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예수 1-7>, 윤석철, 나남, 2020-2022)

“여러분 가운데 이미 시작됐어요.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면, 그 나라는 벌써 시작된 겁니다.”(6권, 87)

  예수는 누구인가.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 질문 앞에 가만히 멈추어 서는 일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교회에서 제공해주는 답을 달달 외우는 데에 급급하지, 충분한 사색과 토론이 누락되는 경우가 흔하다. 불경한 발언이 될지 모르겠으나, 개인적으로 복음서 기자가 전하는 예수의 생애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곤 했다. 복음서의 증언이 불충분하다고 주장하고자 함도 아니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진실을 부정하고자 함도 아니다. 보다 더 입체적으로 주님의 모습을 상상하고 싶은 열망에서다.

“하느님은 이미 온 세상에 가득한 신비 속에 계신 분이다. 별도로 새로운 신비를 베풀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사람들이 그 앞에 벌벌 떨며 엎드리게 만들지 않는다. 하느님이 광야에서 예수에게 맡긴 일은 사람들 눈을 뜨게 해주는 일이다. … 새로운 신비를 베푸는 일이 아니고 그들 속에 자리 잡은 신비의 힘을 일깨우는 일이다. 그래서 예수는 제자들이나 사람들이 그를 특별하게 부르거나 떠받는 일을 막았다. 먼저 깨닫기는 했지만 결코 스스로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2권, 564)

  윤석철의 <소설 예수>는 단행본 7권 분량의 대하장편소설이다. 온전히 예수의 생애를 재구성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예수의 공생애를 들여다보는 또 다른 시각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참조할만하다. <소설 예수>는 혁명군 하얀 리본, 유대종교 지도자, 로마 권력자 사이의 역사적 알력 관계를 비롯해 예수와 그와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예수의 언행을 새롭게 해설하는 것도 인상적이었고, 순교자의 아들 바라바, 산헤드린 의원 니고데모처럼 성경에 한두 번 등장하는 이부터, 요하난 벤 자카이 같이 복음서에 전혀 언급되지 않은 인물까지 묘사되는 지점들이 흥미로웠다.

  누군가의 일대기를 그리는 데에는 해석이 가미된다. 주관적 견해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각 복음서마다 신학적 주제가 약간씩 상이한 것도 그런 연유다. 윤석철의 <소설 예수>는 어떠할까. 인간 예수의 면모가 두드러진다는 점에서 마가복음과 닮았다고 할 수 있을까. 역사적 예수, 비신화화, 이런 딱딱한 신학용어를 동원해도 괜찮겠지만, 저자의 말에 더 온기를 느끼게 된다. 피부 고름 짜 주는 분, 이런 예수 상이 퍽 매력적이었다.

“가족들도 만져주지 않던 상처, 문둥병이라 부르는 상처를 만져주고 쓰다듬어 줄 때, 그들은 눈물을 흘렸다. 예수의 손을 잡고, 어떤 사람은 옷깃 한쪽을 붙잡고 흐느꼈다. … 널브러진 환자를 그저 서서 내려다보며 이래라저래라 말만 하는 사람들과 달리 예수가 무릎 꿇고 옆에 앉아 상처를 씻어주고 싸매주고 위로할 때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예수는 더러움과 죄의 구분을 넘어선 사람이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다른 병자들 눈에도 금방 쏟아질 것처럼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1권, 416)

“하늘 아버지! 아빠 아버지! 저 지는 해를 바라보며 눈물짓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제가 저들의 빵이 되게 하소서.”(4권, 337)

  프란체스코 교황은 “고통 앞에 중립 없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소설 예수> 속 예수도 그러하다. 로마제국의 폭압과 과도한 세금만이 백성들을 괴롭힌 것이 아니었다. 거룩의 이쪽과 저쪽을 나누면서 억압하는 성전종교 또한 그 못지않았다.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사건에 대해 저자는, 히브리와 제국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말이라고, 억압 없는 세상을 이루라는 부르심으로 해석한다.(1권, 496) 성전 안에 갇힌 하느님, 또 유린당하는 백성들, 양쪽 모두를 자유하게 만드는 예수를 저자는 노래한다. 

“그들을 하느님이 그었다는 선 밖으로 누가 밀어냈는지 알게 됐다. 이방인의 뜰을 건너 이스라엘의 뜰 안쪽에 서 있는 성전이 그처럼 아스라이 멀리 보인 적이 없었다. 성전은 사람을 해방하지 않고 오히려 가두는 장치다. 그런 점에서 창칼로 무장하고 위압적으로 사람들을 노려보는 로마군이나, 그 앞에 서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한없이 작아질 수밖에 없는 장엄한 성전건물이나 마찬가지였다.”(3권, 140)

“예수는 무엇에 묶인 사람들을 언제나 그렇게 풀어주었다.”(7권, 254)

  예수는 누구인가, 이 질문은 중요하다. 예수의 삶과 가치관과 무관한 인생을 어찌 그리스도인이라고 칭할 수 있겠는가. 예수를 숭배하는 일은 오랫동안 잘 해왔다. Imitatio Christi, 예수를 닮아가는 영성이 시급하다. “다른 사람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되면” 하나님 나라가 시작된다. 예수는 언제 부활하는가. “돌로 된 심장이 살로 된 심장이 되었을 때, 돌처럼 단단하게 굳은 마음이 살로 된 마음이 되었을 때”다.

“하느님이 겨우 사람이 되었는데, 그분에게 다시 하늘에 올라 모든 것을 내려다보며 주재하고 간섭해달라고 매달릴 수는 없다. 겨우 합쳐졌는데, 사람을 떠나 다시 신이 돼 달라고 부탁할 수 없다. 이미 그분은 예수와 한 몸이 되어 예수와 함께 사람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려 있지 않은가?”(7권, 442)

김민호 목사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