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밖에 없어 떠밀려 가는 경우가 있다. 할 수밖에 없어 등 밀려 하는 일이 있다.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일만 하도록 내버려 둘만큼 한가하지 않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살기가 힘들다고, 피곤하다고 하는 건가 보다. 나 또한 요새는 이 말에 조금은 동감하며 산다.

벚꽃이 아름답다.

지난 주간에 나와 아내는 할 수 없어 외유라는 걸 했다. 봄꽃이 사방에 널려있으니, 이왕에 집밖으로 나가야 한다면 꽃 곁으로 가자고 마음먹었다. 벗어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던가. 벚꽃이 흐드러진 거리에서 낭만과 여유의 사람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나 자신 또한 여유 자적할 수 있어 기뻤다.

왜 그렇게들 말하지 않는가. 긍정적인 사람과 어울리면 긍정적인 사람이 되고, 부정적인 사람과 어울리면 부정적인 사람이 된다고. 여유로운 상춘객들과 어울리니 나도 금방 여유롭고 풍요로워진 것 같아 마냥 좋았다. 환경은 변하지 않았어도 마음이 변했으니 그것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그러나 그리 한가할 수 없는 일은 돌아오는 길에 터지고 말았다. 좋은 일에는 마가 낀다고, 밀려 서있던 앞차와 키스를 한 것이다. 뛰어 내려가 허리를 조아리며 미안하다 연신 인사를 한 후, 차를 살피다 가까스로 0.3mm 정도의 흠 하나를 발견하고 안도했다. 운전자가 범퍼를 도색해야 한다기에 보험회사를 불러 일을 처리했다.

곁에서 구경하던 아저씨 왈, “젊은 자식이 까짓 거 가지고. 지도 당해봐야 알지.” 하며 혀를 차더니, “내일 병원에 입원했다고 할지 몰라요.”라며 내게 귀띔을 한다. 예전에 그런 일도 경험한 바가 있기에 난 그저 얇게 웃었다.

이렇게 좋은 일과 나쁜 일이 겹치나 보다 했는데, 한참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가 시동을 멈추는 게 아닌가. 10살을 바라보는 차니 그럴 만도 하다 싶었다.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그것도 높이가 까마득한 긴 다리 위에서 일어났다. 멈춰선 차를 내버려두고 한참을 앞으로 걸어 바람 찬란한 도로 한가운데서 다시 보험회사에 전화를 걸어 견인을 부탁했다.

차량 정비소에 이르렀을 때는 어스름이 어둠에 자리를 넘겨준 후였다. 막 문을 닫으려던 정비사가 헤드가 나갔다며 50만 원이 족히 들 것이라고 겁을 준다. 그러나 어쩌랴. 차를 버려둔 채 가까운 여관에 들었다. 이튿날 오후 늦게야 차량이 굴렀다. 생돈 45만 원과 여관비를 날린 후에야 우리의 어쩔 수 없는 야유는 종지부를 찍었다.

그래도 금방 고칠 수 있어 차가 구르니 다행이라고 아내가 곁에서 날 위로하는 건지, 정말 그래서 그런 건지 하여튼 좋은 말을 한다. 나도 정말 그렇게 생각하며 아내의 따스한 손을 살짝 움켜잡았다. 아내가 덧붙인 말, “당신이 살아 있어서 고마워요.” 내가 대답한 말, “나도.”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사고가 났어도 죽을 만큼은 아니었으니. 차가 멈췄어도 정비하니까 또 구르니.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그렇게 허비한 수리비용을 마뜩찮은 생활비를 기술적으로 쪼개 마련할 숙제가 아득하긴 하지만, 우린 서로가 있어 기댈 수 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