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의 하나님?> 에리히 쳉어, 이일례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2014)

구약의 시편에는 ‘복수’시편, ‘저주’시편, ‘원수’시편으로 분류되는 여러 편의 시편이 있다. 많은 복수시편 중, 가장 끔찍한 내용을 담은 시편을 꼽으라면 94편과 137편이 대표적이다. “주님, 주님은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복수하시는 하나님, 빛으로 나타나십시오.”(시 94:1) “멸망할 바빌론 도성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를 그대로 너에게 되갚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네 어린 아이들을 바위에다가 메어치는 사람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시 137:8~9)

이 시편에서는 기독교 신앙이 자나깨나 고백하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고 ‘복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복수의 하나님’이라니 웬 말인가? 그래서 쳉어도 의문표를 단다. 아무리 적과 원수에 대한 복수심이 불탄다해도 네 어린 아이를 바위에 매어치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줄 수 있는가? 시편에 나오는 이런 구절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가? 너무나 당혹스럽기 때문에 시편 으로 드리는 기도문과 개신교의 예배 교독문에서 이런 구절은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교회에서는 이런 시편들을 비기독교적이거나 저급한 기독교이며, 구약성서적, 유대교적인 잔재이거나 유물이라고 폄하했다. 이 시편들에 대한 다양한 변명이 있다. 첫째, 복수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의 어두운 면 혹은 이면이라고 신학적으로 경시했다. 둘째, 아시리아 종교의 폭력성과 비교하여 이스라엘의 그것은 낮은 편이라고, 종교사적인 상대성을 통해 변명했다. 셋째, 폭력적인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난의 상황 속에서 나타난 것이지 폭력을 동기화하는 것은 아니라고, 역사적인 해명을 내놓았다. 넷째, 가나안의 근원과 이스라엘의 화해할 수 없음은 낯선 비방을 야기한다는 사회적, 종교심리학적 해석도 있다.

그런데 에리히 쳉어는 다르게 말한다. “증오, 적대감, 폭력, 보복 그리고 복수는 시편에서 결코 부가적인 모티브가 아니다. 오히려 본질적인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이해를 신학과 심리학은 끊임없이 거부해왔다.” 쳉어는 시편은 우리의 기호에 따라 선택될 수 없다고 단호히 말한다. 시편이 우리의 입맛에 맞게 재편될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시편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시편화하기를 원할 때, 우리의 마음이 우리의 목소리와 조화를 이룬다.”(성 베네딕토의 규칙서, Art.105) 우리가 우리의 분위기에 따라서 시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시편이 우리 안에서 바른 인상(정조, 정서)을 일깨워야만 한다는 것이다. 시편은 삭제와 변형이 이루어질 수 없다. 한편의 온전한 시편으로 기도해야 한다. 어떤 본문이 어색하다고 하여 오랫동안 만지작거리며 수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오히려 본문과 함께 대화하거나 우리가 그 길을 통해서 본문에게 다가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쳉어는 복수, 원수, 저주 시편 등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분노의 감정은 비이성적인 격정이 아니라 정반대로 정의에 대한 높은 문화적인 사상이 진노를 유발한다.“고 말한다. 스토아 철학의 유일신 사상은 절대적인 완전함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고난에 대한 무결을 주장했지만 이스라엘과 기독교의 하나님은 진노하는 하나님이며 ”진노할 줄 모르는 하나님은 예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두려움이 없는 곳에는 신앙이 존재할 수 없다. 진노, 사랑과 연민은 하나님의 심판관직의 특성이며 세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필수적이다.

복수 시편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함의는 신자들로 하여금 고난에 대한 민감성, 특히 죄 없이 고난당하는 자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상기하는 시편이라는 것이다. 쳉어는 기독교가 고난에 대한 민감성을 상실하면서 고난을 정의에 대한 물음이 아니라 죄에 대한 물음으로 변질시켰다고 직격탄을 날린다. “기독교의 하나님 이야기는 고난에 대한 민감함을 상실했다. 기독교 신학이 고난당하는 자의 정의에 대한 질문을 죄인의 속죄에 대한 질문으로 변화시킴으로, 처음부터 기독교신학은 죄 없이 고난당하는 자의 정의에 대해 멀리했다. 기독교에서 고난의 윤리는 죄의 윤리로 변형되었고, 고난에 민감한 기독교로부터 죄에 민감한 기독교가 되었다.”

쳉어의 시편에 대한 다음 정의들은 신앙의 실체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영성의 근본적인 본질을 밝힌다. “‘저주시편’은 역사의 가능성을 구원사적으로 사용하거나, 개인적-영적인 피안의 세계로 밀어버린 기독교인의 신앙에 대한 시편의 실제적인 도전이다.”
“‘복수시편’은 신정론 문제와 관련하여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고발을 다루며 고난을 통해 왜곡된 세계 속으로의 편입과 그것을 통해 강요되는 존재에 대한 동의의 부정을 참아낸다.”
“‘원수시편’은 하나님 자신에게 이러한 부정을 탄원하고 고발하며 제시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원수시편은 기도의 가장 중요한 형식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지향하여 그들의 손을 내어 뻗고 있으며, 하나님께 저항하며 주저 없이 모든 말로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인들이 하나님께 저항하여 모든 것을 말하는 곳에서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이러한 시편들은 인간의 불의와 억울함으로 하나님께 호소하는 탄원이다. “탄원은 그리스도인의 일상에서 특별한 형식을 갖출 필요도 없이 분출하는 것, 그러나 오래 전부터 탄원은 교회의 예배 양식에서 사라졌다. 오늘날 탄원의 근본적 의미가 예배와 신학에서 고려되어야 한다. 오늘날까지 탄원은 교리와 윤리에서 중요한 의미를 형성하지 못했고, 신학과 교회에 관한 안내서와 사전에서 그 개념이 조직화되지 못했고 누락되었다.” 쳉어는 탄원기도의 의미를 고난과 정의 수립은 물론 탄원기도를 통해 가장 열정적인 하나님의 사랑의 투쟁을 체득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탄원을 기도로 경험한다면, 그 기도 속에서 다른 사람들의 고난을 듣고 함께 고통을 나눈다면, 우리는 성서의 원수시편을 하나님의 진리를 위한 열정적 투쟁으로 수용하는 것을 배울 것이다.” 나는 인생의 가장 곤고한 시절, 이 책을 통해 복수시편이야말로 삶의 가장 밑바닥에서 자라 형성된 기도문이며, 핍진하고 가난한 생의 위로이며 용기를 준 책으로 경험했다.

에리히 쳉어((Erich Zenger)는 1939년 독일 돌른슈타인에서 출생한 저명한 구약성서학자다. 로마, 예루살렘, 하이델베르크, 뮌스터 그리고 뷔르츠부르크에서 철학과 신학을 전공하고, 1971년 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동양학(Orientalistik)을 연구했다. 1964년 로마에서 사제서품을 받았다. 1971년 아이히슈테트 대학교를 시작으로, 1973년부터 2004년까지 30년 이상 뮌스터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역임하고, 은퇴 후에는 명예교수로 봉직하다, 2010년 뮌스터에서 선종했다. 『구약성경 개론』(분도출판사, 2012)이 있고, 시편 연구서로 『복수의 하나님?』, 『함께 담을 넘는 하나님: 시편 입문과 주석』(대한기독교서회, 2022)과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나는 당신의 얼굴을 찾나이다(Ich will die Morgenröte wecken. Dein Angesicht suche ich)』 등의 연구 외에 3권의 전체 시편 주석이 있다.

심광섭 목사(은퇴, 경기연회 색동교회 소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