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화해의 시대를 열어가야

지난 11월 4일 평양 봉수교회에서는 남측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와 북측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평화통일 기도회와 남북교회의 최초의 공식적인 성찬식이 거행되었다. 남측에서 준비한 떡과 북측에서 준비한 포도주로 여는 역사적인 합동 성찬식에 필자도 배찬 분급위원으로 참여하는 기회를 얻었다.

▲ 김성복 목사 / 한국기독교교회협 화해통일위 위원

기도회가 열리기 전, 조선그리스도교 연맹의 강영섭 목사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권오성 목사의 인사말이 있었다. 그런데 강 목사는 인사말 속에서 뜻밖에도 독도문제를 거론, 일본을 규탄하면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어 보았냐고 남측의 참가자(99명)들에게 물어보았다. 일본이 독도를 침탈하려고 할 때 남과 북이 합심하여 핵무기를 만들어 일본에게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주장을 거듭 하는 것이었다.

평화통일 기도회에 핵무기를 남북합작으로 만들자는 주장이 귀에 거슬리기는 하였지만 강양욱 목사(김일성 주석의 외삼촌)의 아들다운 거침없는 의견개진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도회를 마치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 일행 중 보수적인 장로님들에게 느낌을 물어보았다. 그런데 오히려 강영섭 위원장의 인사말에 감동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조상이 물려준 국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남과 북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강 위원장에게 비판을 하리라 예상했던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갔다.

오바마의 당선 이후 북미관계와 남북관계, 그리고 북일관계 등의 미래에 대한 의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북한과 미국은 오바마 재임기간 안에 수교로 갈 것 같고, 남북관계는 통미봉남이라는 최악의 경우도 예상되는 지경이다. 그렇다면 북일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일본은 계속 북한에 납치된 자국민의 문제해결에 집착하여 강경한 입장을 고수할 것인가?

북일관계를 지켜보노라면 답답한 생각이 든다. 일본은 한반도 강점기에 얼마나 많은 우리 국민을 강제징발·납치·살해하였는가를 기억에서 지워버린 듯하다. 그 때는 전쟁시기이었지만 지금은 평시가 아니냐는 것인가? 아니 사람이 실종되고 죽어가는 것이 전쟁시하고 평시하고 어떻게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가 수천 배, 수만 배의 고통을 더 당한 것이 아닌가. 일본 정부는 극우세력의 호들갑에 맞장구치지 말고 이제 북일 간 관계개선에 나서야 할 것이다.

국가나 인간의 관계에서 용서와 화해는 말처럼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니다. 며칠 전 TV 뉴스에 끔찍한 사건이 보도되었다. 20여 년 전에 자신을 꾸짖은 선생님에게 ‘살인’으로 복수한 어느 젊은이의 일생을 생각하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상대방의 ‘공격’으로 상처받고, 그 상처가 덧나면 끊임 없이 분노의 감정에 시달리다 결국에는 파국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이 분노를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서 치료의 여부가 결정된다.

타리오의 법칙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것이 눈이 손상을 당하면 눈까지만 복수하고 이가 부러지면 이까지만 복수하라는 의미도 있다. 눈을 실명하게 만들었다고 그 분노로 인하여 상대를 죽여버리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는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를 완전히 극복하여 오리를 가자면 십리를 가고 속옷을 달라면 겉옷까지도 주라고 말씀하였다. 문제는 분노의 감정이다.

몇 년 전, 목사들이 금강산을 방문하여 세미나를 열기로 계획을 세웠다.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을 만할 때에 연세 높으신 목사님이 늦게 참석하여 진행사항을 전해 듣고는 갑자기 일어나서 회의실이 떠나갈 듯이 큰소리로 ‘절대로 안 된다’는 것이었다. 당신의 작은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살해되는 것을 두 눈으로 똑바로 보았고 그들 하고는 화해도 교류도 협력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계획을 접었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때의 상처는 진행형이다. 그 분노를 해소할 방법을 우리는 찾아야 한다. 용서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과거에 매여서 미래를 망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 그 분노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남북간에 화해와 교류협력 행위를 친북좌파로 규정하고 공격하는 것은 시급히 극복되어야 한다고 본다.

우리 정부도 이들에게 볼모로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본다. 얼마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종교분과 위원회에서 어느 스님께서 말하였다. 국민이 100% 모두 다 동의해야 북측에 식량을 전달할 수 있다는 정책은 잘못된 것이라고. 일부의 반대가 있어도 식량은 보내야만 한다는 것이다. 식량을 보내야 하는데 삐라를 보내고 있으니 용서와 화해, 그리고 평화의 길은 참으로 멀고도 험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