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와 영성>, 박종현 외 12인, 동연, 2021)

저자 중 한 사람인 윤영훈 교수에게 이 책을 선물 받았다. 1년여가 지난 후에야 밑줄 그어가며 정독했다. 우리에게 ‘문화’란 흔히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문화’라는 의미로 각 영역 분야 중 하나로 이해된다. 가옥구조, 현대미술, 유행가 등 물론 좁은 의미의 그런 뜻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러한 문화적 패턴을 통해 우리가 정말 읽어야 할 것은 당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시대정신, 지배적 세계관일 것이다. 그들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며, 존중하고 멸시하며, 결국 어떤 세상을 만들고 살기 원하는 것인지를 읽어내는 것이다. 바울이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 중심으로부터 변화 받아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롬 12:1)고 했을 때 하나님 나라의 그것과는 다른 모든 시대의 시대정신을 잘 간파하라고 한 맥락과 닿아 있다.
 
그런 면에서 대중문화는 바로 세속화된 영성, 곧 시대정신을 읽어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매체다. “종교가 다른 형식과 다른 모양을 가지고 우리 사회와 우리 삶에 영향을 주고 있다. 이러한 영역 중의 하나가 바로 대중문화의 영역이다.”(‘세속 시대의 대중문화와 영성’, 이병성, 26쪽)

아무리 ‘세상이 힘들고 악해도 가족 모두 예수만 잘 섬기는 우리 집’(찬송가 559장)이라는 믿는 가정의 자부심도 찾아보기 힘든 지금, 우리의 가정과 가족은 어디로 가야 할까? 윤영훈은 먼저 이러한 오래된, 그러나 이제는 속절없이 무너지는 ‘가족 신화’를 고발한다. “한국에서 출판되는 기독교 가족에 대한 신앙 도서들은 대부분 서구 청교도 성역할론과 미국의 보수적 기독교 가족관에 근거한다.”(‘가족의 탄생’, 윤영훈, 173쪽) “하지만 IMF 사태 이후 무너진 가족경제는 결국 근대 가족의 근간인 아버지의 붕괴로 이어졌고, 신자유주의로 인한 극심한 경쟁은 자녀 세대의 냉소적 정서를 형성하게 되었다.”(175쪽)

길은 없는가? “따라서 기독교가 세워가야 할 가족의 모델은 가족의 질서 회복이 아니라 예수께서 제시한 ‘하나님의 가족’의 가치를 통해 강조되어야 한다. … 예수의 ‘반가족적’(?) 발언들은 가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기주의’를 경계하는 것이며, 진정한 믿음의 가족은 혈연보다 신앙의 가치와 실천을 통한 공동체에 근거함을 주지시켜 준다.”(188쪽)

현실 기독교의 건강 상태를 진단하는 또 하나의 청진기는 우리가 여성을 대하며 또 그로 인해 평가되는 세간의 시선을 통해 확인된다. “가정과 사회의 폭력에 기독교 공동체는 소수의 쉼터 운영교회를 제외하면 무관심하다. 기독교 공동체는 신약성서와 깊이 단절되어 있다. … 영화 속 은희의 이야기는 현재의 기독교 공동체에 호소할 곳이 마땅하지 않다. 오히려 은희의 이야기는 기독교 공동체의 변화를 요구한다.”(‘한국 여성 영화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의 응답 가능성’, 박종현, 217쪽)

민망한 현실이지만 박종현도 대안은 기독교의 급진적 공동체성에서 찾는다. “그 공동체성 속에 여성의 역사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의 답변이 내장되어 있다. 남자와 여자는 동일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전제는 이 공동체의 사회적 구성의 토대를 이룬다. … 이 공동체는 종말론적 공동체이고 급진적 사랑 실천의 공동체이다. … 여성과 남성은 예수 따름의 급진적 윤리 속에서 인격적 영적 동등성을 완성한다. … 한국의 여성 영화가 던지는 질문에 대한 기독교 공동체의 대답은 이 급진적 윤리의 이해와 실천에서 출발한다.”(232쪽)

박일준은 대중문화가 갖는 메시지로서의 선도성을 방탄소년단에서 찾는다. “오늘 범지구적 현상이 된 방탄 현상은 오히려 ‘메시지가 미디어다’라는 말을 가능케 할 만큼 자신들의 음악 속에 일관된 메시지와 서사를 담아 전세계 젊은이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 ‘방탄 현상’은 ‘현재 세계 전체를 억압하고 있는 것들, 그 억압 하에서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단절, 외로움’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바꾸려는 ‘욕망’이 결합하여 분출하고 있는 현상 … 방탄소년단은 자신들의 음악에 메시지를 담아 전했고, 이 메시지가 전세계 억압받고 있는 이들에게 공감을 얻었고, 이 팬들의 공감은 방탄소년단 팬덤인 아미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음악이 담지한 메시지를 더 많은 이들에게 퍼뜨리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236, 237쪽)

방탄소년단이 세계화되기까지 그들의 노래를 한 번도 청취해 본 적 없는 사람으로서 MZ 세대가 가장 유행적인 미디어를 통해 가장 보편적이고 시대전환적인 메시지를 담아냈다는 사실이 놀랍고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왔다. <대중문화와 영성>이라는 조금 진부한 제목이지만, 막상 혼란스러운 대중문화를 통해 우리 시대 정신을 읽어내고, 그 역전을 꿈꾼다면 꼭 읽어보기를 권할 만하다. 

구교형 목사 (성서한국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