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라이어마허, 낭만주의 철학과 경건의 신학>, 슐라이어마허학회 엮음, 동연, 2024)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1768~1834)는 근대신학의 효시이고 철학에서도 셸링과 함께 칸트와 헤겔 사이의 관념론을 잇는 매우 중요한 철학자이다. 그동안 신학에서도 철학에서도 슐라이어마허의 중요성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잘 알려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새로운 출발점을 알리는 책이 될 것이다. 2021년 한국에 슐라이어마허 학회가 출범해서 30여 편의 논문이 발표되었고, 그중 책 제목에 부합하는 논문들을 엄선한 것이다. 

낭만주의는 문학과 예술에서는 중하게 다루지만, 철학과 신학에서 소홀히 여겼던 주제였다. 신학자들 중에는 폴 틸리히 정도가 그 중요성을 인식하여 근대 기독교 사상사에서 한 장을 할애하여 낭만주의의 사상사적 의미를 다룬다. 슐라이어마허의 낭만주의가 지향하는 근대는 감성과 이성의 묘합(妙合), 종교를 부정하지 않는 덕성과 영성의 발현에 있다.

이 책은 3부로 구성되었는데, 제1부는 낭만주의 사상이 물씬 담긴 슐라이어마허의 초기 사상을 다룬다. 김윤상(동덕여대)은 초기윤리사상에 내포된 도덕감정론과 감각적 욕구능력을 평가한다. 이경진(서울대)은 18세기 파문을 일으켰던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루친데」에 대한 친밀한 편지에 담긴, 당시에는 파격적인 새로운 성애를 지지한다. 슐라이어마허는 가장 정신적인 사랑 속에서 더없는 관능을, 더없이 관능적인 사랑 속에서 최고의 정신성을 느낄 수 있다며 칭찬한다. 최신한(한남대 명예, 학회장)은 머리와 가슴을 통합하면서 칸트를 넘어서려는 야코비의 영향을 검토한다. 이 글의 중요성은 근대성이 끝난 자리에서 시작되는 탈근대성이 아니라 근대성의 한복판에서 싹튼 탈근대성, 이른바 낭만주의 근대성을 확인한다.

제2부는 슐라이어마허의 경건의 신학을 다룬다. 심광섭(감신대 교수 역임)은 ‘감정’의 신학자로 알려진 슐라이이어마허는 본래적 의미의 ‘경건’의 신학자이며, 이성 중심의 계몽주의적 근대(대화)만이 아니라 감성 중심의 미적 근대(감성, 감각)와 더불어 영성 중심의 영적 근대(경건)의 토대를 마련한 사상가임을 역설한다. 한상연(가천대)은 하이데거의 기초존재론과 슐라이어마허의 종교론이 만나는 지점을 밝힌다. 슐라이어마허의 직관과 감정은 하이데거가 로고스보다 더 근원적으로 보았던 아이스테시스, 즉 그 무엇을 순연히 감각적으로 받아들임과 통한다는 것이다. 최태관(감신대)은 새로운 인간상은 신적 자기 묘사에 대한 참여이며, 이 참여가 에술적 행위라는 것이다.

제3부는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이다. 김덕기(대전신학대 교수 역임)는 고린도전서 9장의 주석을 통해 슐라이어마허의 보편해석학이 바울의 역설적 자유 이념과 경건한 자기의식의 종교사상의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해석학적 도구임을 보여준다. 박광우(명지대)는 슐라이어마허의 해석학적 통찰을 통해 해석학은 윤리학의 출발점이며 윤리학을 전개하는 중추임을 역설한다. 이 과정에서 그리스도인의 이상인 하느님 나라가 현세적 국가를 더욱 개선하려는 윤리적 활동임을 보여준다. 서동은(경희대)은 딜타이와 가다머를 통해 이해된 슐라이어마허 해석학의 편향된 평가, 곧 심리적, 신학적 해석을 문법적, 언어적 해석을 강조함으로써 바로 잡는다. 황은영(성결대학교)은 ‘후 세속성’으로 헌재를 진단하고, 영성과 세속성의 현대적 공존의 윤리를 슐라이어마허와 찰스 테일러를 통해 모색한다.

한국 교회와 신학이 한국 사회와 역사 속에서 의미 깊고도 변혁적인 소통을 이루려면, 한국교회와 신학은 서양 근대 그리스도교 사상과 씨름하여 신앙과 신학에서 근대의 근본 가치인 이성의 자율과 비판, 인간의 자유와 인권, 감정의 공감과 소통 등을 수용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넘어 심미성, 환경과 생태 등 보편적 생명과 인문적 가치와 공명해야 한다. 한국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가치를 공통 기반으로 삼고자 하는 ‘진보적 복음주의’와 ‘복음적 진보주의’ 층이 두터워지고 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형태의 교회가 출현하고 있다. 영적 진보의 연결망이 형성되어 세속적이면서 영성적이며, 복음적이면서 인문적인 가치가 실현된 묘연한 연합에 감성과 이성, 덕성과 영성을 모두 갖춘 슐라이어마허의 신학과 철학이 창신(創新)의 문을 활짝 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심광섭(경기연회 색동교회 소속 은퇴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