 슬퍼한다.

동백꽃은 최후의 순간까지 제 아름다움을 안고 생을 마감하는데

어찌하여 목련꽃은 까맣게 탄 가슴으로 땅에 엎어져 있는가?

 

만사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특히 요즘은 나의 최후의 그날이 떠올라 더욱 그러하다.

 

 

저녁 6시 명동 로얄호텔에서의

신인상시상식과 시낭송 있어 그때까지는 집에 있어야 하니

지루하기도 하고, 출출하기도 하여 냉장고의 맥주를 꺼냈다. 

 

한 모금, 두 모금 마시니 전길자 시인에게 말을 건네고 싶었다.

"웬일이냐?"며 놀라는 그녀의 목소리는 평생 처음 받는 나의 전화라며

이상하다는 표정이다.

그럴 리가..... 평생 처음이라니...

 

 

그래도 이야기 건네고 싶었던 사람은 전 시인이었는데....

...저...인생은 외로운거라서...함께 있어도 외롭고

혼자 있어도 외롭고...그러니 가족 틈에서 사는

전 시인은 행복한 사람이야...그런줄이나 알아...

 

내가 뭐래도 시큰둥하는 저쪽의 반응이 마음에 걸려

성당 언저리에서 사죄하듯 그녀를 위해 기도드렸다.

 

하느님만 믿고, 예수를 따라 전도에 힘쓰는 여인이 외롭다면

나라도 그녀를 위해 위로해야 하는 게 아닌가 해서.

 

 

나는 그나마 믿는 구석이 있다.

믿는 구석이 있어 그런지 아직 마음이 느긋하고 사는  재미가 있다.

그런 게 신앙인지는 몰라도 우선 살 만하니 다행한 일이다.

 

사람은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야 하고

희망이 있어야 하고, 할 일이 있어야 하고, 의욕이 있어야 하고...

그러나, 우선 건강해야 한다. 건강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의 사랑은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하고 싶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기를 원한다.

 

  

오늘 낮에 또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열두 살 연하의 동갑내기 여인인데, 대화도 잘 되지만

4월에 만날 약속이 더욱 즐거운 그런 사이이다.

끝없는 대화 속에 사랑을 나눈다는 일은 이렇게 즐거운 일.

 

오랜만에 구두를 신고 외출했다.

딸아이가 사준 예쁜 투피스를 입고 명동을 걸었다.

어두운 밤길이어서 절룩이는(?) 내 모습을 어둠이 가려주었으니 망정이지...ㅎ 

 

명동의 밤은 환했지만, 거리는 차가웠다.

서둘러 집에 오는 길에 기도같은 사랑의 편지를 띄웠으니

혹시 다음주에 답장이라도 올지 몰라...

몸이 좀 나아진 듯 해서 용인의 한택식물원에 가려고

보온병에 뜨거운 물을 담고, 김밥을 한 줄 사 들고 버스를 탔다.

820번 버스는 운행간격이 길어 한참을 기다리기 일쑤지만

오늘따라 일찍 오는 바람에 용인터미널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모처럼 신문을 사서 읽었다.

세상이야기도 읽고, 문화면도 꼼꼼히 읽으니

상식도 늘고(?) 시간은 시간대로 잘도 흘러간다.

 

 

 

입구에 들어서자

드문드문 크로커스(Crocus)가 예쁘게 피어 있는데

외래종이지만 꽃은 다 아름다운 존재라 재래, 외래종 가릴 게 없다.

 

 

 

 

튜립잎과 상사화잎도 싱그럽게 잘 자라고 있다.

다음달이면 꽃이 피려나?

 

냇가를 낀 언덕에는 복수초가 노랗게 피어 있다.

눈 속의 복수초를 보러 2월에 왔을 때는 감격했었는데

이렇게 무리지어 피었으니 매력이 반감하고 말았다.

그래도 반가워 연신 셔터를 눌렀다.

 

 

 

 

복수초 꽃잎은 한낮에 벙글고 밤에는 오무라들고

녹색 잎이 돋을 즈음은 복수초의 세월도 끝이니

어쩌면 오늘 복수초의 절정을 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초입을 지나면 못이 있는데 노랗게 피어있는 꽃이 개나리인줄 알았더니

장수만리화라 한다. 자칫하면 모두 개나리로 착각하기 십상인 꽃

설명을 읽고 다시 꽃잎을 자세히 보았다.

 

 

 

토요일 아침이라 사람이 없다시피 해서

뒷짐지며 한가하게 걸으며 두리번거리며....

해마다 그 자리에 피는 괭이눈이 그리워

오늘도 찾아가니 과연 괭이눈이 무리지어 피어 있다.

그러나 작년보다 훨씬 양이 줄은 상태.

 

  

 

가운데 노랑꽃이 앙증맞지만

열매가 익으면 두 개로 찢어지는 것이 마치 고양이눈 같다 해서

괭이눈이라고 이름 붙였단다.

워낙 귀여워서 야생화 리스트에는 꼭 끼는 괭이눈이지만

달력에도 가끔 실리는 야생화.

 

 

꽃도 꽃이지만 풍경도 좋다.

물에 제 모습을 비추는 저 소나무는 온종일 무슨 생각을 할까?

생명이 있는 것은 靈이 있을 것이니

필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 텐데....

 

온종일 몸을 물에 담가도 젖지 않는 소나무

물과 함께 하면서도 끝내 하나일 수 없는 존재

하늘이 그리워 그림자에 몸을 담고 있는 저 소나무가 

바로 나 같아 쓸쓸했다.

 

 

 

아무리 큰 눈을 가졌다 해도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존재인

목각이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

 

목각을 한참 바라보다가

몸져누운 처절한 맥문동을 보면서 옛날의 김수영 시를 떠올렸다.

 

 

직원이 지나가면서 노루귀를 보았느냐고 묻길래

못보았다고 하니 저쪽에 있다고 친절하게 일러준다.

아! 노루귀, 처음 보는 노루귀

사진으로만 여러 차례보아왔던 꽃이라 반가웠다.

이만 해도 오늘의 수확은 충분하여

엎드리다시피하며 사진을 찍었다.

 

  

  

 

보송보송한 솜털을 찍기에는 내 카메라 성능이 부족해

아쉬워하면서 마음을 달랜다.

 

 

 

새소리, 물소리 어우러지는 자리에서 잠시 쉬었다.

 

  

 

 

 

아!

얼레지!

4년 전에 소백산에서 처음 만난 얼레지를 보았다.

대체로 높은 산에서 자라는 얼레지가

이렇게 따뜻한 남쪽에서 살자니 어찌 기를 펴겠는가?

잎 표면에 얼룩무늬가 있대서 얼레지라고 했다는 꽃

오늘 얼레지까지 보았으니 이것으로도 족한 하루.

 

집에 돌아온 나는 녹초가 되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하루였다.

꽃도 정감 있는 식물이라서 알게 모르게 나를

위로해주었다고 여기니 그런대로 기뻤다.

 

나도 꽃 같은 존재이고 싶지만 과욕이고 허욕일 터

오늘밤 나는 꽃같은 꿈을 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