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 – 마녀체력>
- 이영미 저, 남해의봄날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던 웹툰 <미생>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되거든 체력을 먼저 길러라. 게으름, 나태, 권태, 짜증, 우울, 분노. 모두 체력이 버티지 못해, 정신이 몸의 지배를 받아 나타나는 증상이야.”

과연 옳은 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정작 체력을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핑계를 대며 실천을 미뤄왔다. 대중매체에서 요가, 축구, 헬스 등 운동하는 멋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반짝 자극을 받아 이제부터 반드시 운동을 하겠노라며 다짐하지만, 오래 지속하진 못했다. 오랬동안 운동하지 않고 살아온 몸이 단시간에 격한 움직임에 적응할 리 없었기에 일주일쯤 지나면 꼭 탈이 났다. 컨디션에 맞게 천천히 그리고 꾸준히 시도했어야 하는데, 초보자가 왜 초보자이겠는가. 자기 역량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제 속도를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리하다가 탈이 나거나, 너무 쉬엄쉬엄해서 몸의 변화를 느끼기도 전에 지루해지거나. 둘 사이를 오고가다가 ‘역시 나는 기초체력이 너무 없어서 운동이 안 맞나봐.’라는 원인과 결과가 서로 호응하지 않는 생각에 이르면, 운동은 다시 내 삶과 상관없는 단어가 되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마 한국에서 계속 지냈더라면 그렇게 다짐과 포기를 반복하다가 다시는 ‘운동’이라는 단어를 꺼내보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라오스라는 나라에서 지내면서는 ‘건강’과 ‘체력’이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기후과 음식이 낯설어서 몸에 탈이 나는 일이 잦아지고, 이상 신호가 감지되어도 쉽게 찾아갈 수 있는 믿음직스런 병원이 부재하기 때문이었다. 타국에서 내 몸을 내가 안 돌보면 누가 돌보겠는가. 질병이 생기는 건 내 의지로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몸에 관심을 기울이고 체력을 조금씩 키워나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건, 결국 ‘운동’이다. 운동을 이미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나처럼 운동에 지레 겁을 먹은 사람에게는 운동 생활의 길을 열어주고 독려하는 좋은 가이드가 필요한 법이다. 나에게 그런 가이드가 된 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마녀체력>이라는 이 책의 제목은 ‘마흔, 여자가 체력을 키워야 할 때’의 줄임말이다. 책의 저자인 이영미 씨는 출판 에디터로서 100여 권 넘는 책을 만든 멋진 커리어우먼이지만 일을 하면서 고질적인 스트레스와 고혈압 등을 얻었다. 그러던 그는 마흔 즈음에 특정한 계기를 통해 (책에서 자세하고 유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다짐하고 집 앞 달리기를 시작한다. 그런가하면 대학교 때 처음 배우고 이후로 거들떠보지 않았던 자전거에 다시 올라타보기도 하고, 두통을 이유로 겁내던 수영에 다시 한 번 도전해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을 할 때 저자의 원칙이 있다면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다.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꾸준히 운동을 지속하면서 저자는 하프 마라톤 경기에 참여하기도 하고, 조금 더 체력을 키워서는 풀코스 마라톤에 참여하고, 심지어는 철인 3종 경기를 완주하기에 이른다. 

풀코스 마라톤이나 철인 3종 경기가 이야기의 포인트였다면 나는 저자에게 큰 거리감을 느끼며 초반에 책을 덮었을 것이다. 그러나 책에는 저자에게 공감할 포인트가 훨씬 더 많았다. 책상에 오래 앉아 있는 일을 한다는 점, 몸 쓰는 것보다는 정신노동을 하는 것이 천직이라 생각해왔다는 점, 체력의 한계를 느껴 돌파구를 찾고 싶어 했고, 운동을 꾸준히 시도한 만큼 꾸준히 실패하기도 했다는 점이 그렇다. 저자는 체력이 향상되었을 때의 즐거움 뿐 아니라, 계속 도전하게 하는 운동 그 자체의 재미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에게 함께 달리자고 초대한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나도 시도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용기가 생기고, 지금보다 조금 더 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피어오르는 것이다.

책을 읽은 후,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가장 넓은 운동장으로 향했다. 왠지 그 날은 달려야 할 것 같았다. 운동장에는 이미 나와 축구, 배구, 세팍타크로 등을 즐기고 있는 라오스 사람들이 있었다. 한 바퀴를 걷고, 한 바퀴는 달리면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라오스 사람들은 대체로 운동을 즐겨하는데, 그동안 ‘난 운동과는 안 맞아.’라고 말하며 그들과 함께 운동을 해 볼 생각조차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나에게 약간의 용기와 기대가 생겨났기 때문이다. 천천히, 조금씩, 그리고 꾸준히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그러다보면 내가 그려보지 못한 뭔가 즐거운 일이 곧 펼쳐질 것 같다. 

- 정유은 (고난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