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뉴스앤조이 김은석 기자의 기사입니다.

	▲ 도법스님(생명평화탁발순례단장)은 "예수의 생을 보면 앎이 참되면 행동은 저절로 따른다는 걸 느낀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생명평화탁발순례 '길에서 길을 묻다'의 첫째 마당 즉문즉설 마지막 초대 손님은 도법스님이었다. "예수의 생을 보면 앎이 참되면 행동은 저절로 따른다는 걸 느낀다"라고 말하는 도법스님은 5년 동안 전국을 돌며 절보다 교회나 성당에 더 많이 갔다. 성당에서 강론도 하고 교회에서 설교도 했다. 그에게 종교의 다름은 중요하지 않다. 삶의 진정성과 진실함이 종교가 다르더라도 소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는 청중을 향해 온 우주가 '함께'라고 강조하며 "예수의 말씀처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면 삶이 평화롭고 자유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6주 동안 이어 온 즉문즉설의 마지막 시간이어서인지 청중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아쉬움 만큼 열띠게 질문하고 답한 100여 명의 청중과 도법스님의 즉문즉설을 요약했다.

겨울엔 추위와 함께, 여름에 더위와 함께

날씨가 추워지니까 없는 사람들이 더 힘들다고 한다. 달리 생각해보면 겨울에 춥지 않으면 이상하겠단 생각도 든다. 지구온난화와 이상 기온 등 환경문제를 극복하려면 실천이 중요한 것 같다.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함께' 하면 된다. 겨울이면 추위와 함께, 여름에는 더위와 함께 하는 게 세상의 이치다. 우리는 겨울엔 추위와 싸우고 여름에 더위와 싸운다. 겨울엔 여름처럼 살려고 하고 여름엔 겨울처럼 살려고 한다. 함께하지 않으면 세상도 나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겨울엔 추위와 함께 여름엔 더위와 함께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라 확신하면 스스로 잘 해결해 나갈 것이다.

상대적 빈곤에 시달리는 사람 많다.

사회적 과제다. 제도적으로 양극화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주체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자기 철학과 신념이 확립되어야 한다. 남과 비교해서 인생을 평가하지 말고 개성 있게 사는 게 바람직하고 멋진 삶이라는 신념을 가져야한다. 

국가는 어떻게 복지정책을 펼쳐야 할까.

내 기억으로는 30년 전부터 경제타령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경제는 계속 성장했다고 하는데 경제타령은 줄어들지 않고 높아진다. 최근에는 오직 '경제만이 희망'이라고 한다. 진보와 보수, 기독교와 불교, 도시와 농촌 모두 경제타령만 한다.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인다. 경제타령이 문제의 해답이 될 수 있겠나. 경제가 성장한 만큼 타령이 줄었다면 그게 해답이라는 말이 맞다. 그러나 성장할수록 경제타령이 커진다면 그게 해답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정부에 복지정책을 기대하기 보다는 우리 형편대로 대안을 추구해야 한다. 정부의 잘못을 비판하고 저항하되 실질적으로 가난한자와 약자를 보살펴야 한다. 방법이 하나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적절한 방식이 있을 것이다.

스님에게 국가는 어떤 의미인가.

국가가 있든 없든 생명·평화의 세계관으로 볼 때 현장을 존중하고, 지역의 주체를 존중해야한다. 현장과 주체를 존중한다는 입장만 견지하면 국가의 존재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얼굴이 해탈한 부처님 모습이라 들었다. 실제로 보니 소문이 맞는 것 같다. 원래 얼굴이 그랬나. 어떻게 하면 그런 표정을 가질 수 있나.

나는 남보다 낫다고 내놓을 게 없는 사람이다. 다만 인생에 대한 고민이 사무치게 많았다. 인간이 필연적으로 죽는다는 것을 인식하고 삶의 허무함 때문에 모든 의욕을 잃기도 했다. 늘 얼굴에 근심이 많다는 말을 듣고 살았다. 그러다가 내가 부닥친 존재에 대한 근원적 회의와 고뇌에 답을 내고 많은 것을 달관했다고 할까. 나쁘게 얘기하면 체념하고 포기한 거고 고상하게 말하면 달관한 거다. 그러고 나니 삶이 홀가분해졌다. 순례 5년 세월은 삶을 더 홀가분하고 편안하게 했다. 누구나 가능하다고 본다. 침묵 속에 걸음을 생활하는 순례의 길을 떠나는 것이 가장 좋은 비법이라고 생각한다. 모두 순례를 떠나자.

"순례 5년 통해 더 홀가분해지고 편안해져"
"10만 결사 있으면 우리 손으로 전쟁 막고 평화 실현할 수 있어"

일반적으로 스님 하면 참선하고 공부하는 모습을 떠올린다. 어떻게 순례길로 나섰는지 궁금하다.

사람이 죽으면 모든 것이 상실된다. 그럼에도 허무한 인생을 위해 할 짓 못할 짓 다하며 사는 거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참선해서 도통해야한다고 결심, 10년간 참선했다. 해보니까 잘 안됐다. 옆 사람들 봐도 별 수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자기모순이 있어서 뛰쳐나왔다.

지리산에서 살며 생명·평화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에는 한반도에도 전쟁 위기설이 돌았다. 국가와 정부는 작고 약해 우리의 운명을 책임질 수 없어 보였다. 국민들이라도 자기 운명에 대한 대책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반미와 친미로 나뉘어져 힘을 소모하기만 했다.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생각하던 중 비폭력·평화 운동하는 소수자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비폭력·평화 운동할 사람 10만 명만 모으면 우리 손으로 전쟁을 막고 평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지리산에서 같이 운동하던 사람들과 논의했다. 실현가능하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래서 생명평화결사를 조직하고 탁발순례를 시작했다.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내가 원하는 평화가 이뤄지는 땅을 만들어가기 위해서였다. 그런 흐름과 풍토를 형성하고 싶었다.

불교는 채식을 강조한다. 순례하면서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았나. 

나는 음식을 안 가린다. 얻어먹고 살았기 때문에 음식을 가리지 않았다. 술 주면 술 먹었고 고기 주면 고기 먹었다. 기쁘고 고맙게 잘 먹은 것이 부처의 식생활이었다. 이를 탁발, 걸식이라고 한다. 이런 전통이 계승되는 곳이 미얀마, 스리랑카, 태국 등이다. 중국, 대만, 한국이 육식을 금한다. 종단 차원에서 정리해야 할 문제이긴 하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는 아니다. 불교는 뭘 먹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식욕의 노예가 되지 말고, 식탐에 빠지지 말라고 말할 뿐이다.

탁발순례가 거의 끝났다. 다시 실상사로 돌아가나. 탁발순례의 경험과 성과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실상사로 돌아간다. 그동안 고민하고 모색했던 일을 계속할 계획이다. 불교적 대안으로 모색해온 사부대중 공동체의 내용을 갖추는 일을 할 것이다. 사회적 대안으로는 마을공동체를 만들어 나갈 것이다. 남원 산내면을 농촌사회의 대안적 모델이 되도록 생명평화공동체 또는  인드라망생명공동체로 만들어가야 한다. 이 일을 하다 보니 마을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을 키우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마을 전문가를 키우는 대안대학 같은 것도 만들 필요가 있다. 사람을 키우지 않고는 이 일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경쟁을 부추기는 대한민국에서 생명·평화 사상이나 공동체 문화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옷을 입는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져 있으면 다음 단추를 아무리 끼워도 어긋나지 않는가.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놔두고 해결할 수 없다. 직면한 현실이 매우 다급하고 구체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잘못 끼워진 첫 단추를 놔두고 문제를 풀려고 하면 임시 땜질일 뿐이다. 이런 때 일수록 냉정하고 침착하게 문제의 본질을 보고 다루는 태도가 필요하다.

"산내면에 마을공동체 세워 대안적인 생명평화공동체 모델 제시할 것"
'생명·평화' 말은 많지만 개념과 논리 뿐

일각에선 현대사회에서 공동체 만들 수 없다고 말한다. 마을 공동체 성공 가능할까

가능하게 하면 다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내 인생은 내가 만들어가는 거고 내 세상도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중생이 부처도 되는데 뭘 못하겠나. 다만 그것이 가능한 조건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소유하고 이루려는 노력보다 버리는 노력이 더 필요하다.

더 많이 갖고 더 많이 쓰고, 싸워서 이기겠다는 방식으로 삶을 추구하며 겪는 고통은 가도 가도 그 고통을 재생산할 뿐이다. 결코 기쁨으로 승화되지 않는다. 생명 법칙과 질서에 맞게 낮추고 비우고 나누는 삶을 추구해야한다. 당연히 거기에도 고통이 따른다. 그러나 이 고통은 반드시 미소로 승화한다. 이를 잘 보여준 게 예수의 삶이고 부처의 삶이다. 많은 걸 버리고, 비우고, 나누면 멋진 공동체가 만들어질 것이다.
 
마을이 희망이라고 했다. 마을에 들어가 살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그냥 들어와 살면 된다. 그 마을이 갖고 있는 가치관에 동의하고 함께 하겠다는 맘만 들면 누구든지 가능하다.

생명평화결사 로고의 의미를 설명해 달라

국가와 사회는 발전하고 성장했다고 하는데 현장에선 다들 죽겠다고 한다. 우리는 현장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사회개혁,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삶을 개혁하는 것이다. 삶이 왜곡되고 병들었기 때문에 문제 있는 삶을 살고, 문제 있는 구조를 만들어낸다. 삶의 주체는 자신이다.

전쟁의 명분은 늘 정의와 자유, 평화다. 세계는 상대편의 평화를 공격하고 짓밟는 역사를 반복한다. 미국의 평화에는 이라크의 평화가 포함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의 평화에 불교인의 평화가 포함 되겠나. 현대사에서 좌익의 평화에 우익의 평화는 포함되지 않았다. 명분은 보편적 이상과 가치를 내거는데 현장에선 끊임없이 패거리 싸움만 일어났다. 나의 생명을 위해 너의 생명을 파괴하고 나의 평화를 위해 너의 평화를 공격한다.

지금 여기 나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지금 여기 내 생명이다. 내 한 목숨이 평화롭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사는 것이 목숨 걸고 지켜야할 가치다. 어떤 것보다 구체적이고 절실하다. 그렇다면 내 생명은 어떻게 이뤄졌나. 무수히 많은 사람이 생명을 얘기하고 평화를 얘기한다. 그러나 개념과 논리만 있다. 구체성이 없다.

생명평화결사의 로고는 바로 생명을 시각화한 것이다. 아래는 사람이고 오른쪽은 들과 산에 사는 짐승들이다. 왼쪽엔 물에 사는 생명체들과 하늘을 사는 동물들이 있다. 위로는 나무와 풀 등 지상에 사는 식물들이 있고 그 옆으로 해와 달이 있다. 지금 여기 나는 온 우주가 다 참여하고 관계해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물코와 같다. 분리된 그물코는 그물코 일수 없다.

내 생명의 정체성을 모르고 실상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없으니 '너 없이 나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삶을 살면 화목과 평화는 없다. 온통 싸움일 뿐이다. 로고는 생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그 법칙에 맞는 삶을 실천하자는 얘기를 하고 있다.

	▲  6주 동안 이어 온 즉문즉설의 마지막 시간이어서인지 청중의 반응에는 아쉬움이 묻어났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한국 불교에 이런저런 문제가 많지만 본질적으로는 불교 사상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도 많다. 심각한 성찰과 새로운 자기 정립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한편에선 초기불교만이 진짜고 대승불교는 변질됐다고 말한다. 그것도 불교를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선방에 들어가서 평생 구도하는 분들은 세상과 어떻게 관계 맺고 있다고 봐야 하나.

한 선사의 저술을 보면 심산유곡에서 선수행하는 스님에게 구도자가 "스님, 부처님은 모든 이들의 아픔을 이해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렇게 은둔하는 게 옳은 일입니까."라고 질문한다. 선사는 "비록 내가 은둔의 삶을 살지만 한 순간도 중생의 아픔을 잊은 적이 없다"라고 답한다. 

연기론에 따르면 내 세계가 아닌 게 없다. 중생의 아픔을 함께 한다고 할 때 혼자 있다고 해서 함부로 살 수 있을까. 절대 그럴 수 없다. 북녘 동포 굶주리고 고통 받는 것을 함께 한다면 지금 편안하게 살 수 있는가. 연기론적 세계관이 없으면 자기 문제에 함몰하게 된다. 오늘 한국 불교가 그 지경이다. 산 속에 조용히 은둔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다.

불교계가 황우석 씨 지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스님의 입장은 어떻게 다른가

개인적으로 황우석 씨를 모른다. 줄기세포에 대해서도 모른다. 그러나 생명을 인위적으로 손질하는 것에 대해 종단 차원의 입장 정리가 있어야 한다. 불교 세계관과 철학으로 생명공학을 어떻게 보고 대해야 할 것인가를 정립하지 않고 모든 걸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해야 할 일을 먼저해야한다.

어쨌든 불교계가 황우석을 지지하는 것은 그가 불교신자라는 이유가 크다. 불교신자 중에서도 무명인사가 아닌 유명인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불교가 갖고 있는 아픔이 있다. 조선조 500년간 정치적으로 탄압과 억압받은 역사를 갖고 있다. 국가사회에 대한 엄청난 피해의식이 있다. 일제 30년간 굴절된 아픔이 있고 해방 이후 개신교와 천주교가 급성장하면서 다시 한 번 피해의식이 쌓였다. 사실에 근거한 것인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타종교 쪽에서 황우석씨가 불교신자이기 때문에 그를 음해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불교계는 거기에 맞서 반응과 행동을 한 것이다.

교회나 성당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탁발순례하면서 절보다 교회와 성당에 더 많이 갔다. 때에 따라서는 강론도 하고 설교도 했다. 종교가 같다는 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추구하는 가치가 같고 진실한 지가 중요하다. 종교가 같다고 해서 허심탄회한 만남과 협동이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삶의 진정성과 진실함이 종교가 다르더라도 서로 소통하게 만든다.

예수의 생을 보면 앎이 참되면 행동은 저절로 따른다는 걸 느낀다. 예수는 사랑의 길만이 진짜라는 참된 앎이 있었기 때문에 죽을 걸 알면서도 십자가의 길을 갔다. 우리는 자꾸 행동하지 않는 지식인이 문제라고 얘기한다. 행동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앎이 참되지 않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은 자기 앎에 대한 진지하고 뼈아픈 성찰을 해야한다.

경전 구절이나 성경 구절 중 기억에 남는 것은.

성서에서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8:32)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이고 불경에서는 "법을 등불로, 자신을 등불로 삼아라"(아함경)이다. 다 같은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진리를 등불로 삼았을 때 누가 실천하나. 자신이 실천한다. 진리가 무엇인가. 상호의존성이다. 그러므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한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면 삶이 평화롭고 자유로울 것이다. 다른 얘기 많이 해봐야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좌우남북 대립 해소하려면 마음속 철조망 녹여야"
"꽃잎이 떨어지는 아픔과 슬픔 없이 열매 맺을 수 없어"

유복자라고 들었다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아버님은 4.3 사건이 일어났을 때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5개월 만에 태어났다. 어머니가 늘 "누가 아버지 왜 돌아가셨냐고 물으면 아파서 돌아가셨다고 말해라"라고 말씀하셨다. 집안에서 쉬쉬해서 최근에야 그 사실을 알았다.

현대사에는 좌우대립의 아픔이 있다. 전국 구석구석에서 아픔 없는 곳이 없다. 좌우·남북의 문제를 정치·사회적으로 접근할 영역이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가슴에 맺힌 분노와 원한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도 중요하다. 그래서 1000일 기도했다. 지금 철조망 걷어내더라도 마음속의 철조망 걷어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가해자가 됐든 피해자가 됐든 같은 인간이다. 한 민족으로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을 수 있도록 가슴 속 철조망을 주체적으로 걷어내야 한다. 우익이든 좌익이든 같은 민족 한 식구다. 이념은 한 때 바람 같은 것이고 민족은 길이 갈 것이다. '바람은 걷어치우고 한 민족으로 다시 만나자'는 취지로 좌우대립 희생자 합동위령제 했다. 이를 통해 살아있는 이들의 맘에서도 철조망이 녹길 바랐다. 생명평화운동의 하나였다.

스님은 낮춤과 비움의 삶을 실제로 살고 있다. 나는 왜 못살까 생각해보니 '불안함'이 이유였다. 일 못하고 돈 못 벌어 늙었을 때 생각하니 불안하다. 불안을 떨칠 수 있는 힘의 근원은 무엇인가

간단하다. 사실을 끊임없이 보고 확인하면 된다. 사실을 확인하면 우리는 함께 하도록 돼 있다. 더위가 싫지만 더위 없이 살 수 있는가. 추위도 마찬가지다. 피할 길이 없다. 온통 '함께'다. 죽음도 함께 일수밖에 없고 삶도 함께 일수밖에 없다. 이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게 불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모든 걸 준비해 놓은 사람은 불안하지 않을까. 아니다. 억만금을 모아 놓은 사람도 죽음에 직면하면 불안해한다. 오히려 나보다 더 불안할 것이다. 아플 때 병원에 가는 데에는 좀 유리할 수 있다. 그러나 아픔 없는 인생은 없다. 사람들은 아픔 없는 인생을 찾는다. 꽃잎 떨어지지 않고 열매 맺을 수 있나. 꽃잎이 떨어지는 아픔과 슬픔 없이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사실대로 함께 할 작정을 해야 한다. 아픔을 회피해서 사는 사람은 인생을 모르는 것이다. 이를 깨트리는 게 수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