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는

건강검진을 받으러 아침 일찍 분당의 제생병원으로 갔다.

추워서였을까 사람이 별로 없어 빠르게 내 순서를 끝냈다.

돈이 드는 암검사는 받지 않았다.

암이라 해도 언젠가는 떠나야할 이승을

조금더 생명을 연장한다고 해서 더 좋을 건 없겠고

오히려 나와 식구가 서로 괴롭지 않도록 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떠나고 싶다.

물에 비친 햇빛이 눈부시다.

걷는 게 신통찮은 나는 눈길이 무서운데

다행이 눈이 녹아 겁내지 않고 걸을 수 있어 다행이다.

우체국에 들러 항공봉함엽서를 사서 딸에게 편지를 썼다. 

전화로 못다한 이야기를 하기 위함인데

손쉬운 전화로만 통화를 하다보니 글쓰기가 좀 서먹하다.

내 말은 언제나 사감선생같다는 말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오늘도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아서....

어제는 병문안을 가기 위해 서대문 적십자병원에 갔다.

벌써 다섯 달을 무의식상태로 있는 耳順이 넘은 분인데

지난번보다 조금 차도가 있는 듯하다.

살그머니 손을 잡고 귀에 대고 나의 문병을 고했더니

꼼지락...환자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40년 전, 딸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바로 이곳 적십자병원에 입원했었다.

슬펐다.

그러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걸 큰 위안으로 삼았지만

그때 받은 상처를 감추기 위해

한여름에도 양말을 신고 다녔던 딸아이의 중고교생활...

사춘기의 반항은 나도 힘들었기에

지난날은 악몽이었다.

그러나 꿈을 깨고 나서의 오늘은 편안하다.

만사가 평정되니 그저 고마울 뿐.

내가 문병한 그 분의 쾌유는 믿어도 될까?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며

삶과 죽음 사이의 모습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러던중, 건너편 환자가 운명했다고 들어서

나는 조용히 그 병실을 나왔다.

눈이 녹으면 나무가지나 땅에서는 파란 싹이 돋아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