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리스도론/이그나시오 엘라꾸리아

     전통적 그리스도론의 형성에서
     예수의 역사적 삶은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신약성서에는 다양한 그리스도론이 있다.
     “역사적 예수”와 그가 끼친 사회적 역사적 영향들에 대해
     공관복음서는 훨씬 더 주목하고 있다.
     이에 비해 바울서신은
     살과 피를 가진 역사적 예수를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다소 성급하게 “신앙의 그리스도”를 향한다.
     이 차이는 중요하다.
     이것은 당시 예수를 믿었던 사람들이
     서로 다른 현실적 필요와 상황 때문에
     똑같은 예수를 서로 다르게
     그리스도로 고백했다는 것을 말해 준다.

     희랍적인 로고스(logos) 그리스도론이
     여러 한계를 가짐에도 불구하고,
     많은 신학자들은 그것이 최고의 혹은 유일한
     그리스도론인 양 여겨왔다.
     이 그리스도론은 그리스도의 신비를
     어떻게 이론적으로 그리고 관념적으로
     이해할 것인가에 주로 관심을 기울였던
     개인주의적이고 지적인 엘리트들의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칼케톤 회의에서도 그들이 그리스도론에 대해
     가장 본질적인 말을 했다고 할 수 없으며,
     또한 지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그것을 넘어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새로운 그리스도론이 필요하다.
     새로운 그리스도론은
     살과 피를 가진 인간 예수의 역사를
     계시로서 전폭적으로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한다.
     오늘날 누군가가
     예수의 역사적 삶의 모습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는
     어떤 그리스도론을 재구성하려 한다면,
     그것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신비에 싸인 예수의 삶에서 그 베일을 벗겨
     예수의 진면목을 드러내야 한다.
     (이그나시오 엘라꾸리아, 고재식 역, 『해방과 선교신학』, 한국신학연구소, 37-40쪽.)

2. 동정녀 탄생 교리/도로테 죌레

     보수적 복음주의에서는 동정녀 탄생 교리가
     기독교인이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즉, 전쟁에 대한 입장이나
     대량학살 수단에 대한 입장이 아니라
     동정녀 탄생을 문자 그대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한 사람이 신자인지 아닌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된다.
     그러나 사실 예수가 30세가 되어
     세례를 받는 데서 시작하는 마가복음이나,
     영원 전부터 예수가 하느님과 함께 있었음을 말하는
     요한복음에서는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비치지도 않는다.
     더욱이 오늘날 우리는 종교사학파의 도움으로
     동정녀 탄생 주제는 고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주제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동안 동정녀 탄생의 교리를 왜 믿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예수에게 아버지가 있었다는 것보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것이
     예수를 더욱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일까?
     그러다가 이 동정녀 탄생 이야기는
     기독교의 근본이 아니고
     단지 예수에 대한 헬레니즘적 해석의 일부분이었음을
     자유주의 신학에서 배우고,
     놀라운 해방감을 맛보았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해방신학은 또 다르다.
     해방신학에서는 동정녀 탄생이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
     해방을 위한 투쟁과 연결되어 있다.
     해방자는 가난한 이들로부터 와야 한다는 명백한 진리를
     동정녀 탄생 교리는 담고 있다고 본다.
     마리아는 가난하고 억눌린 여성들 중의 하나다.
     솔렌티나메 농부들의 복음대화에서,
     마리아에게 탄생을 전한 천사는
     “음모자”로 읽혀진다.
     마리아 역시 이 메시지를 듣는 순간
     음모자로 변화된다.
     이 순간 마리아는 자신이
     반체제의 일원이 되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해방자의 탄생은 비밀에 붙여져야 한다.
     이것은 동정녀 탄생 이야기에 대한
     완전히 새로운 접근 방법이다.
     이렇듯 “가난한 자의 시각”에서 성서를 읽을 때
     성서의 이야기들은 아주 달라진다.     
     (도로테 죌레, 서광선 역, 『현대신학의 패러다임』, 한국신학연구소, 59-61쪽.)     

3. “예수”라는 의미/서재경

     바울은 “예수”라는 이름을 크게 부각시킨다.
     그것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빌 2:9)이다.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얻을 것이다”(롬 10:13).
     그러나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무슨 주문이나 마술적 효력을 가진 어떤 것으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당연히 “예수”의 이름은
     예수의 존재 및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니다.
     예수라는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신통력을 지닌 주문을 외우는 것이 아니다.
     예수가 하신 일에 대한 확신과 믿음, 희망을 갖는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은 것은
     “예수”라는 주문을 암송했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삶과 그의 하나님나라 운동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그 실천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라는 이름은 “하나님이 구원하신다”는 뜻을 가진다.
     구약의 “여호수아”라는 이름을 헬라어로 발음한
     이 예수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에서 아주 흔한 이름 중 하나였다.
     아마도 이스라엘 사람 중 수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이렇게 이 이름이
     한 사람이 독점한 신성불가침의 이름이 아니라
     일반적인 이름이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해 주는가?
     그것은 바로 “예수”라는 이름이 품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어떤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고
     바닥에 맥맥이 흐르고 있었다는 의미가 아닐까?
    
     끝없이 이어지는 어두운 역사를 살아오면서
     이스라엘 민중은, 그리고 여인들은 아들을 낳았고
     그 이름에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믿음을 담아왔다. 
     “예수”라는 이름이 흔한 이름이었다는 것이
     결코 이 이름의 의미를 감소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끝없이 반복되는 실패와 좌절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민중들의 믿음과 희망이
     얼마나 끈질기게 이어져 왔는가를 밝혀 준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민중들의 믿음과 염원을 떠나서는 이해할 수 없다.
     예수라는 이름은 바로 고난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간절히 염원하였던 민중과
     또한 그들을 통해 그들과 함께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시는
     하나님이 만나는 이름이다.
     이 민중과 하나님의 만남에서
     구원을 향한 사건과 운동이 터져 나온다.

     따라서 예수의 이름을 부름으로써 구원을 얻는다는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은,
     그들의 믿음과 희망과 투쟁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을 이룬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믿음은
     예수의 삶과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에
     투신하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어둡고 파국으로 치닫는 역사 속에서도
     아들을 낳아 “임마누엘”(마태 1:25)이라 불렀던
     여인들의 끈질긴 믿음과 염원을 이어가는 것이며,
     그 오랜 민중들의 믿음과 염원의 줄기를 타고
     마침내 예수의 하나님나라 운동으로 꽃을 피웠던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믿음과 희망에
     참여하는 것이다.
     (서재경, 『'예수'라 불렀다 - 예수님의 하나님나라 이야기』, 나단, 40-47쪽.)
    

4.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그녀는 나사렛의 보잘것없는 시골 아낙네에 불과했다.
     궁핍에 찌들고 고달픈 어머니들 가운데 하나,
     평범한 어머니에 불과했다.
     예수에게는 그런 어머니가 가장 소중했다.
     가난하고 순박하면서도 강인한 어머니에게서
     예수는 묵묵히 세상을 배웠다.
     예수는 어머니의 힘겨운 삶이 못 견디게 안타까웠다.
     자기 어머니와 같은 처지의 가난한 사람들의 힘겨운 삶이
     못 견디게 가슴 아팠다.
     예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자기 어머니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이
     기를 펴고 살 수 있는 새 세상을 만들어내기로 작정하고
     분연히 떨쳐 일어섰다.

     예수가 새 세상,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목숨 바친 십자가 발치에
     어머니 마리아가 서 있었다.
     그녀는 아들 예수가 무슨 일로 생명을 바쳤는지
     똑똑히 깨달았다.
     어머니 마리아도 남은 생애 동안
     아들 예수의 구원사업을 이어받아
     목숨이 다 할 때까지
     제자들의 뒷바라지를 성심성의껏 다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도
     사랑하는 아들의 기막힌 죽음을 통하여
     이 땅 모든 노동자의 어머니로 새롭게 태어났다.
     아들은 어머니에게서 세상의 진실을 배우고
     어머니 또한 성장한 아들에게서
     세상의 진실을 배운다.
     (가톨릭노동사목전국협의회 신앙생활연구분과위원회, 『함께사는 세상』, 일과 놀이, 106-108 쪽.)

5. 가난한 예수/후안 루이스 카라비아스

     예수님의 가족은 노동자 계급에 속한다.
     예수님의 손바닥과 손마디는 곧 힘든 노동으로 굳어진다.
     예수님은 시골 목수로서 의자와 탁자와 가구를 만들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신다.
     예수님은 당신 노동으로 백성을 섬기신다.

     노동자나 농부가
     그리스도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고 싶으면,
     자기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예수님의 얼굴은 틀림없이 땀에 젖어 있었고
     햇볕에 그을려 있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사시던 집도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과 같았을 것이다.
     예수님이 잡수시던 음식, 입으시던 옷도
     우리 가난한 사람들의 음식이나 옷과 같았을 것이다.
    
     노동자나 농부가 예수님의 어머니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으면,
     자기 어머니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예수님의 어머니도
     우리 가난한 사람들의 어머니와 차이가 없었다.  
            
     노동자나 농부가 예수님의 희로애락을 알고 싶으면,
     자기네 자신의 희로애락을 성찰해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예수님은 우리네 가난한 사람들과 똑같이
     피로와 고통을 겪으셨다.
     예수님도 일에 쫓겨 아침 일찍 일어났을 것이고
     일이 없을 적에는 일감을 찾으려고
     초조해 하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느끼는 비애를 느꼈으며
     우리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고통을 받으셨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는 사랑이
     예수님의 일생을 관통하고 있었다.           
     (후안 루이스 카라비아스, 김수복 역, 『구원은 사랑』, 일과 놀이, 81쪽.)    

6. 예수의 세례/하아비 콕스

     예수의 세례는 무엇이었는가?
     마르쿠스 바르트는 예수의 세례에 관한 방대한 연구 끝에
     이렇게 주장하였다:
     예수가 광야의 예언자인 세례 요한의 손으로
     더러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은 것은
     하나님과 민중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성전의 간접적인 종교에 대한 거부 행위였다.
     예수는 성전에 등을 돌리고 도시에서 빠져 나와
     요단강으로 내려가서
     요한의 제자였던 반교권적인 어중이떠중이 무리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누군가가 예수를 따라서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기 시대의 간접적인 종교에 등을 돌리고
     스스로를 서민들, 알코올 중독자들, 무법자들과
     동일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과 자신을 동일시했다.
    
     그런데 우리는 세례를 정반대의 것으로,
     “자기들의 죄를 고백하는 일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이들을
     거부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오늘날 세례는 반세속적인 공동체인 종교 집단에
     들어가는 일이 되어 버렸다.
     이것은 예수가 의미했던 세례와는 정반대이다.
     예수를 따라서 세례의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를 따라서 이 세계와의 연대성으로,
     “율법 없는 자들”과의 연대성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아비 콕스, 마경일 역, 『신의 혁명과 인간의 책임』, 현대사상사, 131-132쪽.)

7. 사건으로서의 예수/안병무

     서양 사람들은 “예수가 누구냐?” 하고 “누구냐”만 물어요.
     그래서 예수도 “이러이러한 인격이다”라는 답을 얻고
     거기에 안주하고 말아요.
     그러나 나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예수는 하나의 사건이다!
     하느님도 하나의 사건이다!
     나는 이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예수를 인격으로 본 것은 틀렸다, 잘못 본 것이다!
     이 깨달음이 내 신학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사건”이지 왜 “인격”이냐?
     2천 년 전에 팔레스틴 갈릴래아에 살았던
     예수 개인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사건이 중요하지!
     이 깨달음이 뒤늦게나마 내게 온 것이지요.
     “사건으로서의 예수”,
     이것이 고리가 되어 나의 역사적 예수의 추구는
     민중신학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그전에는 역사적 예수를 추구하면서도
     그의 인격에 매료되어
     개인으로서의 예수를 추구하고 있었습니다.
     서구신학자들은 이른바 “말씀의 신학”이라고 해서
     예수를 “말”의 사건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말씀에서보다
     “십자가”라는 “사건”에서 성립한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민중의 사건, 집단적 사건으로 보고 있어요.
     그 사건, 예수사건은
     결코 2천 년 전에 일회적으로 완성된 것이 아니고,
     지금도 교회 안에서만이 아니라 역사 전반에서
     거듭 일어나고 있다 이겁니다.
     예수는 사건입니다.
     예수사건은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민중사건으로서 지금도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안병무, 『민중신학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25-26쪽.)
    

8. 십자가사건/안병무

     한마디로 복음서는
     “그리스도론”의 전개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민중운동사건을 보도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와 민중은 주객 관계가 아니라
     함께 사건을 일으키는 “우리”이다.
     당시 갈릴리는 많은 분노한 민중들이
     산 동굴에 거점을 마련하고
     삶 아니면 죽음이라는 결단으로
     일대 접전을 준비하는 분위기,
     어쩌면 동리마다 몇 가구 또는 몇몇 청년들이 가담하여
     당국의 사찰 대상이 되어 있고,
     거리로 정처 없이 다니는 사람들이 심문의 대상이 되는
     그런 장(場)이었을 것이다.
     그런 민중이 예수와 예루살렘으로 돌진해 들어갔고
     거기서 예수가 처형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이 사건은 예수 개인의 운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사건이다.
     그 사건에 가담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모른다.
     십자가의 사건을 핵으로 삼고 있는 그리스도교는
     십자가의 정치적 성격과 그 민중사건성을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또 이른바 부활경험은
     예수의 사건과 무관한 사람들에게는
     인식되지 못한 사건이다.
         
     사건으로 성서를 본다는 것은 바울에게도 해당된다.
     그는 말씀의 사건이 아니라 사건의 신학을 말한다.
     바울의 생애는 사건 투성이다.
     왜 사람들은 이 바울에게서 일어난 사건들을
     그의 생애를 이해하는 데서 제외하는가!
     왜 그의 투옥의 이유를 말하지 않는가?
     그의 말에는 거의 정치적인 발언이 없다고 하나,
     그의 파란만장한 생애를 주목하고
     그의 신학의 중심을 “십자가”라고 집약한 이유를
     엄숙하게 생각해야 한다.          
     (안병무, 『민중신학이야기』, 한국신학연구소, 82-84쪽.)                

9. 가난한 사람들 속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후안 루이스 카라비아스

     하느님은 인간 존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현존해 계신다.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 안에 현존해 계신다.
     굶주린 사람과 목마른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다.
     공장 노동자 안에서, 농촌 농민 안에서,
     달동네 빈민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고 계신다.
     헐벗은 어린아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신다.
     추운 겨울 밤 그리스도께서는
     추위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람 안에서 살고 계신다.
     영양실조로 허약해져 질병에 걸린 사람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신다.
     옳은 일을 하다가 혹은 불의한 사회 구조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 안에
     그리스도께서 살고 계신다(마 25:35-36).
     그리스도께서는 고통 당하는 모든 사람 안에 계시고
     착취당하는 모든 사람 안에 계신다.
     박해받는 모든 사람 안에 계신다(행 9:4-5).

     우리가 하느님을 발견하고 싶으면
     우리는 하느님이 계시는 곳에서 찾아야 한다.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속에서,
     강도에게 당해서 상처를 입고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 속에서 찾아야 한다(눅 10:29-37).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그리스도를
     뜬구름 속에서 찾고 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하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 25:40).
    
     형제 자매인 타인을 해친 죄는
     곧 그리스도 자신을 해친 죄인 것이다(고전 8:12).
     형제 자매인 타인을 섬기면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셈이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1요한 4:20).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사람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의 나라를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 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살인자입니다”(1요한 3:14-15).
     이 말씀은 중요하다.

     그리스도교 신자는 아버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서
     하나이심을 굳게 믿는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아버지 하느님과 그리스도께서
     모든 인간,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하나이심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고,
     세상 끝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실 것이다(마 28:20).
     (후안 루이스 카라비아스, 김수복 역, 『구원은 사랑』, 일과놀이, 117-119쪽.)

10. 예수와 여성/레이철 매씨유, 아루나 그나나다산(인도)

     예수는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마태 5:17).
     예수 당시 사회에서
     법은 여성들의 입장에서 해석되지 않았다.
     그녀들은 종속적인 위치에 놓여 있었다.
     예수는 이 세상을 개혁하고 새롭게 창조하러 왔으며,
     인간을 위해 율법을 계속 재해석했다.
     예수는 여성에 관한 율법을 새로운 차원에서 해석하여
     여성들을 그의 공동체에 받아들였다.
     여성을 친구로서 혹은 동지로서 받아들였다.

     초대교회에서 여성들은 지도적 위치를 차지했다.
     마음껏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세월의 흐름과 더불어
     위계적 남성 지도권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여성들은 점차 제외되고 수동적 위치로 전락해 갔다.
     2천 년이 흐른 오늘날에도 여성의 지위는
     예수 추종자들 사이에서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비록 형식적으로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가져도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예수가 받아들였던 이들 여성을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서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여성들에 대한 예수의 시각으로 법을 재해석하고,
     그래서 여성들이 사회에서 여성의 형제들인 남성들과 함께
     인간적인 대우를 받도록 하는 것이
     오늘 우리의 성스러운 과업이다.
    
     예수는 사회적 약자들, 즉 허리 굽은 자, 소외된 자,
     세리들, 매춘부, 가난한 자와 계속 접촉하면서
     그들의 비참한 상황을 개선하려 하였다.
     그들 중의 어느 하나라도 허리가 굽은 채로 남아있는 한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는 허리를 구부린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
     기를 펴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 모든 사람들이
     똑바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전도과업이요 선교사업이다.
     (이우정 엮음, 『깨어라, 여성』, 학민사, 66쪽.)

11. 사랑의 기적/박재순

     예수는 남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느끼며 살았다.
     수많은 신체적 정신적 질병을 고쳐준 것은
     무슨 신통력을 가졌기 때문이라기보다
     예수가 몸과 마음으로 병자들과 하나 되었기 때문에 일어난
     사랑의 기적이었다.
     예수는 자신을 온전히 비웠기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과 하나가 될 수 있었고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을 갈 수 있었다.
     예수는 자신을 비우기 위해 자주
     밤늦게 또는 이른 새벽에 기도했다.
     그리고 어린이들, 여인들과 병자들을 가까이 한 것은
     그의 겸손과 사랑을 말해 준다.
     이런 예수의 모습이 부와 권세를 좇는 인간에게는
     무한히 약해 보이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약함이다.

     예수는 하나님의 사랑에 온전히 자신을 바침으로써
     남의 고난을 자기의 고난으로 삼고 살았고
     남과 하나 되는 삶을 살았다.
     자기 욕심을 버리고 남의 아픔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능력,
     남을 위해 살고 남과 하나 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이고 기적이다.
     죄 속에 살던 사람들이 자신을 넘어
     남에게 이르는 것이 참된 기적이고 구원이다.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마음이
     공동체적 삶의 초석이다.
     이 마음이 없으면 가족공동체로부터 국가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모든 공동체의 토대가 무너진다.
     더불어 사는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회개하지 않고는 이 능력을 얻을 수 없다.
     (박재순, 『예수의 눈길』, 나눔사, 84쪽.)

12. “참 나”를 산 예수/송기득

     흔히 그리스도교에서 무조건적인 사랑의 표현으로
     예수의 삶을 든다.
     이른바 “인류를 위한 전적인 자기희생”,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극치일 수 있다.
     그러나 실제의 예수는 결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피를 흘려야 한다는
     교리적 각본을 실현하기 위하여 살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참 사랑도 아닐 것이다.
     그는 “피에 굶주린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었다.
     다만 그는 새 삶을 갈망하는 민중에게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가 오고 있음을 선포했다.
     그 앞에서의 결단을 재촉하였다.
     특히 가난한 사람, 눌린 사람, 그리고 소위 “죄인”으로 내몰린
     밑바닥 사람들의 인간회복을 위해 스스로 자신을 내던졌다.
     그 때문에 기존의 종교 세력과 정치권력에 희생된 것뿐이다.
     예수는 당시 비인간적으로 다뤄지던 이른바 “죄인”들에게
     바로 “이웃”이 되고 “너”가 되려고 애썼으며,
     그 상대가 비록 갈보라 할지라도
     그의 인간회복을 위해서는 자신이 죽어도 좋다는
     결의를 가지고 살았다.

     그때 그때의 상황에서 모든 “남”에게 “너”가 되려고 애쓴
     예수의 삶은 결국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예수의 “나”의 참된 실현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끝내 자신의 “참 나”를 살아냈던 것뿐이다.
     각본에 따라 연기한 배우는 결코 아니었다.
     (송기득, 『인간』, 한국신학연구소, 351쪽.)

13. 부활에 대한 믿음/구스따보 구띠에레스

     부활에 대한 믿음은
     사회에서 가장 약한 구성원들의 생명을
     보호할 것을 요청한다.
     주님의 부활을 주장하는 것은
     죽음에 직면한 상황에서 생명을 주장하는 것이다.     
     죽음을 통과하는,
     죽음과 맞서 뚫고 나가는 과제를 수반하지 않고
     생명을 천명할 수는 없다.
     생명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
     이 역사에서 마지막 말을 하게 되리라는 것이
     예수의 부활에 담긴 메시지이다.
     (구스따보 구띠에레스, 황종렬 역, 『생명이신 하느님』, 분도출판사, 53쪽.)

14. 죽음을 이긴 삶/박재순

     서구 교회에서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생각하기보다
     부활한 예수, 영광스런 예수를 앞세워
     믿음과 찬미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보통 서구 신학자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함께 말하기는 해도
     예수의 죽음을 역사적 사실로서가 아니라
     교리적이며 신학적인 의미에서 이해한다.
     그러나 삶을 떠나서 죽음을 논하는 것은
     공허하고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데 머물게 된다.
     예수의 죽음은 그의 삶과 관련해서만 의미를 지닌다.
     예수의 죽음은 그의 삶의 결과,
     즉 예수운동으로 인한 귀결이었기 때문이다.
     예수의 삶은 공동체적 생명회복운동이었다.
     이런 공동체적 삶에 대한 추구는
     저항적 투쟁으로 나아가지 않을 수 없었고,
     또 투쟁했기에 죽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삶은
     죽음에 삼키어져 소멸되지 않고
     죽음을 뚫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했다.

     예수는 죽음을 앞두고도 마치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양
     당당하게 행동한다(누가 13:31-33).
     이기적 삶은 죽음 앞에서 절망하고 좌절하여
     허무에 빠질 수밖에 없지만,
     함께 나누는 공동체적 삶은
     오히려 죽음을 이기고 살아날 수 있다.
     자신만을 의지하는 사람은
     죽음 앞에서 내일을 기약할 수 없다.
     개별적 자아는 죽음 속에 삼키어져
     소멸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웃을 믿는 사람은
     죽은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죽은 ‘나’를 하나님이, 이웃이 건져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는 마치 자기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 듯이
     철저히 남을 위해 살았다.
     예수는 하나님 나라와 고난받는 민중을 위해
     온전히 자신의 삶을 바쳤다.
     이러한 공동체적 삶의 추구, 생명회복운동 속에서
     예수는 이미 죽음을 이겼다.
     예수는 죽은 다음에 어떤 기적적인 힘에 의해서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이미 죽음을 이기고 나서 죽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삶이 죽음을 이겼고
     죽음을 이긴 삶이 곧 부활이다.
     (박재순, 『예수의 눈길』, 나눔사, 107-108쪽.)

15. 도스토예프스키의 예수이해/지성수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예수쟁이들보다
     삶의 깊은 진리를 터득한 사람들의 말과 글이
     우리들에게 종교에 대하여 더 깊고 넓은 길을
     보여주는 예는 너무도 많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일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했다.
     그는 한때 반역사건에 연루되어 
     시베리아의 유형도시 옴스크에서
     4년간 유형생활을 하기도 했다.
     옴스크의 겨울은 영하 40도에서 50도까지 내려갔다.
     작은 새는 날아가다 떨어질 정도로 추웠다.
     그는 등판에 사격용 표시가 된 하얀 헝겊의 죄수복을 입고
     죽거나 형기가 끝나기 전에는 절대로 풀어주지 않는
     족쇄를 4년 내내 덜거덕거리며 차고 있어야 했다.

     우리는 그의 문학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어떤 세련되고 유능한 신학자가 도달한 것보다도
     훨씬 더 깊고 진실한 예수이해에 그가 도달하고 있음을!
     이것은 그가 성서를 철저히 연구했다거나
     남달리 신앙심이 두터운 데서 온 통찰력으로 볼 수는 없다.
     그는 당시의 보통 러시아인들이 지닌 정도의
     성서에 대한 이해와 예수에 대한 상식을 갖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도 그가 당시의 어떤 종교가들보다
     기독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신의 처절한 삶의 경험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표작인 『죄와 벌』에서
     무식하고 말도 못하는 창녀 소냐를 통해
     그 시대의 가장 대표적인 민중을 그림으로써,
     공산주의 이전 시대에서 예수를 가장 잘 이해한
     예수의 산 증인이 되었다.
     소냐의 아버지는 비참한 가난 속에서도
     옛날 일만 되씹으며 술주정을 하고,
     후처로 들어온 여자는 굶어 죽는 상황에서도
     옛 생활을 유지하려는 도도하고 혹독한 여자로 등장한다.
     꼼짝없이 앉아서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슬그머니 공창(公娼)에 등록하고
     몸 팔아 돈을 몇 푼씩 들고 들어오는 소냐.
     그런 생활 속에서도 한쪽 손엔 성경을 들고 있으면서
     아무런 가책을 느끼지 않는 소냐.
     그리고 마침내 그 시대 지성인의 모델격인
     라스콜리니코프를 굴복시켰던 그녀.
     이처럼 도스토예프스키는 소냐를 통해
     종교나 법의 척도로는 잴 수 없는
     하층민중 속의 예수의 현존을 말하고 있다.
     그가 이 소설에서 예수의 뜻을 올바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그가 남보다 예수를 더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당시 민중의 삶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인간, 특히 민중의 삶을 잘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에 대하여 남달리 잘 안다고 큰소리칠 게 아니라
     인간에 대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아픔과 희망에 대해
     더 잘 알고 민감해지려고 애써야 하리라.
     (지성수, 『잠을 깨야 무얼 하지』, 장백, 26-27쪽.)

            
16.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생명/알란 부삭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생명이라는 말은
     다른 각도에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생명이 되신다.
     예수는 교회만이 아니라 세상에도 관심을 두신다.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 속에는
     교회의 미래만이 아니라 세상의 미래 또한 놓여 있다.
     에베소서에서 바울은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교회와 우주의 주님으로 선포한다.
     예수의 평화는 교회만이 아니라 온 세상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분명한 어조로 고백하고 선포해야 한다.
     예수는 세상에 의미 있는 삶을 주시려고,
     모든 인간 역사와 모든 인간 활동이 사망과 파괴로부터
     해방되고 갱신될 수 있도록 이 땅에 오셨으며,
     따라서 세상의 생명, 이 세상의 파괴, 이 세상의 미래,
     이 모든 것이 고스란히 교회의 관심사가 된다는 것을!
     이 세계는 하나님의 세계이며,
     우리는 이 세계에 대해 무한한 책임이 있다는 것을!

     삶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예수는 생명과 평화와 인간 존엄성의 보증이 된다.
     그분은 자기 백성과 더불어 고난받고 투쟁하는 메시아이다.
     그분은 고난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바로 고난 “때문에”
     참된 승리자, 참된 왕이 되셨다.
     세상을 위해 생명을 기꺼이 버리고자 한 그분이
     바로 세상의 생명인 예수다.
     우리도 세상을 위해 생명을 기꺼이 바칠 수 있을 때에만
     “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생명”이라고 고백할 수 있다.
     이 고백은 우리의 생명을 바칠 만한 가치가 있는 진리다.          
     (알란 부삭, 김인주 역, 『아프리카의 교회와 해방』, 형상사, 201, 2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