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 오시프 만델슈탐, 문학의 숲)
만델슈탐의 시 제목은 정확하지 않다. 스탈린 체제 아래, 반혁명문학의 죄명으로 초기의 시들이 불타고 수용소에 갇히자 그의 아내가 남편의 시들을 잊지 않으려 매일 외우고 기억함으로 남겨진 시들이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남편의 시를 출판하고 시대의 증언으로 지금의 만델슈탐을 있게 했다고 한다.
만델슈탐의 시는 밝지 않다. 억압과 탄압의 시대를 회피하지도 않았으며 그렇다고 시의 언어를 벗어나 비판의 말들만 거칠게 쏟아내지도 않았다. 그에게 말과 언어는, 시는 그 자체로 자유였으며 의식이었고 영혼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시대, 나의 짐승이여,/누가 너의 동공을 바라보고,/두 세기의 척주를/피로 붙일 수 있을까? (중략) 피조물은 살아 있는 한/끝까지 등뼈를 지고 가야 하고/파도는 보이지 않는/척추로 춤을 춘다./아이의 부드러운 연골처럼-/삶의 정상은 다시 한 번/어린 지구의 시대를/새끼 양처럼 희생양으로 만든다/포로가 된 이 시대를 해방시키기 위하여,/새로운 세상을 시작하기 위하여, (중략) 그러내 내 아름다운 불쌍한 시대여./너의 척추는 부서진다./한때는 유연했던 짐승처럼/네 발에 남은 흔적을/엄하고 나약하게/너는 의미없는 웃음으로 되돌아본다. (<시대), 96-97p)
평원의 죽음으로, 그 기적처럼 끈질긴 굶주림으로/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그 속에서 우리가 열림이라 생각하는 것을/우리는 직접 보기도 하고, 잠들면서 응시하기도 한다-/그래도 여전히 생기는 의문-어디로 가고, 어디서 오는 걸까?-/우리가 꿈속에서 소리쳐 부르는/미래 민족들의 유다, 바로 그가/이 평원을 따라 느릿느릿 기어오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118p)
거창하게 시대정신이랄 것까진 없지만 우리의 눈은 분명하게 보아야 한다. 만델슈탐은 보는 자였으며 그것을 분명한 말로 쓰는 자였다. 그는 슬픔을 거부하지 않았고 우울한 기조가 흐르는 하루와 망상증에 시달리는 최후까지도 적요한 레닌그라드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그의 말과 글은 수용소와 수용소 같은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단 하나의 유일한 또렷한 정신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의 정신과 말은 어느 시대에도 유효한 결의다. 말의 힘이 그렇다.
슬픈 12월이다. 새벽마다 시편을 설교하느라 시편을 읽었다. 다윗의 절박한 말들이 거기에 있었다. 그의 처지는 초라할 때도 있었다. 다만 우울한 어조만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억지로 웃지도 않았다. 이처럼 정직한 말의 자유, 말의 결의가 만드는 영혼의 힘이 거기에 있었다. 다윗이 노래로서, 기도로서 말을 할 때, 묵묵히 헤쳐 나아가는 말들이 웅성거리며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 느껴졌다. 만델슈탐이 그에 비할 수는 없지만, 그의 시에도 그의 상처 입은 영혼이 단호한 말을 하고 흘러가는 것이 느껴진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고,/아무것도 배울 필요가 없으니,
야수처럼 어두운 영혼/참으로 슬프나 아름답다.
아무것도 배우고 싶지 않기에/아예 말할 줄도 모른다.
어린 돌고래처럼/깊은 잿빛 바다의 세상을 헤엄쳐 나간다.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고>,20p)
우리 삶에 닥치는 어느 순간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는’ 기가 막힌 순간이기도 한다. 갑작스레 추락하는 어두운 영혼이 기어갈 뿐이다. 그러나 그는 ‘참으로 슬프나 아름답다’고 말한다. 다시 돌이켜 ‘아무 것도 배우고 싶지 않고 말할 줄도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어린 돌고래처럼’ ‘깊은 잿빛 바다 세상’을 헤엄치며 나간다고 한다. 그는 결국 나아갈 것이다.
만델슈탐의 시를 읽으며 그가 남겨 놓은 말들이 참 다행이다 싶다. 그의 시처럼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고’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잿빛 세상일지라도 ‘슾프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묵묵히 헤엄쳐 나가기 위한 말을 읽으면서 위로와 힘을 얻기를 바란다.
박창수 목사(인천 성은교회)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