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당당뉴스 자유게시판에 쓴 김진혁목사의 글을 필자 허락을 얻어 올린
기사입니다.
고난주간 셋째 날입니다. 오늘 새벽에 예수님의 행적을 좇아 말씀을 묵상하니 예수께서 베다니
시몬의 집에 앉아 계실 때 한 여자가 값진 향유를 예수의 발에 부은 사건이 나오더군요. 저는 이 말씀을 가지고 묵상을 하는 도중 자꾸만 요즘
감리교회의 여러 사건들이 말씀과 오버랩 되면서 가슴이 저려옵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두서없이 몇 자 적습니다.
폴 틸리히는 이 향유사건을 두고 ‘거룩한 광기’라고 그랬다지요. 그런데 저는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거룩한 광기라, 그럴 듯 해보이지만 저에게는 신학자의 현란한 말솜씨에 불과했습니다. 제가 보는 관점에서 마리아는 그저 향유를 향유로 본
것뿐입니다.
제자들이
향유를 그 값어치로 계산하기 바쁜 와중에 마리아는 향유를 향유의 본래 목적으로 사용한 것입니다. 향유의 용도는 정결케 하고 향기를 내게 하는
것입니다. 그 값어치가 얼마이든 간에 그 본래 목적은 그것입니다. 돈으로 환산하는 것은 그저 맘몬에 치수에 불과합니다. 가룟 유다는 열심히
환산하다가 예수조차 돈값을 매겨서 팔아버리지 않습니까?
교수의 직책이 어떤 것입니까? 당연히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럼 가르치면 됩니다. 그게 마리아처럼 사는
거죠. 그게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거죠. 그런데 자꾸 계산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내 자리를 잘 지킬 수 있을까? 그러면 전혀 엉뚱한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저는 김준우 선생님을 잘 모릅니다. 그분이
낸 책들이 역사적 예수 연구 2기인지 3기인지 그런 것도 잘 구분 못합니다.
그저 좋은 일 하신다 싶어 연구소에서 나온 책들을 빠짐없이 사기는
했습니다. 읽어도 뭔 말인지 모르겠는 책들도 있더군요. 이렇게 아둔한 저도 교수들이 왜 그분을 자꾸 밀어내려고 하는지는 압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의 세상에 김준우 선생을 들여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자 종교권력가들(대제사장, 서기관, 장로)이 와서 무슨 자격으로 그딴 일을 하냐고
씨부렁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은 김준우 선생님이 감신을 깨끗하게 하실까봐 두려운 것입니다. (제 판단이 사실과 다를 수는
있습니다. 저도 그러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저는 백번이고 저를 가르치셨던 교수님들께 사죄하겠습니다. 그러나 지금 대다수의 동문들은 저와 같이
생각합니다. 교수님들은 그것을 인지하셔야 합니다.)
얼마전 MBC에 감리교의 목사님이 등장하셨습니다. 요즘 MBC에 목사님들이 출연하는 게 추세인가 봅니다. 침례교의 뭐 목사님은 코메디
프로에, 아침프로에 나와서 한참 웃기고 가십니다. 그래도 그분은 김 뭐 목사님을 따라가려면 아직 멀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 목사님은 시사
프로그램에 당당히 주인공으로 등장해서 사람들을 웃길 줄 압니다. 한 마디로 내공이 다릅니다. 말도 안 되는 짓거리로 전국민을 웃겼습니다. 온
인터넷상에 감리교의 브랜드 밸유를 심어주었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이 감리교라 하면 김 뭐 목사님의 교단정도로 인식할 것 같습니다.
근데 더 웃기는 것은 기독교 타임즈가 이런
보도가 선정적이고, 교회를 탄압하는 것이며, 음모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작 많은 목사들은 김 뭐 목사님이
대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도 아직도 감리교에서 목회를 하는 것이 음모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김 뭐 목사님을 그냥 두는 것,
그게 감리교 탄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을 우리가 하지 못하니 돌들이 일어나서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타임즈는 이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목사는 뭐하는 사람입니까? 목회하면 됩니다. 사명감당하면 되는 거죠. 그게 마리아처럼 사는 겁니다. 그런데 자꾸 계산을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명의 장을 자신의 기득권으로 여깁니다. 그리고 만세반석 대대손손 그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계산해보니 답이 나옵니다. 그러니 가룟
유다 같은 짓을 하는 것입니다. 자기의 잇속을 챙기다가 그는 교회를 우스꽝스러운 집단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지금 군중들의 함성이 대단합니다.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랍니다! 이제 얼마 안가서 교회를 십자가에 달 기세입니다. 이제 우리가 고난을 받을
차례인가 봅니다. 헛짓꺼리하는 목사라는 비아냥을 감수하고 목회를 해야하나보다 싶습니다. 그리고 제가 가진 향유가 무엇인지 다시
묵상합니다.
동역자들께 묻고 싶습니다. 그래도 가야겠죠?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을 접고 또 가야겠죠? 종교 권력자들의 사특한 계산 앞에서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가셨던 우리
주님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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