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드는 성서재해석?


• 사7:14의 예수탄생 예고 여부의 문제

구약의 예수탄생 예고로 이해되고 있는 이사야 7:14에 관한 구약학의 주석에 따르면 그 구절은 결코 신약의 예수탄생 예고일 수가 없다. 주석학적으로 그렇게 볼래야 볼수가 없다. 그래서 이사야 본문의 ‘젊은 여자’라는 단어가 ‘동정녀’를 뜻하는 “처녀”로 번역된 것은 “마태복음 저자의 재해석의 결과”라고 규정할수 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약성서신학의 입장에서는 그 구절이 인용된 마1:23을 “마태복음 저자의 재해석 구절”이라고 말하게 된다.


• 바울도 예수의 처녀탄생을 말한 적이 없다.

마1:23이 사7:14에 대한 “마태복음 저자의 재해석”이라고 말하는 다른 이유는 모든 신약성서들 중에서 가장 먼저 기록된 바울의 친서에서 조차 마리아를 “처녀”로 명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저 그냥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갈4:4)”라고 했는데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여자라는 어휘는 “귀네”로서 이 단어는 모든 연령층의 여성을 망라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명백하게 처녀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은 바울의 갈4:4를 통해 예수의 동정녀, 혹은 처녀탄생을 주장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바울은 유대인들을 상대할 때 구약을 누구보다도 잘 인용했던 사람이다. 그런 그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아들이 여자를 통해서 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할 때에는 구약의 어떤 본문도 인용하지 않았다. 이것은 마태복음 저자가 예수의 탄생을 사7:14에 근거해서 처녀 탄생으로 본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나타낸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동정녀 탄생, 혹은 처녀탄생을 이야기할 때 그 근거로 마1:23을 즐겨 사용하지만 바울서신의 갈4:4를 근거 본문으로 삼는 경우는 없다.

이래서 동정녀, 혹은 처녀탄생을 선언한 마1:23은 사7:14에 대한 “마태복음 저자의 재해석”이라고 말하게 된다.


• 예수의 처녀탄생을 말하는 누가복음도 사7:14를 근거로 삼지 않는다

누가복음도 마태복음과 똑같이 예수의 처녀탄생을 보도한다(눅1:27). 하지만 예수탄생과 관련된 누가복음의 본문을 자세히 읽어 보면 “마리아가 처녀인 것은 아직 약혼 중인 아가씨이기 때문”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분명히 누가복음 저자는 마리아가 처녀인 것은 아직 약혼 중이기 때문임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눅1:31,34).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 저자에 의하면 예수의 처녀탄생은 마태복음과는 달리 사7:14의 성취라는 도식속에서 이뤄진 예고된 탄생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구원의 계획과 그에 따른 활동하심에 의해 이뤄진 하나님의 역사에 의한 탄생이다(1:30b,32~33,35,37). 따라서 누가복음에 의하면 천사의 수태고지는 구약의 예고에 따라 된 일이라고 보게 되지를 않는다. 구약의 예고에 근거한 것임을 나타내는 표현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에 따르면 예수의 나심은 구약의 예고에 의한 것이 아니다. 예수의 처녀 탄생은 구약의 예고와는 전혀 상관없이 때가 차매 시작된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계획에 따라 이뤄진 탄생이다.

이러므로 예수의 처녀탄생이 사7:14에 근거된 것이라고 본 것은 마태복음 저자만의 독특한 재해석의 결과라고 단정하지 않을수 없다.


• “재해석”의 뜻

그러면 이쯤에서 필자가 의도하는 “재해석”이란 것이 무슨 뜻인지 그 개념을 규정해야 독자들이 필자의 논지를 좀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 “재해석”이 아닌 것

먼저, 독자들은 필자가 말하는 재해석이란 다음의 “두 가지가 아니다”를 분명히 인식하길 원한다.

(1)재해석이란 “내 생각을 덧입히는 것”이 아니다. 재해석이란 말은 글자 그대로 다시 해석한다는 뜻이다. 다시 해석한다는 것은 내 생각을 덧입힌다는 것과 전혀 상관없는 개념이다.

(2)또, 재해석이란 “근거도 없이 내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다. 해석이라는 것은 해석되는 대상이 있을 때 가능하다. 그러므로 재해석이란 해석되는 대상을 다시 해석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재해석이라는 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더군다나 해석되는 대상과는 상관없이 막무가내로 내 주장을 펼치는 것이 아니다. 해석이든 재해석이든 반드시 대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재해석” 연습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필자가 계속 사용해 왔던 “재해석”의 개념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다음의 문장을 독자들이 먼저 해석해 보고 이어지는 글을 숙독하길 권한다.

(1)Last night I received the bad news that Papa Victor had become a victim of time.

(2)He had been such an important part of my life.


이에 대해 아래와 같은 해석의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A.
(1)지난 밤 난 아버지 빅터께서 시대의 희생양이 되셨다는 나쁜 소식을 들었다.

(2)그 분은 그렇게도 중요한 내 인생의 한 부분이셨다.

B.
(1)지난 밤 난 빅터의 아버지께서 시간의 희생이 되셨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2)그 분은 내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도 중요한 한 부분이셨다.

C.
(1)지난 밤 난 아버지의 승리가 시간의 희생제물이 되셨다는 슬픈 소식을 들었다.

(2)그 분은 내 인생에 있어서 그렇게도 중요한 한 부분이셨던 것이다.

D. 지난 밤 난 승리자이신 아버지께서 마침내 시대의 희생제물이 되어 돌아가셨다는 나쁜 소식을 들었다.

(2) 승리자이신 내 아버지는 내 인생 대부분을 차지하신, 그렇게도 중요한 분이셨다.


이 외에도 각양각색의 해석이 가능할 수 있겠으나 위의 넷 중에서 영어교사가 채점을 한다면 어느 해석을 가장 높이 평가할지 필자는 잘 모른다. 하지만 분명 이 해석들 중 만점을 받을 해석은 하나도 없다. 어떤 해석은 재해석되어야 할 부분이 명확하게 재해석되지 않았고 어떤 해석은 자기의 생각을 덧입혔으며 다른 해석은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펼쳤다. 여기서 필자가 갖고 있는 재해석의 개념하에 위의 해석들을 평하면 이렇다.


(1)재해석되어야 할 하나는 Papa Victor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빅터 신부님’이라고 재해석되어야 한다. 단순히 아버지라는 의미로서 ‘아빠’를 말할 때에는 소문자로 시작하는 papa이다. 그러나 대문자로 시작하는 Papa는 카톨릭의 신부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 문장이 들어 있는 단락안에서 볼 때 Victor는 군사적 영웅 이미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빅터는 인명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2)다른 하나는 a victim of time이라는 표현이다. 이것은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다’의 뜻이다. ‘나이가 들어 연로하여 자연사하였음’을 의미한다. 그것을 ‘시대의 희생(양)’ 또는 ‘시간의 희생’이라고 번역하면 문장의 의미가 와 닿지를 않는다. 더구나 ‘시대’라는 의미가 되려면 the times여야 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번역하면 내용적으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인가? 아니면, 정치적으로 박해를 받아 죽었나? 등의 여러 가지 상상을 할수 있게 된다. 따라서 내 생각을 덧입힌 해석과 내 생각을 자유롭게 펼친 해석이 어떤 것인지가 쉽게 구별된다.


• 필자의 “재해석” 개념

이런 맥락에서 필자가 표명하는 “재해석”의 뜻을 정리하면 이렇다.


• 재해석이란 새로운 뜻을 보고 그 의미를 다시 밝히는 것

(1)재해석이란 남이 보지 못하는 뜻을 보고 그 의미를 다시 밝혀 내는 일이다. papa는 흔한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차적으로 이뤄지는 해석은 모두 그 흔한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papa가 Papa로 씌일 때에는 의미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이를 간파한 해석자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당연하고도 흔한 뜻이 아닌 다른 뜻으로 해석하게 된다. 남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뜻 너머에 있는, 미처 보지 못한 의미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해석해 놓은 것을 다시 해석해서 새롭게 보는 것이 재해석이다.


• 재해석이란 새로운 상황에서 새롭게 적용하는 것

(2)재해석이라는 것은 “원래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밝혀서 그 뜻을 새로운 상황과의 연속성 속에서 “새롭게 적용하는 일”이다. 위의 영어 문장에서 두 번째 문장인 (2)는 자신의 인생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빅터라는 카톨릭 신부의 타계에 대해 지극히 애달픈 감정을 나타낸다. 그런데, “빅터 신부”라는 단어 대신 다른 단어가 주어지면 대상은 바뀌지만 이 문장에 나타난 애처롭고 쓸쓸한 애도의 감정은 손상되지 않은 채 그대로 표현되어 나타날수 있다.

그러므로 이 문장이 존경하는 선생님을 향한 애도의 감정으로 인용되어 표현될 수도 있고 자신의 진짜 아버지에 대한 영원한 이별의 슬픔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인용될 수도 있다. 재해석이란 이런 의미의 개념이다. 그렇기 때문에 재해석이라는 말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내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 일방적으로 포장하는 작업이 아니다. 원래의 의미를 새롭게 보고 그것을 새로운 상황에 새롭게 적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사7:14의 ‘젊은여자’가 ‘처녀’로 재해석된 과정

그러므로 이런 재해석의 개념을 갖고 마태복음 저자가 사7:14의 “젊은 여자”를 “처녀”로 재해석한 과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사7:14의 “젊은 여자”는 분명 “남자를 모르는 처녀”를 직지(直指)하지 않는다. 그러나 젊은 여자의 의미 안에 ‘미혼의 젊은 여자’가 포함된다. papa안에 ‘카톨릭 신부’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과 같다. 이사야의 이 선포가 들어 있는 문맥에서 그 ‘미혼의 젊은 여자’는 이미 결혼했다는 암시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그 ‘미혼의 젊은 여자’는 곧 “처녀”이다. 마태복음 저자에 의하면 그 “처녀”가 예수의 모친 마리아이다.


• 만들어질 수도, 조작될 수도 없는, 구약의 재해석을 통해 밝혀진 비밀 - 신약의 그리스도 예수

이와 같은 재해석의 과정을 통해 신약의 편저자들은 똑같은 말씀 속에서 유대인 일반이 보지 못했던 메시야 개념을 새롭게 설명할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재해석이란 인간이 인위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만들어 내는 작업일수 없다.

이것은 마치 설교자들이 설교본문을 그대로 읽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목회하는 교회의 교인들의 상황과 형편을 감안하고 여러 입장을 종합하여 그 본문을 설명하고 설득하면서 자신이 설교하는 내용을 삶에 적용하고자 하는 수고와 같다. 신약편저자들의 “예수의 그리스도되심“의 증거는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뤄진 새로운 해석과 그 적용에 해당한다.

따라서 인위적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조작하여 사실인양 주장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재해석을 위해서는 반드시 해석되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새로운 적용을 위해서는 엄밀하게 밝혀진 원래의 뜻과 적용이 가능한 상황과의 연속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필자의 “재해석”의 개념을 납득하신 독자와 함께 지금까지의 문제들 중 메시야 개념부터 본격적으로 정리해 가고자 한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필자의 “구약의 메시야와 신약의 그리스도”란 표현을 한 번 더 숙고해 주시고 필자의 논지와 독자들의 이해를 맞춰 보게 되길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