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신학의 깊고도 넓은 울림과 성찰을 가져다 준 김준우 교수(감신대, 한국기독교연구소)의 신학논단 “목회현장과 신학,  그리고 역사적 예수와 제국주의 시대의 살림 목회”는 사람됨의 신학 연구회 동문회에서 발행하는 『사람됨의 신학』/ 2003년 여름호 특집 - “신학으로 살아남기” 신학논단에 기고된 글임을 밝혀둡니다. 아울러 『사람됨의 신학』본 책은 '지적재산권과 정보'의 독점을 지향하며,  공공의 사회화에 배타적으로 작용하는 Copyright를 반대하고 정보의 공유를 뜻하는 Copyleft를 지향합니다. 그렇기에 본 책에 있는 내용은 원 저작자의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한 허락, 동의 없이도 얼마든지 복제 및 복사하여 사용하실 수 있기에 이곳 『당당뉴스』에 게재함을 알려 드립니다.

두 번째 편지 - 제국주의 시대의 살림 목회

목사님.

온갖 생명이 춤추는 초여름입니다. 가족 모두 건강하신지요?
목사님의 편지는 잘 받았습니다. 또다시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운 가슴을 쓸어 내릴 수밖에 없었으며, 이제는 영변의 핵시설에 대한 미국의 공격이 우려되는 현실입니다. 첩보위성에 나타나는 폭격 장면은 애들 컴퓨터 장난하는 것 같지만, 얼마나 많은 하느님의 아들과 딸들이 팔다리가 찢겨지고 목숨을 잃어야 하는지... 이처럼 제국주의 전쟁으로 인해 무고한 사람들이 피 흘리며 죽어 가는 폭력의 시대에 과연 목회는 무슨 의미가 있으며, 무엇을 목회의 구체적인 목표로 삼아야 하는가를 다시 묻게 된다는 목사님의 편지를 받고 선뜻 대답이 떠오르지 않더군요.

지난 몇 달 동안 저 역시 절박한 심정으로 미국의 대전략에 관한 몇 권의 책들을 읽었습니다. 도법 스님은 인간방패가 되어 한반도에 제일 먼저 떨어지는 폭탄을 맨가슴으로 받겠다고 준비하고 있다지요. 이 땅 한반도는 수많은 외침, 전쟁, 반란으로 인해 문규현 신부의 말대로, 피에 물들지 않은 땅이 한 자락도 남아 있지 않은 땅이기에, 더 이상 이 땅의 어느 구석도 피에 젖는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 모두 힘을 모아야 하겠지요. 이처럼 중대한 민족사적 과제를 위해 교회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으나, 목회의 목표와 방향을 분명히 하는 계기로 삼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교회는 빛의 역할을 더욱 철저하게 수행하라는 시대적 소명을 지니며, 전쟁과 폭력이 심화될수록 목회는 사랑의 치유와 소망의 역할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하도록 격려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하느님이 불러내신 살림의 공동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제국주의 시대의 살림 목회는 모든 제국들이 하느님의 심판 아래 놓여 있다는 점을 분명히 선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에게 미국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전쟁조차도 재고 무기를 처분하고 동시에 전후 복구 사업의 이익을 통해 경제를 회생시키려는 제국은 하느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미국이 오늘날 국제금융조작을 통해 세계의 부를 빨아들이는 흡혈귀가 된 것도 부족하여 이제는 노골적인 전쟁을 통해 패권을 유지하는 “악의 화신”이 되어버린 현실, 특히 미국의 대외정책을 주도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전쟁광이 되어 최후발악을 하는 듯한 참담한 현실로 인해 전세계적으로 반미반전운동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오히려 친미북벌기도회가 열리는 것이 하도 답답하고, 오늘날 세계적인 학살에 앞장서고 있는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한편 부끄럽기도 하여, 부시 일당을 국제형사재판소 전범재판에 회부할 구체적인 방법은 없을지를 궁리하기까지 했습니다. 최소한 부시만이라도 9.11 테러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또 다시 한 주권국가를 선제공격함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을 살상하고 인류의 평화를 파괴한 죄목으로 그가 소속한 미국연합감리교회 재판위원회에 출교를 요청할 방법은 없을지도 궁리해보았습니다. 

 둘째로, 제국주의 시대의 살림 목회는 성서에 근거하여 제국의 폭력과 착취를 정당화하는 허위논리를 폭로하고, 제국주의가 삶의 원리로 가르치는 무한 경쟁, 체제에 대한 순응, 타인에 대한 적대감, 자기 성찰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호기심이 결국에는 압제의 내면화 과정의 일환이라는 점을 폭로해야 할 것입니다. 약탈과 조공, 노예제를 기초로 하는 제국들은 언제나 침략을 “해방”이라 부르고 약탈을 “평화”라 부릅니다. 항복과 예속과 복종은 “구원”이며, 제국에 대한 저항은 “악”이라고, “어둠의 세력”이라고 부르지요. 특히 제국들은 정치경제군사적으로 지배하고 착취할 뿐 아니라, 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문화적인 장치들도 마련하지요. 교육제도와 매스컴 뿐 아니라 종교적 제의, 경전, 제사장 집단 등이 자주 그런 장치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한 예로 고대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제국의 천지창조 이야기들은 지배와 착취를 우주적 질서로 정당화시킨 것으로서, 피지배자들의 체념과 복종을 통해 제국의 안정을 획책한 이야기들이었지요. 고대 제국들의 지배와 약탈이 어느 정도로 심했기에, 하느님은 인간을 홍수로 쓸어버릴 작정까지 하시게 되었을지, 정말로 축복 받아야 할 이 세상의 삶이 얼마나 저주스러운 것으로 바뀌었으면, 족장들을 통해 세상 모든 민족들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비상조치를 취하게까지 되었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성서의 말씀들은 대부분 이처럼 고대 제국들이 정치경제종교문화적으로 지배하던 상황에서 선포된 하느님의 말씀들로서, 그 하느님의 말씀들은 기본적으로 반(反)제국의 질서를 위한 말씀들이지요. 제국의 지배와 착취에 맞서서 투쟁하는 가운데 들려진 하느님의 말씀들이었지요. 구약의 출애굽 사건부터 왕조의 역사, 예언서들과 신약의 예수 사건, 바울의 편지들과 계시록까지 모두가 반제국적 질서를 위한 말씀들이지요. 성서를 읽는 시각 가운데 매우 중요한 것이 이처럼 성서의 정치경제문화종교적 컨텍스트(제국의 지배와 착취에 대한 저항과 투쟁)에 비추어, 그 메시지(삶을 위한 반제국적 대안질서와 투쟁 전략으로서 하느님 말씀)를 찾는 시각입니다. 우리는 정교분리 원칙과 개인주의에 세뇌되어 성서의 사건들, 심지어 예수와 하느님 나라마저도 정치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철저하게 종교적 관점에서만 생각하며, 공동체적 사건이 아니라 개인적 사건으로만 생각하는 버릇이 뼛속 깊이 박혔습니다. 지난 번 편지에 내 나름대로 정리한 "역사적 예수와 제자 양육을 위한 가이드라인" 역시 부끄럽게도 나의 사고가 얼마나 이런 탈정치화된 사고 습관에 사로잡혀 있는가를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지배자들이 쳐놓은 그물, 더군다나 오랜 교육을 통해 우리에게 내면화된 그물에서 벗어난다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우리의 믿음과 신학은 우리의 감옥이 되는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아직도 의심의 해석학이 반드시 필요하고, 신학의 해방과 성서의 해방이 인간해방을 위한 출발점이 된다고 믿습니다.
 
셋째로, 제국주의 시대의 살림 목회는 인간의 주체성을 확립시키고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제국은 전통적인 사회구조를 파괴시킬 뿐 아니라 공동체의 전통문화도 파괴시킵니다. 폭력만능주의에 사로잡힌 제국은 인간을 폭력의 처분대상으로 삼고 공포에 사로잡히게 만들지요.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의 이름이 “나는 나다”였다는 사실은 서구 신학에서 주장해왔던 것처럼 제1원인, 혹은 부동의 동인이라는 형이상학적 원리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노예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 즉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는 신이라는 점이라고 믿습니다. 약소민족은 군사적으로 정복되지만, 자신들이 강자들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운명과 역사의 주체라는 점을 확신할 때, 정신적으로는 해방의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지요. 주체성은 민족적 자주성의 근거라고 믿습니다. 상부상조의 전통과 공동체의 협동심, 평등의식도 주체성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제국의 지배 아래서는 기독교가 복종의 영성이 아니라 주체성의 영성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비록 어둡고 답답하지만 제국주의가 결국에는 그 모순으로 인해 패망하겠지요. 자본주의 체제 역시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른 체제로 바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더욱 심각한 현실은 지구 환경의 파괴 문제이지요. 인류가 지구라는 가장 아름다운 별과 그 위의 생명공동체를 철저하게 파멸시키고 있기 때문에 이제 인류가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스스로 자멸하는 길만 남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드는 현실입니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월드워치 인스티튜트가 낸 <21세기의파이>라는 책만 보더라도, 강, 바다, 기후변화, 식량, 전염병 등 어느 하나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만큼 절망적인 현실이지요. 한 예로 중국의 해안지대에 밀집한 공장과 노동자들의 이주로 인해, 황해 바다는 전세계에서 최악의 중금속 오염지대가 되어 버렸지요. 이 땅에서 이제는 지하수까지 고갈된 마당에 우리의 다음 세대들이 살아갈 세상이 너무 염려되는 현실이지요. 교회에서 환경문제를 모든 신자들의 운동으로 이끌어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생활의 편리함이라는 문화적 중독 때문이라면, 당장 자녀들 세대의 재앙을 외면하는 것도 그 중독 때문이라면, 무엇으로 그 중독을 깰 수 있을까요? 목회자들의 인식 부족 자체가 운동으로 이끌지 못하는 원인이 아닐까요?

목회가 하느님의 창조사역과 구원사역을 선포하는 것 만이라면, 당연히 이 세상의 모든 불의와 파괴의 책임을 그런 인류를 지으신 하느님의 탓으로 돌리고 하느님의 섭리에 모든 운명을 맡기는 무책임한 일이 되겠지요. 그러나 목회가 하느님의 창조와 구원사역에 참여하여 하느님 나라 운동을 계승하는 일이라면, 교회 교인들의 영적인 훈련이 곧 이 세상에서의 책임 있는 생활로 이어져야 하겠지요.

목회자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선포해야 하는 직책인데, 세상의 현실을 들여다볼수록 희망을 간직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라크 침공에서도 군사적으로는 미국이 승리했을지라도, 역사상 가장 대규모적으로 벌어진 전세계적 반미반전운동을 굴복시키지는 못했지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진전되고 자본주의 모순이 심화될수록 반세계화, 반제국주의 투쟁은 더욱 격렬하게 전개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결국 탈기독교 시대의 종교는 생명을 억압하고 죽이는 종교와 생명을 살리는 종교, 그 둘이 있을 뿐입니다. 목사님의 열정이 교회 안에서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생명을 보듬고 키우는 밝은 빛이 되기를 빕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