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재피 (Hi JP, Bye JP) - 방송노동자 이재학 피디와 방송현장 이야기>, 김성희, 선지현, 손가영, 이기범, 이대로, 이용우, 진재연, 함은선(지은이), 한내출판사)

‘재피’는 CJB청주방송에서 14년간 근무한 故이재학 PD의 별명이다. 그는 그 긴 시간 동안 ‘재피’라는 별명과 함께 ‘라꾸라꾸’라고 불릴 정도로 밤낮없이 CJB의 방송을 위하여 동료들과 즐겁게 근무한 베테랑이었다. 그러나 극심한 노동강도에 비하여 턱없이 부족한 방송노동자들의 임금과 열악한 대우에, 故이재학 PD는 자신을 비롯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요구하였다. 그러자 청주방송은 처우개선을 요구한 故이재학 PD에게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할 것을 통보하였다. 14년을 종속되어 일하였음에도 프리랜서였던 그에게 하차 통보는 사실상 해고나 다름 없었다.

故이재학 PD는 자신의 노동자성을 인정받고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그 과정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그는 “본인의 싸움이 방송현장에서 힘들게 일하는 ‘무늬만 프리랜서’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노동조건이 변화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반면 청주방송은 소송 과정 중 수많은 거짓 주장을 하며 또한 부당한 일들을 저질렀고, 긴 소송 끝에 청주지방법원은 청주방송의 손을 들어주었다. 직후 故이재학 PD는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2020년 2월 4일의 일이다. 이 책은 그의 동료, 유가족들이 그를 기억하며 집필하였다. 또한 수많은 ‘무늬만 프리랜서’들에게 가 닿아 자신과 세상의 현실을 바꾸어내려는 희망이 담겨있다.

이후에 청주방송은 故이재학 PD의 죽음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방송산업의 노동현실은 아직까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방송산업뿐이랴, 각종 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여전히 ‘무늬만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종속되어 일하고 있음에도 노동자로 불리우지 못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숫자가 1000만에 육박하며 점점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사용(고용)하는 입장에서는 일하는 사람이 노동자가 아닌 편이 고용하고 해고하는 데에 금전적으로 훨씬 이롭고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이는 종교산업, 특히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몇 주 전, 동료 수련목회자들과 함께 영성세미나에 참석하였다. 연회 과정고시과 영적 훈련을 위해 모인 수많은 전도사님들의 손에는 노트북이 들려있었다. 자정을 넘어서까지 복도와 로비에서 영상을 편집하고 PPT를 만들어야하는 일들은 무엇일까? 물론 세상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일하지만 우리 중 노동자는 아무도 없었다. 더불어 교회의 노동은 목회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수많은 관리권사님, 사무집사님, 간사님들은 과연 당신들의 교회에서 노동자일까? 관련한 조사자료를 찾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아무도 관심이 없다.

“내가 사람의 관례에만 의거하여 이런 말을 하는 줄 아십니까? 율법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모세의 율법에 기록하기를 "타작 일을 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아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소를 걱정하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입니까? 그것은 우리를 위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밭을 가는 사람은 마땅히 희망을 가지고서 밭을 갈고, 타작을 하는 사람은 한 몫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 일을 합니다. 우리가 여러분에게 영적인 것으로 씨를 뿌렸으면, 여러분에게서 물질적인 것으로 거둔다고 해서, 그것이 지나친 일이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다면, 하물며 우리는 더욱 그러하지 않겠습니까?” 고린도전서 9장 8-12절a, 새번역

물론 바울은 이와 같이 말한 후에, 그럼에도 자신은 복음을 전하는 데에 따르는 자신의 권리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많은 교회노동자들이 또한 바울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며 일하고 있다. 스스로 종이 되어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썩지 않을 월계관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서로에게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말하는 교회는 되지 말자. 서로의 권리를 찾아주는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아름다우리라 믿는다.

노승혁 전도사 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