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의 신학>, 박영식, 동연, 2023)  

"하나님에게도 알 수 없는 미래가 필요하다"

'사랑의 하나님은 염려하고 아파하며 돌보시는 하나님이다. 그분의 염려와 동감과 돌봄이 단순한 몸짓이 되지 않고 진심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에게도 알 수 없는 미래가 필요하다. 그렇치 않고는 그분의 사랑은 쇼에 불과하다' (p.242)

책을 읽다 이 문장에 눈길이 멈췄다. 왠지 모르게 하나님도 불쌍하시다는 불온한 생각이 든다.  정호승 시인이 백두산을 내려오다 동화작가 정채봉씨가 쓴 '슬픔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라는 시가 떠올랐다고 한다.
 아!
이렇게 웅장한 산도
이렇게 큰 눈물샘을  안고 있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래, 너처럼 웅대한 산도 슬퍼서 눈물샘이 있는데, 나같이 연약한 인간에게 눈물샘이 있는 건 당연한 거야. 시인과 신학자가 결은 다르지만 눈과 생각의 궤적이 비슷함을 본다. 

"예기치 못한 새로움의 시작이다"

'창조는 과거의 회복이 아니다. 오히려 예기치 못한 새로움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래서 창조는 모험적이며 미래적이다. 창조는 닫힌 현재를 열어 오지 않은 미래를 시작하게 한다.'(책 p246)

책을 읽다 멈추는 지점이 있다. 연필로 그 문장을 써 본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음! 이 분은 창조의 하나님을 이렇게 품으셨구나" 지구가 7천년인지 수 억 만년인지, 젊은지구론인지 늙은지구론인지 솔직히 별 관심도 없다. 정말 관심이 있는 것은, 지금  내게  어떤 모험과 미래를 펼쳐 보일지를 묻고 인도하는 창조의 하나님이다.

"진화를 품은 창조 & 창조를 품은 진화 " 

'예수회 신부이며 고생물학자 떼이야 드 샤르뎅은, 우주의 기나긴 역사를 진화라는 용어로 파악하며, 진화의 신학적 의미를 발굴해 냈다. 그는 진화를 적극적으로 신학의 주제로 수용하였으며, 진화는 아무런 방향도 목적도 없이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나름의 법칙과 목표가 있다는 것도 보았다. '(책, p249)

시인은 언젠가 아기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고 했다. 갓 태어난 아기가 차차 자라서 눈을 뜨고 시인을 쳐다보기 시작했을 때, 아기의 아버지가 된 시인은 아기의 맑고 푸른 눈동자에 매료되었다. 시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러한 감동을 글로 표현하고 싶어 했다. 아기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의 어느 날, 무심코 국어사전을 뒤적거리던 시인은 '눈부처'라는 말과 함께 그 풀이를 발견하고는 놀라 무릎을 탁 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눈부처:검은 눈동자에 맺히는 상이 둥근 부처의 형상을 띠고 있어 '부처'라고 부른다." 

단어를 갖게 되면 사유는 확장되고, 신앙의 품은 훨씬 넓어진다. '창조의 신학'은 그런 면에서 창조의 다양한 언어를 소개하고 생각을 확장시킨다. 지식과 정보는 넘칠 만큼 넘치는 시대  '창조의 언어'를 '이 시대의 언어'로 품을 수 있다면 그 언어만큼 우리는 더 큰 존재로 자라게 된다.

“ 신학은 세상과  성경을 보는 안경이다 ”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는 당대 최고의 신학자였다. 세상을 온전히 볼 수 있도록 교회와 신자들에게 딱 맞는 안경도수를 제공했다. 당대 신학과 신학자는 매 시대에 적합한 안경도수를 신자들에게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안경을 처음 쓸 때 영원히 사용할 수 없는 것 과 마찬가지로, 매 번 도수를 측정하고 거기에 맞는 안경을 써야 일상을 살아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한국교회와 신자들이 쓴 안경도수가 너무 오래 전에 측정한 것이라 세상을 흐릿하게 볼 수 밖에 없다. 시대에 맞지 않는 신학은 도수 맞지 않는 안경과 같다. 그 너머는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 성경은 창조로 시작해서 창조로 끝난다. ”

성경은 창세기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으로 끝난다. 창조는 창세기 첫 장에서 시작해서 계시록 마지막 장으로 대단원의 마무리를 한다. 성경은 구원이 신앙의 시작과 마지막이기 보다는 창조로 시작해서  마친다는 점도 깊이 음미할 지점이다. 교회의 안경이 오롯이 구원에만 도수가 맞춰지다 보니 다른 것은 잘 보이지 않는듯하다. 그러나 보는 것이 또렷해지면 보이는 것이 많다. 이 시대 우리가 장착해야 할 신앙의 안경은 ‘창조’일지도 모른다. 창조라는 도수를 맞추면 세상이 얼마나 다채롭고 아름답게 펼쳐지겠다. 영혼구원을 넘어 이 땅의 환경과 기후위기의 측면도 교회의 소명으로 순응하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창조신학의 논쟁과 역사를 이야기처럼 재미있게 들려준다. 뿐만 아니라,창조를 신학과 신앙의 영역에만 사용되는 언어가 아닌,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생명들의 존재양식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는 동역자인 인간을 매개체로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신앙의 영역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내하고 있다. 

박용한 목사(연리지 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