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프란츠 카프카, 전영애 역, 민음사, 1998)

이보다 더 강렬한 도입부가 있을까? 주인공 ‘고레고르 잠자’는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흉측한 벌레로 변해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을 바닥에 대고 누워있었고, 머리를 약간 쳐들자 활 모양의 각질로 칸칸이 나뉜 둥그런 갈색 배가 보였다.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이 속수무책으로 버둥거리며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이게 무슨 일이지? 분명! 꿈은 아니었다.

“변신”은 실존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높이 평가받는 프란츠 카프카의 대표작이다. 카프카는 인간 운명의 부조리성과 인간 존재의 불안을 날카롭게 통찰했고, 현대인의 실존적 체험을 극한에 이르기까지 표현했다. 갑자기 한 집안의 가장이던 주인공이 커다란 벌레로 변했다는 황당한 설정 이외의 모든 것은 극히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려진다. 이 책을 마주하는 독자는 흡사, ‘나에게도 저런 일이 벌어질 수 있어!’, ‘내가 벌레가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비현실적인 현실성 앞에 마주하게 된다. 

주인공은 자신이 벌레로 변해버린 충격적인 상황 속에서도 회사에 출근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여동생의 진로 문제를 염려한다. 내용의 전개가 몹시 황당한 것 같으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가족들은 방에 있는 벌레가 그레고르라는 것을 알지만, 이내 한 마리의 벌레로 취급한다. 그레고르가 끔찍이 위했던 여동생은 그에게 음식을 챙겨주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오빠를 부담스럽고, 무가치한 존재로 여긴다.

그레고르의 변신 이후, 가족의 삶도 급격히 변모해간다. 그레고르에게 의존되어 있던 경제적 책임은 모든 가족이 나누게 되었으며, 그의 존재 의미는 조금씩 사라져간다. 결국 그레고르는 가족에게 돌봄 받지 못하고 쇠약해져 가다 죽음을 맞이한다. 가족은 그제야 큰 안도감을 느끼고, 더 나은 미래를 그리게 된다. 

이 소설은 독자를 낯선 현실 속으로 몰아넣는다. 어느 한순간에 괴물로 변해버린 자기 자신을 마주하게 한다. 그대라면 어떻겠는가? 나는 무엇으로 나의 가치를 증명하는가? 가족 안에서 나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가? 다양한 관계들 속에서 나는 무엇으로 존재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카프카는 상상력이 극대화되는 묘사를 통해 독자를 그레고르에 몰입시키고, 이 질문들에 스스로 답을 찾아보게 만든다.

카프카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게 되는 인간 개체의 소외를 한 인물의 변신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인간이 벌레가 되어버렸는데 문제가 되는 것은 경제적 지표뿐이다. 산업화는 인간을 거대한 산업의 메커니즘 속에 내재화시킨다. 더 큰 문제는 인간 스스로가 자신의 가치를 경제적 측면으로 규정한다는 것에 있다. 이것이 시스템이 되면, 인간은 인간이 되기 위한 다른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벌레가 되어버린 주인공도, 그 가족도, 그 누구도 존재로서의 인간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노동력을 상실한 인간, 그래서 경제적 가치를 상실한 인간은 무가치한가? 필자는 이 지점에서 오늘날 소외되고, 외면받는 소수자들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특별히 가정 안에서 존재하나 비존재 하는 이들을 떠올려보게 되었다. 예를 들면, 치매 노인, 장애인, 생산성이 없는 사람 등이다. 이들은 마치 벌레가 된 것처럼, 잉여의 인간으로 존재한다. 가족이란 울타리로 묶여있지만, 사실 이들은 가족의 짐이기도 하다. 그들의 목소리는 전혀 가족에게 닿지 못한다. 

카프카는 이런 현실의 단절, 관계의 왜곡을 통해, 인간 실존을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레고르는 벌레가 되고 나서야 해방을 경험한다. 변신하고 나서야 세상이 규정해놓은 그 무엇에게서 벗어나게 되었다. 우리가 만나는, 마주하는, 경험하는 타자도 그런 대상이지 않을까? 샤르트르의 말처럼, 타자는 나를 규정하기에 지옥처럼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자기 자신의 존재와 마주하는, 그리고 타자의 실존을 기꺼이 인정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해본다. 

신동훈 목사(마포 꿈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