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교회 사역자들을 위한 한 행사에 축하객으로 참석을 한 일이 있다. 그런데 행사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마음이 점점 불편해졌다. 사회를 보는 목사 때문이었다. 그는 행사를 진행하면서 목사들을 불러 ‘주의 종’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그런데 그 어법이 참으로 어색했다. 그는 연신 ‘종’ 뒤에 ‘님’을 붙여쓰고 있었다. ‘주의 종님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주의 종님들은 일어나주시기바랍니다. 주의 종님들에게 광고 말씀드립니다.’하는 식이었다. 목사를 스스로 낮추는 겸손의 의미로 ‘주의 종’이라고 표현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거기에 ‘님’을 붙여 스스로 높이는 것은 또 무슨 어법이란 말인가. 필자는 그때까지 종을 불러 ‘종놈’ 하는 소리는 들어보았지만 ‘종님’하는 소리는 들어보질 못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특히 같은 문인들도 필자를 평가할 때 작품 자체보다는 등단했는지 여부를 먼저 따졌다. 책을 내주는 출판사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필자 역시 여기저기 문예지에 작품을 보내고 추천이라는 절차를 거쳐 소위 등단을 했다. 소설가라는 일종의 ‘라이선스’를 취득한 것이다. 그런데 그 뒤로 소설 작품 평가가 달라졌다. 고백을 하자면, 같은 소설 작품인데도 등단 전과 등단 후의 평가가 확연히 달랐다. 역시 소설가라는 라이선스는 때로 권위를 인정받는데 필요한 것이었다.

-‘목사’라는 이름의 ‘라이선스’

흔히 목사라는 직업을 ‘성직’이라고 말한다. 생각할수록 ‘꿩 먹고 알 먹는 직업’이다. 세상에 어떤 직업에 성직이라는 대단한 ‘타이틀’을 붙여주는가 말이다. 그런데도 이 대단한 ‘직업’을 ‘직업’이라고 말하는 것에 화를 내는 목사들을 보았다. 목사라는 직업으로 먹고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지 ‘직업’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는 항변이다. 대단한 배짱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목사라는 ‘라이선스’없이 그냥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 더 아름답지 않으냐고. 직업도 아닌데 왜 그리 ‘라이선스’를 따려고 애를 썼느냐고.
그러고 보면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등단을 한 필자나, 그 일로 먹고 살면서도 직업이 아니라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목사나 어떤 의미로는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물론 한가지 다른 점이 있다. 적어도 필자는 소설로 잘 먹고 살지도 못하는데 그리고 ‘성직’도 아닌데 소설가를 자랑스러운 직업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친구 중에 교회에도 잘 다니고 봉사활동과 선교활동도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제법 큰 규모의 식당을 운영하는 친구인데 평소 자주 하는 말이 “부지런히 돈을 모아서 하나님 일을 해야지” 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그 친구와 함께 존경하는 목사님을 한 분 모시고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자리에서도 친구는 같은 말을 했다. 그러자 목사님이 물으셨다. “그래, 어떤 일이 하나님 일입니까?” 친구가 대답했다. “목사님도 잘 아시면서.... 저도 선교사가 되거나 목회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진지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엔 성도님이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이 바로 하나님이 주신 일입니다.

누구나 다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된다면 그것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죠.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말씀을 들은 친구는 한참동안 생각하는 표정이 되었다. 목사님은 분위기를 풀려는 듯이 “아, 이렇게 분업을 해야 나 같은 목사들도 먹고 살 것 아닙니까?” 하시면서 웃음을 유도하셨다. 한참 후, 친구는 자신에게 너무나 필요한 말씀이었다며 이젠 사명감을 갖고 식당 일을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필자 역시 큰 은혜를 받은 시간이었다.
이 일을 계기로 친구와 필자는 건전한 ‘직업관’에 대해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는 일은 모든 일이 ‘성직’에 다름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소설가 백훈. 문예지 ‘시와시론’에 소설이 추천되어 등단. 저서로는 시집 ‘마음이 시키는 일하나’외에 소설집 ‘브람스의 추억’ ‘아름다운 흔들림’ ‘블루에비뉴’등과 인터뷰 모음집 ‘미국속의 한국인’을 출간하였음. 십년 전에 미국에 이주, 현재는 LA인근 ‘오렌지카운티’에서 한인동포를 대상으로 하는 주간지 ‘타운뉴스’의 편집국장으로 일하고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