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아이들>, 나지브 마흐푸즈)

아무래도 올 10월은 노벨문학상의 달로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한강 작가가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해서기도 하지만, 이것을 논란으로 만드는 사람들 때문에 더욱 그렇다. 진실을 가짜뉴스라 믿고 가짜뉴스를 진실이라 믿는 이들의 광란을 어찌할꼬. 그 광란의 중심에 기독교가 있으며, 가짜뉴스를 당당하게 주장하는 이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밥줄을 연명하는 성직자들의 비애, 혹은 비겁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진실과 가짜뉴스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것을 중립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진리를 외치며 부자들의 주머니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성직자들의 진리는 도대체 무엇인지… 라고 나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나는 오로지 순수한 의도만을 가지고,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 작가가 탄생한 달인 만큼, 아랍어권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나지브 마흐푸즈의 대표작 <우리 동네 아이들>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우리 동네 아이들>은 구약 성경의 이야기들을 한 마을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사건으로 재구성한 이야기이다. 마흐푸즈는 이 책에서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이야기도 재구성한다. 그 줄거리는 이렇다.

어느 마을에 자발라위(하나님)라는 대부호가 대저택(에덴동산)에서 네 아들과 함께 살았다. 사람들은 장남 이드리스가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기 때문에 후계자가 될 거라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장남이 아닌 막내 아들 아드함(아담)을 후계자로 지목한다. 장남은 즉각 반발한다. “흑인 노비에게서 태어난 깜둥이 녀석을 선택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결국 이드리스는 아버지의 결정에 반발해 폭주하다 대저택에서 쫓겨난다. 그때부터 이드리스는 아버지를 적대하고 아드함을 넘어뜨리는 일만 한다. 사람-아드함을 시기해서 천국에서 쫓겨난 천사와 같이.

장남과 달리 아드함은 선했다. 경거망동하는 법이 없었고, 가난하고 곤란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잘 이해했다.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배우는 일에도 열심이었다.

장성한 아드함은 우마이마(하와)라는 소녀와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한다. 이때도 이드리스는 결혼식장에 난입해 잔치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아드함을 괴롭혔다.

그러던 어느날 이드리스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아드함 앞에 나타난다. 검소한 소작인의 옷을 입고 선량한 표정으로 나타난 큰 형은 그 동안의 일을 반성하고 사과한다. 이제부터 새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한다. 다만, 미래가 암담한 형을 불쌍히 여겨달라며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아버지의 유언장을 몰래 훔쳐보고 자신에게 남긴 유산은 없는지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야 작은 희망이라도 가지고 살지 않겠냐고. 

그러나 아버지의 내실은 엄격하게 금지된 공간이었다. 아버지는 내실 금고에 유언장을 봉인하고 그 누구도 열어봐서는 안 된다고 엄명을 내렸다. “이를 어기는 자는 정녕 내 집에서 쫓겨나리라!” 아드함은 용서를 구하는 형이 불쌍했지만 아버지의 명령을 어길 수 없어 거절한다.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우마이마가 남편을 설득한다. “아주버님이 우리를 무척 괴롭히기는 했지만 뉘우치고 있잖아요. 당신에게 다 빼앗기고 쫓겨난 형을 보살피지 않는 것과 아버지의 내실에 들어가는 것 중에 무엇이 더 큰 죄라고 생각하세요. 아버지 내실에 몰래 들어간다고 피해보는 사람은 없어요. 그러나 당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주버님은 깊은 절망에서 고통받을 거예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지혜로운 논리가 아닌가. 사실 그녀는 자기들이 받게 될 유산이 얼마나 될지 궁금했다.

이 말은 아드함의 마음을 움직인다. ‘내가 유언장에서 형의 몫을 좀 확인한다고 아무도 손해보지 않잖아. 형을 절망에서 건져줄 수도 있고…’ 사실 아드함 마음 깊은 곳에도 자기 몫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 다만 양심과 이성으로 욕망을 누르고 있었을 뿐. 그런데 형의 절박한 호소와 선하게 포장된 아내의 말에 양심과 이성이 굴복한다. ‘아버지 말씀을 거역하는 일이긴 해도 모두에게 좋은 일이야.’

깊은 새벽 아드함은 아버지의 열쇠를 훔쳐 내실에 들어간다. 그러나 금고문을 열려는 순간 불이 켜지고 아버지가 나타난다. 이 모든 일이 아드함을 죄에 빠뜨리려고 이드리스가 파놓은 함정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 일로 아드함은 아버지의 대저택에서 쫓겨난다.

이 이야기를 통해 나지브 마흐푸즈는 지혜에 대한 질문을 한다. 아담과 하와는 지혜를 얻고자 하는 선의로 선악과를 따먹는다. 그런데 이 선의는 왜 범죄가 되었는가. 그의 답은 명쾌하다. 선의는 포장에 불과할뿐 그 본질에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학자 카렌 암스트롱은 <신을 위한 변론>에서 성경의 지혜는 황금률로 모아진다고 했다. “네가 받고 싶은대로 남에게 하라!” 이것을 예수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으로 번역했다. 결국 하나님의 지혜는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사랑을 향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사랑은 도구가 아닌 목적이다. 그러나 많은 교회와 그리스인이 도구로, 자기를 위해 사랑한다. 사랑을 하면서 부흥의 수단이 되거나, 자기에게 복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다. 작은 것이라도 베풀면 드러내고 홍보하기를 좋아한다. 오른손이 한 일은 반드시 왼손이 알아야 한다. 도움을 받으면 줄을 서야한다.

어떤 부자 친구가 나에게 도움을 줬다고 치자. 그리고는 도움받는 사진을 온 동네에 뿌리며 소문을 낸다. 동창회에 가서도 아무도 몰라서는 안 되는 것처럼 큰 소리로 떠든다. 그럼 나는 그 친구에게 사랑을 느낄까, 모욕감을 느낄까. 지금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하는 대부분의 사랑이 이와 같다.

사랑이 목적이 되기 위해서는 머리 속에 지우개를 하나씩 가지고 살아야 한다. 열심히 사랑하고, 섬기고, 베풀되 그 즉시 잊어버리기. 

우동혁 목사(만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