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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을 묵상하다가 열 받았습니다.지금 군중들의 함성이 대단합니다.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랍니다! 이제 얼마 안가서 교회를 십자가에 달 기세입니다. 이제 우리가 고난을 받을 차례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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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7년 04월 04일 (수) 00:00:00 [조회수 : 5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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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기사는 당당뉴스 자유게시판에 쓴 김진혁목사의 글을 필자 허락을 얻어 올린 기사입니다.

고난주간 셋째 날입니다. 오늘 새벽에 예수님의 행적을 좇아 말씀을 묵상하니 예수께서 베다니 시몬의 집에 앉아 계실 때 한 여자가 값진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은 사건이 나오더군요.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묵상을 하는 도중 자꾸만 요즘 감리교회의 여러 사건들이 말씀과 오버랩 되면서 가슴이 저려옵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두서없이 몇 자 적습니다.

폴 틸리히는 이 향유사건을 두고 ‘거룩한 광기’라고 그랬다지요. 그런데 저는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룩한 광기라, 그럴 듯 해보이지만 저에게는 신학자의 현란한 말솜씨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보는 관점에서 마리아는 그저 향유를 향유로 본 것뿐입니다.

제자들이 향유를 그 값어치로 계산하기 바쁜 와중에 마리아는 향유를 향유의 본래 목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향유의 용도는 정결케 하고 향기를 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 값어치가 얼마이든 간에 그 본래 목적은 그것입니다.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그저 맘몬에 치수에 불과합니다. 가룟 유다는 열심히 환산하다가 예수조차 돈값을 매겨서 팔아버리지 않습니까?

교수의 직책이 어떤 것입니까? 당연히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럼 가르치면 됩니다. 그게 마리아처럼 사는 거죠. 그게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거죠. 그런데 자꾸 계산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내 자리를 잘 지킬 수 있을까? 그러면 전혀 엉뚱한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저는 김준우 선생님을 잘 모릅니다. 그분이 낸 책들이 역사적 예수 연구 2기인지 3기인지 그런 것도 잘 구분 못합니다. 그저 좋은 일 하신다 싶어 연구소에서 나온 책들을 빠짐없이 사기는 했습니다.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르겠는 책들도 있더군요. 이렇게 아둔한 저도 교수들이 왜 그분을 자꾸 밀어내려고 하는지는 압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의 세상에 김준우 선생을 들여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자 종교권력가들(대제사장, 서기관, 장로)이 와서 무슨 자격으로 그딴 일을 하냐고 씨부렁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김준우 선생님이 감신을 깨끗하게 하실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제 판단이 사실과 다를 수는 있습니다.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저는 백번이고 저를 가르치셨던 교수님들께 사죄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다수의 동문들은 저와 같이 생각합니다. 교수님들은 그것을 인지하셔야 합니다.)

얼마전 MBC에 감리교의 목사님이 등장하셨습니다. 요즘 MBC에 목사님들이 출연하는 게 추세인가 봅니다. 침례교의 뭐 목사님은 코메디 프로에, 아침프로에 나와서 한참 웃기고 가십니다. 그래도 그분은 김 뭐 목사님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 목사님은 시사 프로그램에 당당히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사람들을 웃길 줄 압니다. 한 마디로 내공이 다릅니다. 말도 안 되는 짓거리로 전국민을 웃겼습니다. 온 인터넷상에 감리교의 브랜드 밸유를 심어주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감리교라 하면 김 뭐 목사님의 교단정도로 인식할 것 같습니다.

근데 더 웃기는 것은 기독교 타임즈가 이런 보도가 선정적이고, 교회를 탄압하는 것이며, 음모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많은 목사들은 김 뭐 목사님이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도 아직도 감리교에서 목회를 하는 것이 음모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김 뭐 목사님을 그냥 두는 것,  그게 감리교 탄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하지 못하니 돌들이 일어나서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타임즈는 이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목사는 뭐하는 사람입니까? 목회하면 됩니다. 사명감당하면 되는 거죠. 그게 마리아처럼 사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 계산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장을 자신의 기득권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만세반석 대대손손 그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계산해보니 답이 나옵니다. 그러니 가룟 유다 같은 짓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잇속을 챙기다가 그는 교회를 우스꽝스러운 집단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지금 군중들의 함성이 대단합니다.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랍니다! 이제 얼마 안가서 교회를 십자가에 달 기세입니다. 이제 우리가 고난을 받을 차례인가 봅니다. 헛짓꺼리하는 목사라는 비아냥을 감수하고 목회를 해야하나보다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향유가 무엇인지 다시 묵상합니다.

동역자들께 묻고 싶습니다.
그래도 가야겠죠?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접고 또 가야겠죠?
종교 권력자들의 사특한 계산 앞에서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우리 주님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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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에 빚진자 (211.245.13.15)
2007-04-06 12:29:50
저도 처음에 열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열받을 수 있었던 알량한 이유는 그들과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깨끗하다는 것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이 부패한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글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의 가르치심처럼 원수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뿐입니다.
감정적으로는 잘 되지 않지만 신앙인으로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 역시 군중들에게 개독교인으로 보임이 마땅할 것입니다.

통탄할 정도의 부패는 변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감히 누구를 정죄하며 손가락질하겠습니까?
제가 변절하지 않은 것은 믿음이 있고
의리가 있고
순수해서가 아니라
변절을 시험 당한 만한 재물과 권력을 가져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겸손할 수 있었던 것은 교만할만큼 내세울 달란트가 없었기 때문이며
제가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은 올려놓을만한 것을 가져보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믿음 안에서
감사함으로
순종할 수 있었던 부분은 겸손할 수 밖에 없는 소시민의 위치때문입니다.

그들의 변절은 그들에게 버거울 만큼의 재물과 권력이 생긴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요
수 백만원, 수 천만원, 수 억원이 아닙니다.
그들이 만지고 있는 돈의 단위를 생각해 보십시요.
시험이 작을 때는 누구나 쉽게 믿음을 보일 수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과 권력의 맛을 조금씩 보게 되면서의 그 달콤함을 놓지 못했던 그들을 마음놓고 욕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저도 장담할 수 없는 내면 깊숙히 숨어 있는 악의 뿌리일 수도 있으니까요.

다만 그러한 복을 부어 주실 때
더욱 성령의 간섭하심과 주관하심의 은혜속에 있게 하사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높이게 되는 충성스런 청지기로 서 있게
도와 주시고 붙들어 주시기만을 간절히 구할 뿐입니다.
저는 100% 전적 죄인인 저의 모습을 봅니다.
눈물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지만 기도할 수 있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고
어떠한 상황이든지 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나가고 있는 과정일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열 받게 한 그 사람들이야말로 참으로 너무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글을 쓰신 마음은 공감하지만
우리에게는 기도할 의무가 있을 뿐이며
다만 사실을 알고 권면할 뿐이며
심판권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임을 기억하는 것이겠지요!

힘 내시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하셨으니 우리는 순종할 뿐입니다.
순종은 가장 적극적 대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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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풀 (220.122.65.115)
2007-04-05 09:31:05
저들에게 준비된 것이 있다.
베드로후서 2장17절에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했지요.
그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지요.
맘몬을 믿는 사람들이지요
그래서 그들에게 예비된 것이 "캄캄한 어둠"이라고,
어쩌면 "어두움에 쫓겨나가 울게 될 당사자들이겠지요.
전 벧후2:17 하반절에 의지해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빛에 따라 살려고 하지요... 님께 하나님의 평화가 함께...
-찬미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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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 (81.49.190.26)
2007-04-04 18:02:59
향유부은 사건은 도유식입니다.
향유를 부은 사건은
예수님을 왕으로 그리려는 극적인 도유식의 장면입니다.
팡파레가 울리는 왕궁에서가 아니라
미천한 여인의 손길을 통하여 예수께서 왕으로 높임을 받는 기름부음의 묘사입니다.
그래서 복음과 함께 전하라는 말씀으로 기록하고있습니다.
과연 그 본문이 사실일어난것이냐? 라는 진의가 논의되지만
하여튼 4복음서의기자는 그 사실을 증거하고있습니다.
각 위치는 조금다르게 위치시키고있습니다만,
큰 값의 향유를 허비했다는 정성도 사랑의 깊이로 설교되어야 하지만
그것이 결국 예수를 왕으로 높이는 기름부음의 도유식의 행위였다고 해석하고 말해지지않는다면, '거룩한 광기'이니 라고 쥐어짜서 풀이하려고 애쓰게 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300데나리온정도의 값나가는 기름을 예수꼐 부었다는 사건은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여인이 값나가는 기름을 붓는 일, 사건이 있었다고는 믿습니다. 그이야기가 입으로 전해내려오다가 복음서 저자들이 그리스도관점으로 확대 첨가하여 그 본문을 만들었다고 믿습니다. 십자가 사건전에 그 사건을 위치시키고
예수를 왕으로 기름붓는것으로 위치시킨것으로 봅니다.

여인의 헌신의 행위뿐만아니라 나사렛예수가 왕으로 높여지는 도유식이었다고 꼭 기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4복음서 저자들의 의도를 생각할수 있다고 봅니다.

시편45:6,7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왕이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으로 왕에게 부어 왕의 동류보다 승하게 하셨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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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독 (211.108.120.233)
2007-04-04 16:52:26
성경신학 님
성경을 인간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성경을 인위적으로 해석하여 자신의 기득권 수호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문제겠지요. 저도 성경을 거룩하게 읽는 것(렉시오 디비나)에는 동의하나 님의 이야기는 자꾸 근본주의자들의 주장과 겹쳐서 조금 불편하네요. 그럼 건승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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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는 이방인 (59.10.119.9)
2007-04-04 14:19:26
열 받으심 안됨니다.
싸움에서는 열받는 사람이 항상 지지요.
차분히 대처해야합니다. 그들은 비판의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이단으로가지 몰고가지요. 이단이 정통이며 성경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하려합니다.
현대판 마녀사냥이지요.
그래도 저는 걱정을 떨쳐냅니다.
공의의 하나님은 그 분의 크신 뜻을 갖고계시기 때문이랍니다.
지금은 기독교가 저 간악한 무리들에 의하여 쇄퇴하고 타락한듯 보이나
곧 하나님의 크신 뜻을 알게되라라 믿습니다.
저 간악한 무리들에게 심판을 내리시고 참된 양들을 구원하시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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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오의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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