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정녀 탄생과 성육신론에 대한 새로운 이해
 - '교리'가 아니라 '삶'에 기초해서

1. 동정녀 탄생

보수적 복음주의에서는 동정녀 탄생을 문자 그대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가 신자와 비신자를 판가름하는 기준이다. 그러나 예수가 30세가 되어 세례를 받는 데서 시작하는 마가복음, 그리고 영원 전부터 예수가 하나님과 함께 있었음을 말하는 요한복음에서는 동정녀 탄생 이야기를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종교사학파는 동정녀 탄생이 고대 사회에 널리 퍼져 있었던 주제임을 밝혀냈다. 예수에게 육신의 아버지가 있는 것보다 동정녀에게서 태어나는 것이 예수를 더 가치 있게 할까? 동정녀 탄생 교리는 기독교의 근본이 아니고 예수에 대한 헬레니즘적 해석의 일부일 뿐이다.

동정녀 수태, 특별한 별이나 동방박사, 목자들, 혹은 베들레헴 말구유의 출생 이야기들은 역사적 보도가 아니라 문학적 창작, 즉 예수의 의미에 관한 핵심 진리를 표현하려고 고대의 종교적 이미지를 사용한 은유적(metaphorical) 이야기다.

복음서가 기록될 당시의 고대 세계에서는 왕들을 비롯한 영웅들이 죽은 후에 영웅주의적 색채를 가미하여 그들의 생애를 기록하면서 신화적인 탄생 이야기를 첨가하는 게 보통이었다. 예수의 동정녀 탄생이라는 다분히 동화적이며 신화적인 이야기 역시 예수가 죽은 후에 그의 역사적 생애에 덧씌워진 복음서 저자들의 신학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동정녀 수태 이야기는 예수가 정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증명하는 생물학적 경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이야기를 통해 고백한 신앙이며 예수에 대한 충성의 확증이다. "예수 안에서 일어난 일이 성령의 일이었다"고 말하는 것은 생물학적 기적에 기초한 사실적 주장이 아니라, 예수를 하나님의 결정적 계시로 보는 한 가지 방식이다. 예수의 출생 이야기에서 참으로 중요한 질문은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예수가 세상의 빛인가? 진정한 주님인가?"라는 것이다. 이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은 우리의 삶 전체를 거는 것이다.

해방자는 가난한 이들로부터 나온다는 명백한 진리가 동정녀 탄생 교리에 담겨 있다. 마리아는 가난하고 억눌린 여성들 가운데 하나다. 니카라과 솔렌티나메 농부들의 복음대화에서는 마리아에게 탄생을 전한 천사가 “음모자”로 풀이된다. 그리고 마리아도 이 메시지를 듣는 순간 음모자로 변한다. 마리아는 자신이 지하 반체제의 일원이 되는 것처럼 느꼈을 것이다. 해방자의 탄생은 비밀에 붙여져야 한다.

이것은 동정녀 탄생 이야기에 대한 전혀 새로운 접근이다. 이렇듯 “가난한 자의 시각”에서 성서를 읽으면 성서의 이야기들이 전혀 달라진다. 동정녀 탄생을 고백하는 것은 불의한 이 세상이 정의롭고 평등한 세상으로 변혁될 수 있다는 확신이다.

2. 성육신론

성육신한 진정한 구원자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과 똑같은 인간적 한계를 감수해야만 한다. 만일 예수가 기적적인 출생을 통해 이 세상에 왔고,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과 메시아로 알고 있었으며, 그가 죽은 뒤 며칠 후에 다시 살아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그는 우리의 구원자 역할을 담당할 자격이 없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역사에 기초한다.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그리고 그분을 통해, 인간의 역사 속에서 이 역사를 구성하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고 가장 가난한 부류에게서 계시된다. 오직 이 점을 출발점으로 삼을 때만 하나님을 믿는 일이 가능하다.

인간 존재는 무한자를 소유할 능력이 있다. 예수는 무한자와 동일시되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능력을 절대적이고 충만한 방식으로 실현했다. 육화는 하나님이 당신의 창조 행위를 통해 인간의 실존에 마련하신 가능성의 철저하고도 총체적인 실현을 뜻한다. 우리는 사랑을 통해 우리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이에 비례하여 우리 자신을 타자들과 하나님의 실재로 채울 수 있을 만큼 우리 자신을 개방할 수 있다. 예수에게서 발생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나님이 말씀이 되셨으니 이제는 사람이 하나님이다. 하나님이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물로 육화하셨는데, 그 뒤로는 역사상의 모든 빈민들과 피압제자들로 육화하신다. 말씀이 지금은 민중이다. 민중이 하나님의 사업을 하고 있다.

예수는 헐벗은 자들, 옥에 갇힌 자들, 목마른 자들, 주린 자들, 나그네들, 병든 자들 가운데 현존한다(마 25:31-46). 따라서 우리는 오늘의 그리스도는 바로 남아프리카의 흑인, 라틴 아메리카의 농부, 캄보디아 난민, 고아와 집 없는 아이, 천대받는 여성이라고 증언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이들 모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