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떠나고 싶어 안달이던 중에

석모도 해명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구경분 선생이 석모도의 석양을 보러 오지 않겠느냐고 해서

얼마나 신이 나던지 부리나케 인터넷에 들어가 길을 찾아보고

강화나 석모도에 관한 정보를 주섬주섬 챙겨 보았다. 

신촌에 있는 터미널에서 외포리행 버스를 타고

외포리에서 여객선을 타면 석모도에서 구경분 선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껏 기대에 부푼 나에게 好事多魔....

멀쩡하던 걸음이 엇갈리면서 계단에서 넘어져

여행을 연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바꾼 날자에는 구경분 선생이 병원에 가게 되었고

그새 나는 입원하고 수술까지 받은 일이 이어지고....

이렇게 한 달이 지난 오늘, 피차의 사정이 좋아져 날을 잡은 것이 3일이다.

일기예보에서는 내일 비가 온다고 했지만, 나는 상관치 않았다.  

외포리에서 탄 배는 새우깡을 받아먹는 갈메기를 보는 사이

어느새 석모도 선착장에 닿았다. 너무 짧은 거리....

볼 것도 없지만 사진 찍을 경황도 없을만큼 순식간이다.

바닷물은 탁한데다, 바닷물이 쓸려나간 자리는 더욱 밉다.

그래도 마중 나온 구 선생이 마냥 반가워 나는 크게 두 팔을 흔들었다.

그 길로 우리는 석모도를 한 바퀴 돌고 돌고.... 

섬 가운데 이렇게 넓은 논이 있다니....

예전에는 작은 섬들이 많았는데

사람들이 개간해서 이렇게 넓은 평야가 만들어지게 되었다고. 

덧붙이면 석모도쌀이 꽤나 좋다지만,

너무 먼 곳이라서 확인할 길이 없는 게 아쉽다.

저어기, 보문사의 눈섭바위가 보인다.

내일 갈 수도, 어쩌면 못갈 수도 있는 눈섭바위를 바라보면서 

예전에(15년 전) 와 보았던 보문사를 떠올렸다.

그때는 순례의 길이라 관광같은 건 꿈에도 그리지 않았다.

해명초등학교에 닿았다.

전교생이 56명(어제 한 사람 들어와서)이라서 가족 같은 학교. 

언젠가 봄날, 구경분 선생이 학생을 야외로 데리고 나가

그림을 그리게 하고 글짓기를 하게 한 곁에서

화전을 부쳐 어린이들과 함께 봄을 즐겼다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나 멋있는 교육이며 살아있는 사랑의 現場인가.

이런 교육을 받는 아이들을 보고 싶었지만, 그럴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관사에서 잠시 기다리는 사이

구경분 선생의 동화집을 읽었다.

아! 이 책이 혹시 모범도서가 되지 않을까 할 만큼 훌륭했으니... 

등장인물이 실존하는 그런 책이다.

학생에게 일일이 선생이 이메일로 사랑과 채찍의 편지를 써

학생으로 하여금 스스로 改善하게 되는 그런 과정이

아름답고 따뜻하게 그려졌다.

무지개..

일곱 명의 아이들이 무지개빛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과정이

살아있는 교육이고 미래의 현실이다. 

좋구나!

그리 되면 얼마나 좋을꼬!

그런데

급한 일이 생겨 구 선생과 행동을 같이 해야 해서

나는 석모도의 석양 감상을 접어야 했다.

그래도 지는 해를 바라보며 안타까운 심정으로 연신 셔터를 눌렀지.

그래서 배를 두 번이나 타는 행운을 안게 되고.... 

어둑해진 밤, 사방은 칠흑이다.

지는해가 잘 보인다는 레스트랑에 갔으나 이미 때는 늦어

유리에 반사되는 그림자는 서운해하는 우리의 모습 뿐

맥주로 허전함을 달래며 맛있는 굴밥을 먹었다.

배가 든든하니 그까짓 석양쯤 다음 기회로 미루면 될 일.

이런 오늘 의 이야기를 누구에게 알릴까?

밤하늘에 한 얼굴을 그려 넣으렸더니

초엿새 달이 먼저 알고 웃고 있다. 

국화차를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만년 소녀 같은 구경분씨는 취미도 많지만 재주도 많다.

해금 연주도 들려 주었고, 한지공예의 茶床에서 다과도 먹었다.

아!

구경분 선생이 내게 준 하트형의 상자를 두고 왔으니

어쩌면 좋다?

떠나는 날 아침에 우산만 챙겼지 그 상자는 미처 생각도 못했다. 

구경분 선생님

보문사 올라가는 길은 미끄럽고 비는 마구 쏟아지기에

올라가기를 포기하고 기념사진 하나 찍었습니다.

표 받는 아저씨...자기 마음 닦는 일에 힘쓰라고 해서

고맙다 인사하고 뒤돌아섰지요.

부둣가의 바람은 세차고 비는 마구 퍼부어서

짧은 이틀에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폐만 끼쳐 죄송하고 고맙고...

구경분 선생님의 건강도 회복되시었으니

그 많은(?) 꿈 이루시기를 빕니다.

즐거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