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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만남 이야기
오늘 교회 청년들과 점심약속이 있어서 버스를 타고 나올 때 있었던 일입니다.
버스를 타고 40분 가량 가는 길이라 마음 편하게 앉아 책을 펴들고 읽고 있었습니다. 얼마 가지 않았는데 휴대전화 벨이 울렸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어떤 여자분의 음성이 들려왔고 방현섭 목사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습니다. 전화의 내용은 00카드사에서 목회자를 위한 신용카드를 발급해 주니 가입해보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대부분의 텔레마케터는 자사의 상품이 타사의 것보다 월등하게 좋으니 꼭 쓰시는 것이 신상에 이로울 것이라고 하는데 이 분은 좀 독특하게 어차피 경쟁하는 것이니 일단 6개월 정도만 써보시고 그 다음에는 알아서 하라시더군요. 그러면서 줄줄줄 카드의 혜택에 대해서 열거를 하는데 항공사와 제휴해서 마일리지를 타사에 비해 많이 적립해준다는 것입니다.
저는 해외여행 자주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면서 카드가 이미 너무 많아 연회비 등이 부담돼서 새로운 카드는 쓸 일이 없다고 정중하게 거절하였습니다. 제 말을 듣고는 창세기 1장의 말씀을 들면서 하나님이 충만하고 번성하고 다스리고 지배하라고 했는데 목회자들도 너무 딱딱하게 살 필요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목회에 지친 몸과 마음을 해외여행을 하면서 사모와 함께 풀 수 있는 기회를 이제는 누리면서 살라는 말입니다.
막무가내로 대꾸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솔직히 카드를 새로 발급받아야 할 필요도 없고 해서 다시 거절하면서 목사가 청렴하게 살아야 하는 것 아니냐,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지만 그렇게 살 능력도 없다고 다시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버스 안이라 장황하게는 말하지 못했지만 분명하게 제 의사를 전하면서 나는 일반 사람들 사는 수준 이하로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물론 실제 생활이 100만원 안팎의 사례비와 약간의 선교비를 지원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혀 부족함 없이 행복하게 목회하면서 지낸다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반인 이하라는 말을 어떻게 들었는지 모르지만 갑자기 그 여자분이 잠시 말을 끊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후에 약간 울먹하는 목소리로 내 말을 듣고는 가슴이 찡하게 저려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자기의 얘기를 하는데 자기도 지금 신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생활이 전적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로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도 생계를 위해서 창세기 말씀을 예시하며 누리고 사시라고 말하고는 있지만 목사가 청렴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고에는 동의한다고 말했습니다. 그 여자분은 이런 마케팅 일이 아니라 얘기를 하고 싶어서 나중에 다시 전화 하겠다고 전화를 끊을 때까지 계속 울먹거리면서 아야기를 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저도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활하는데 넉넉할만큼 많은 사례비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까지 구차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이미 말한 대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했지만 사람들에게 있어서 미자립교회 혹은 작은 교회에서 목회한다는 것은 참 안 돼 보이고 불쌍히 여김을 받는 일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좀 찝찝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비록 목회의 길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목회자가 좋은 차 굴리고 해외여행 다니면서 넉넉하게 사는 것보다는 청렴하고 깨끗하게 물질에 대한 욕심 없이 사는 것이 바람직하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는 것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우리 지방도 두 해마다 한 번씩 가깝게는 동남아 지역, 멀게는 유럽까지 소위 선교여행이라는 것을 다닙니다만 때마다 지방회 돈을 쓰고 여기저기 평신도단체들의 지원을 받아 외유를 나갑니다. 선교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일반 여행이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설령 그것이 성지순례라 해도 저는 개인적으로 썩 달갑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무의미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무튼!
작은교회 목회도 사명이 있어야 하겠지요. 지겹게 들은 말이겠지만 돈 보고 목회할 생각하면 절대 못할 짓(!)이 바로 목회일 겁니다. 그런데 많은 신학생 혹은 고3 학생들이 목회의 영광스럽고 화려한 면만 보고 부흥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며 신학교에 입학하고 다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저도 처음에는 그랬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추앙을 받는 대교회 목회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미 한국교회의 성장 곡선은 하향으로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그런 특혜를 누릴 수 잇는 사람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경쟁체제로 전환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제는 그런 목회가 결코 부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목회는 따로 있으니까요.
갑자기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목회는 물질생활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과 목사는 청빈하게 사는 것이 여전히 미덕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예배당 건축으로 대출 받은 것이 더 이상 연장이 안 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좀 낙심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는 작은 교회 담임을 행복하고 즐겁게 하고 있으며 예수님이 그러신 것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물질적으로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는 사고로 목회하고 있다는 것이 감사합니다. 작은 교회를 담임하는 모든 목회동지들이 힘내시기를 빕니다.
글을 올린 후에 다시 그 여자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에서 들려오는 음성은 여전히 상기돼 있었습니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오늘 저와 통화를 한 후에 영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속에 계속 저와 통화한 내용이 생각나 결국 집으로 돌아와 성경을 보려고 앉앗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마 열왕기상 19장 말씀을 찾아보았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전화를 해서, 목사 앞에서 성경구절을 드는 것이 건방져 보이지만 저에게 그 말씀을 들려주고 싶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은 바알 앞에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이 남아 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분은 이 말씀을 저에게 들려주면서 ‘목사님, 힘내세요!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많이 눈물 흘리며 기도했었는데 목사님 갚은 분이 꼭 큰 목회자가 돼주세요.’하고 말하였습니다. 좀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그럴만한 사람도 아니고 그런 능력을 갖춘 사람도 아니니 말입니다. 아무튼 감사하고 큰 힘이 되었으며 당신 같은 분이 아직 있다는 사실에 저 자신도 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하며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진심으로.
이에 대한 논평은 별로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여러분이 읽으시면서 각자 다 느낌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전화 한 통이 오늘 하루를 무척 깊이 있게 만들어준 것 같아 감사합니다.
놓은 날 되십시오, 모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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