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쓴 미국 종교사>, 류대영, 푸른역사, 2024)

사람이 무엇이고 삶은 무얼까? 종교성은 무엇이고 기독교는 무얼까? 큰 고민 없이 수업만 오가던 대학생 시절, 내게 이런 막막한 고민을 선물해 주신 은사님이 있다. 덕분에 지금껏 고민하며 산다. 선생님의 ‘텍스트와 문화’ 수업은 듣기가 수월치 않았다. 그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 읽어야 하는 책이 퍽 많았기 때문이다. 그 수업을 듣기 위해 준비했던 여름방학은 유독 더웠는데 나는 학비를 벌지 않는 불효자식 꼴이 되어 꼼짝없이 도서관에서 소일했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해서 여염집 자식에겐 부담스러운 도서관이었다. 토지를 읽을 땐 구구절절한 사연들이 들어앉은 책들과 그 주변으로 미동도 없는 도서관의 공기가 주는 위화감에 몸을 떨었다. 한숨 소리 한번 내는 법이 없는 책들, 고요한 도서관 안에 우두커니 서서 지구가 자기장을 가진 것처럼 책이라는 미디어가 가진 어떤 장의 범위를 상상했다. 

 역시 선생님의 수업은 듣기가 쉽지 않았다. 선생님의 질문 때문이다. 투명인간처럼 그저 조용히 있다가 돌아가고픈 바람은 매번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래서 그이가 좋으냐?”라는 선생님의 선문답 같은 물음은 불편했지만 지금도 이따금 스스로 던지는, 나를 지켜주는 질문이 되었다. 남한도 북한도 선택하지 못하고 중립국인 인도로 가는 배에서 바다에 몸을 던진 소설 ‘광장’의 주인공 명준은 내게는 그저 답답하거나 불쌍한 사람 정도였다. 평가의 대상이었을 뿐인 어떤 대상을 좋아하냐는 질문은 갑작스럽고 곤혹스러웠다. 그래서 기억도 나지 않는 말들로 얼버무렸던가. 

선생님께 같은 질문을 두어 번 연거푸 듣고서 내게는 한 가지 버릇이 생겼다. 소설 속 군상을 호불호로 나누는 일이었다. 불호가 줄어드는가 싶었다. 불효를 무릅쓴 수업, 뭐라도 깨달아야만 했던 그 수업은 주인공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던 인물이 모두 죽는 충격과 몇 가지 불편한 질문만 남기고 끝나버렸다. 그런데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이 지났을 즈음, 교회사역의 현장 속에서 문득 깨달은 게 있다. 불호가 변해 시나브로 연민이 되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재능을 가진 목사님들을 만난다. 누구는 찬양을 잘하고 누구는 설교를 잘한다. 다행히 내게도 장점이랄 게 하나 있는 것 같다. 연민의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다. 뉘라서 삶을 잇는 설움이 없으랴? 애잔한 눈으로 사람을 바라보는 게, 안쓰러워하는 게 내 장점이다. 재능이라 말했지만 깨달음이나 어떤 태도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드러나는 장점은 아니지만 목회자에게 가장 필요한 재능이라고 나는 감히 말할 수 있다. 목회는 사랑하는 일이고 경험상 사랑의 상당수는 측은하게 여기는 데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나의 영성의 물줄기를 따라서 올라가다 보면 질문 하나가 옹달샘처럼 물을 뿜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이가 좋으냐?”

류대영 선생님은 올해 은퇴하셨다. 은퇴식이나 은퇴강연 강은 같은 건 선생님에겐 민망하고 어색한 일이지만 그래도 공부의 마침표는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썼노라 하셨다. <새로 쓴 미국 종교사>는 미국 종교 통사다. 신학교 다닐 때 당연히 읽었어야 할 교과서 같은 책을 뒤늦게 만난 느낌이다. 원주민의 삶과 종교를 필두로 미국에 정착하여 오늘에 이른 다양한 교파들의 생성과 미국정착, 활동들과 교세의 변화 그리고 오늘의 모습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할 수 있다. 세계사와 교회사, 사상사와 미국의 역사 등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것들과 새로운 지식이 미국종교사라는 커다란 이야기 속에서 흐름을 지닌 한 덩어리로 줄을 서는 기쁨을 준다.

인간이란 무엇이고 종교란 무엇인지, 기독교란 무엇인지, 이런 종교철학적인 질문도 책을 읽는 시종일관 다가와 불편했다. 불편한 책이 좋은 책이라고 줄곧 말씀하시더니 선생님은 좋은 책을 쓰셨나 보다. ‘책을 쓰면서 종교가 무엇인지, 인간의 종교성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지 많이 생각했다.’(9)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서문을 다시 읽다가 발견한 부분이다. 저자와 이심전심이 되었으니 성공한 독서라고 여겨도 좋을는지, 답이 없는 질문을 상속받는 답답한 노릇인지 알쏭달쏭하다. 선생님이 다시금 질문을 주시는가 싶다. 교리와 교회문화 속에서 여전한 불호와 새롭고 끔찍한 불호를 어쩌지 못하고 그저 아프던 차에, 좋은 약이려나, 쓰기만 한 약이려나 알쏭달쏭하다.

김국진 목사(산돌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