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조각들– 혹은, 한 조각의 철학>, S.키에르케고르, 황필호 옮김, 집문당, 1998)

 서점에 진열된 책들이나 책장에 있는 책들을 보다가 유독 어떤 한 책이 눈에 들어오는 때가 있다. 그 순간에는 오직 그 책만이 홀로 빛나며 ‘너는 나를 읽어야 해’라고 말한다. 그 음성을 외면하지 않고 책을 읽을 때, 그 책은 내게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여준다. 이번에 소개하는 키에르케고르의 󰡔철학적 조각들-혹은, 한 조각의 철학󰡕도 바로 그러한 순간을 경험하게 해준 책이다. 

 함부르크의 한 중고서점에서 우연히 “PHILOSOPHISCHE BROCKEN”이라고 제목과 안에 목차를 본 순간, 이 책이 굉장히 중요할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다. 키에르케고르에 대한 큰 관심도 없었고, 이 책이 어떤 책인지도 몰랐고, 한국어 번역본이 있는지도 몰랐지만, 나는 이 책을 구매하였다. 다행히 한국어 번역판이 있어서 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질문이란 모르는 사람이 하는 것이며, 그는 왜 이런 방식으로 질문하게 되었는지조차 모른다”라는 전제 하에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진리를 배울 수 있는가?” (In wiefern kann die Wahrheit gelernt werden?)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이 책 안에 엄청난 것이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리고 두 번 읽고 나니 그 직감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이 책은 무엇을 말하는가?

 앞서 얘기했듯이 이 책은 ‘진리를 배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질문에 대해 우선 소크라테스적 사고로 답을 구할 수 있는지 탐구한다. 소크라테스적 사고에 의하면 “우리가 진리를 배울 수 있다면, 물론 우리는 그것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해야 한다 – 즉 배울 수 있는 것은 추구할 수 있는 것”(86)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명제는 곧바로 다음과 같은 어려움에 빠진다. “사람은 그가 아는 것을 추구할 수 없으며, 그가 모르는 것을 추구할 수도 없다. 그가 아는 것은 그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추구할 수 없으며, 그가 모르는 것은 그가 도대체 무엇을 추구해야 되는 지조차 모르기 때문에 추구할 수 없다.”(86)

 소크라테스는 이와 같은 어려움을 “진리는 그에게 새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그의 안에 있었던 것”(86)이어서 배울 필요 없이 그저 ‘회상’하기만 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그 결과 “모든 사람은 자신의 중심이며, 온 우주는 오직 그에게만 집중된다. 자신에 대한 지식은 곧 신에 대한 지식이기 때문이다.”(89) 그런데 소크라테스적 논리를 따르기 위해서는 ‘회상’하기 전에 우선 ‘나’가 진리를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진리는 영원부터 이미 내 안에 있었지만 그동안 잊고 있었구나! 그러니 진리를 깨닫기 위해 잊고 있던 진리를 회상해야겠다!”라는 것이 가능한가? 이것은 모순이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는 이를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내가 진리를 알지 못하면서도 영원부터 알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순간, 바로 그때 그 순간은 영원히 숨겨지고 영원 속으로 흡수되어 내가 다시 찾아도 발견할 수 없게 된다. 거기에는 여기도 없고 저기도 없고, 오직 모든 곳과 아무 곳도 아닌 곳이 있을 뿐이다.”(90)

 키에르케고르는 소크라테스적 사고 오류를 피하기 위해서는 “시간 속의 순간이 결정적인 의미를 가져야 한다”(91)고 말한다. 그는 이 ‘순간’이 결정적인 의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그 순간까지 진리를 갖고 있지 않아야 하며, 무지의 형태로도 갖고 있지 않아야 한다,”(91)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진리를 얻기 전까지는 비진리다. 그렇다면 사람은 어떻게 해야 진리를 획득할 수 있는가? 키에르케고르는 이제 기독교적 사고로 시선을 돌린다.

 그는 인간과 신을 학생-교사 관계로 비유한다. “학생이 진리를 획득하려면, 선생이 진리를 학생에게 주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는 또한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조건까지 제시해야 한다.”(92) 그래서 신은 인간에게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을 주었다. 하지만 학생은 교사에게 진리를 받기 전까지는 그 조건조차 가지고 있지 않아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를 이해할 수 있는 조건이 자기 자신에게 있는 한, 자신의 힘으로 진리를 배우거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조건을 신이 주었다가 뺏었다는 것은 모순이기에 진리 이해 조건을 상실한 건 인간 자신에 의하여 일어난 일이다. 이처럼 인간이 스스로 진리 이해 조건을 상실한 상황을 키에르케고르는 “죄”라고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여전히 학생을 사랑하며 학생에게 진리를 주길 원한다. 그러나 신과 인간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멀기 때문에 인간은 신을 이해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하나님이 아무리 인간을 사랑하고 진리를 주어도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인간은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과 진리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신은 인간과 일치되기 위하여 종의 형상으로 이 땅 위에 내려왔고, 이것이 바로 성육신이다. 이처럼 신은 인간에게 진리를 직접 전달하며,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내려왔다. 따라서 인간은 신에게 전적으로 모든 것을 빚지고 있고, 인간 힘으로는 진리를 깨달을 수도, 소유할 수도 없다.

 만약 우리가 이성으로 진리를 찾으려 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소크라테스는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었다. 그는 평생을 인간성에 대한 지식을 추구하고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정작 자신이 “티폰보다 더욱 괴상한 괴물인지 혹은 어떤 형식으로든지 신적인 것에 참여하는 더욱 고상하고 더욱 단순한 존재인지에 대하여 정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133)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이것은 역설이다. “생각은 생각 자체가 생각할 수 없는 것을 발견하려고”(133)하며 이성은 그것을 발견하고 증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성이 모든 것을 추구하려고 할수록 이성을 가로막으며 심지어는 혼동시키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 나타난다. 따라서 인간이 자신의 이성만을 믿으며 진리를 추구할 경우, 오히려 진리로부터 멀어진다.

 그러므로 인간이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는 이성뿐만 아니라 역설을 받아들이고 이해해야 한다. 인간은 어떻게 역설을 이해할 수 있는가? 키에르케고르에 의하면 인간은 “역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것이 역설이라는 점을 이해할 뿐”(172)이며 이성과 역설이 제3의 어떤  
것 속에서 만날 때 가능하다. 그에 의하면 이 제3의 어떤 것은 “신앙”이다. 그리고 이 신앙은 지식도 아니고, 의지의 행위도 아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철학적 조각들󰡕에서 진리란 인간 안에 있는 것도, 인간의 이성으로 배우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부여받을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우리가 얼마나 진리로부터 떨어져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우리의 행위가 하나님 나라를 세울 수 있다고, 국가와 사회와 인간을 변혁시킬 수 있다고 착각한다. 또한 교회가 진리의 심판관이라는 오만함으로부터 나오는 수많은 인간적 심판과 판단.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처한 상황이다. 그러나 키에르케고르는 말한다. 당신들이야말로 진리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자이며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이라고.

김윤형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