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엄홍길 지음, 샘터사, 2015)

  산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등산을 간 횟수가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러다 엄홍길 대장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건, 2004년 히말라야의 얄룽캉 등정 때 정상을 밟고 내려오는 길에 안타깝게 산에서 죽음을 맞이한 동료들을 데려오려 한 ‘휴먼원정대’를 바탕으로 2015년 개봉한 영화 ‘히말라야’ 보고 나서입니다.

 목표를 이룬 것보다 아쉬움을 안고 돌아선 게 훨씬 더 많은 엄홍길 대장의 좌우명은 ‘자승최강’(自勝最强 -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 마음으로 엄홍길 대장은 세계에서 가장 험해서 산이 허락해 주어야만 오를 수 있다는 8,000m가 넘는 14개의 주봉이 있는 히말라야를 다 오르고, 그 위성봉인 양룽캉과 로체샤에 올라 16좌 등정에 성공했습니다.

 산에 대해선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잘 알고, 많이 오른 엄홍길 대장은 누구라도 산에는 자신의 두 발로 걸어야 한다는 것과 아무리 자신이 있어도 산이 허락해 주어야 오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해준 동료들의 값지고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있다고 합니다. 산 중의 산은 ‘하산’이라고 하는데, 도전의 진정한 성공은 출발 지점에 다시 돌아왔을 때 성취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정상에 올랐을 때 그걸 유지하고 잘 내려오는 것이 정상에 잘 올라가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그래서 얼마나 빨리 정상을 찍고 내려왔느냐가 아니라, 끝까지 함께했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합니다. 

 『산도 인생도 내려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를 읽고 나니 잊고 있었던 옛 추억이 떠올랐습니다. 처음 ‘산’다운 곳에 오른 산이, 신학교 1학년 봄학기를 마치자마자 동아리에서 함께 오른 지리산이었습니다. 화엄사에서 출발해 천왕봉에서 일출을 보고 산청으로 내려오는 일정이었습니다. 산다운 산에 처음 오르다 보니 아는 게 없어서 그저 걷기만 했습니다. 겁 없이 그렇게 가다 보니 다리를 다친 사람이 생겨 다친 사람을 부축해야 했고, 배낭을 메주기도 해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계획된 목적지까지 앞만 보고 가는 게 목표였다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생기자 서로를 보게 되었고, 쉴 때는 온 산봉우리들을 보며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았습니다. 천왕봉을 눈앞에 둔 세석산장에 짐을 풀고 쉬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목표했던 눈앞에 둔 천왕봉에 대한 아쉬움을 가득 안고 가장 짧은 코스인 거림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나마 세석산장에서 발밑에 깔려있던 운해가 그 아쉬움을 좀 달래주었습니다. 거림으로 내려오는 길은 짧았지만, 거림계곡을 건너야 했습니다.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물살이 꽤나 셌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위험한 일이긴 한데, 함께 한 이들이 서로의 손을 꽉 잡고 의지하며 조심조심 발을 옮겨 건넜습니다. 그리고 비록 목표한 천왕봉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큰 사고 없이 내려왔다는 것에 기뻐했습니다. 그렇게 저의 아무것도 모르고 덤빈 첫 등산이 끝났습니다.

 쉽게 오를 수 없는 히말라야 16좌 완등한 엄홍길 대장은 인생의 17좌를 오르고 있다고 합니다. 그 17좌는 ‘사람의 산’입니다. 히말라야에서 처음으로 떠난 보낸 세르파 술딤 도르지의 고향인 네팔의 팡보체 마을에 학교를 세웠고, 다친 다리를 제때 치료하지 못했던 밍마참치가 수술을 받아 그 학교에서 간호사로 아이들과 마을 사람들을 진료하며 지내도록 도와주었다고 합니다. 엄홍길 대장은 인간이 쓰는 언어 중에 가장 어려우면서 아름다운 말이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의 산에 오르며 얻은 또 하나의 아름다운 말은 ‘나눔’이라고 합니다. 나누는 순간, 베푸는 순간 손해 보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 순간 더 큰 것을 받고, 더 큰 행복을 느낀다는 겁니다. 엄홍길 대장은 그렇게 산을 통해 겸손을, 동료들을 통해 고마움을, 그리고 사람을 세우며 행복을 배운다고 합니다. 우리도 삶이라는, 그 알 수 없는 산에 도전해서 겸손, 고마움, 그리고 행복을 배우고, 느끼고, 누리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오충환 목사(꿈이있는미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