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 푸드(Soul food)’는 미국 남부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전통 음식을 일컫습니다. 프라이드치킨, 버펄로 윙, 맥앤치즈 등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열량이 높고 향신료의 함량이 많은 음식이지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소울 푸드’는 향수를 일으키는 고향의 맛, 어머니의 음식, 위로가 되는 추억의 음식을 의미합니다. 

얼마 전 가족들과 함께 ‘소울 푸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저의 소울 푸드로 돌아가신 어머니가 만들어 주시던 콩국수를 꼽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너의 ‘소울 푸드’는 뭐냐고 물었더니 어릴 적 아빠가 만들어 주던 짜장밥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의외였습니다. 나름 있어 보이고 고급스런 음식도 많이 해줬는데 짜장밥이라고 하면 아들이 어릴 적 마땅히 차려줄 음식에 없을 때 아무렇게나 뚝딱 만들어 주었던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다음날 정말 오랜만에 짜장밥을 해서 먹었습니다. 먹다 보니 소울 푸드가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무언가 대단한 음식이 아니라 어린시절 일상의 추억으로 이어 주는 위로와도 같은 음식이며 그 어떤 귀한 음식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적어도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맛의 우위성을 지닌 음식이라는 것 말입니다. 여러분의 ‘소울 푸드’는 무엇인가요? 그리움이 짙어지는 이 계절에 우리의 ‘소울 푸드’를 먹으며 위로 받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사실 ‘소울 푸드’라는 이름은 1950년대 이후 미국에서 전세계로 퍼져나간 ‘소울 뮤직’이라는 음악 용어에서 따온 말입니다. ‘클래식’이나 ‘락’과 같이 백인들의 전유물과도 같았던 음악과 달리 가스펠, 재즈, 리듬앤 블루스 등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감성이 실린 음악을 통틀어 ‘소울 뮤직’이라 일컬었고 그와 같은 맥락에 있는 음식을 ‘소울 푸드’라고 부른 것이지요.

지난주 어쩌다가 이 노래의 선율이 떠올랐나 모르겠습니다. 그 멜로디에 이끌려 이런저런 연주를 듣다가 홀로 있던 조용한 예배실에서 기어이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이토록 밝고 유쾌한 음악을 듣고 눈물이 흘러나오다니요. 게다가 평소 너무나 지나친 대중성에 은근히 무시했던 앙드레 류(Andre Rieu)의 연주를 듣고 흘렸던지라 하릴없이 쏟아져 나오는 눈물이 너무나 당황스러웠습니다.    

그 음악은 바로 ‘춤추는 마틸다/Waltzing Matilda’였습니다. 이 노래에서 ‘마틸다’는 우아한 왈츠를 추는 여인이 아닙니다. 떠돌이 노동자(Swagman)와 몸을 맞대고 함께 유랑하는 봇짐(Swag)에 ‘마틸다’라는 우아한 여자 이름을 붙여 준 것입니다. 또한 몸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봇짐을 ‘함께 왈츠를 춘다/You’ll come a waltzing Matilda with me’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척박한 땅으로 내몰려 강인하게 살아야만 했던 호주인들의 해학을 보여 줍니다.  

이 노래의 가사 또한 보통이 아닙니다. 스웨그맨은 방랑을 하다가 양 한 마리를 잡습니다. 잠시 후 목장 중인과 경찰 세 명이 와서 그를 쫓습니다. 주인공은 도망치다가 이 한 마디를 남기고는 결국 물속으로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합니다. 

“You'll never catch me alive!” 
“너희들은 결코 날 산 채로 잡을 수 없어!” 
 
단순한 이야기에 단순한 멜로디, 어쩌면 굉장히 우스꽝스럽고 다른 한편으로는 비극적인 내용이지만 이 마지막 한 마디와 이후 유령이 되어서도 물가에 출몰한다는 후일담에 호주인들의 투지가 서려 있습니다. 그의 마지막 한마디는 제가 흔들릴 때마다 붙드는 말씀과 같은 의미일 것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장 38~39

이 노래는 호주의 국민노래로서 우리나라로 치면 아리랑과 같은 위상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국가를 이 노래로 바꾸자는 여론도 많습니다. 이 노래의 작사자인 밴조 패터슨은 호주 10달러 지폐에 그 얼굴이 새겨져 있으며 이 노래에는 호주인들의 마음을 뜨겁게 하는 힘이 있어서 시드니 올림픽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중요한 순간마다 애창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터프하기로 유명한 호주 국가대표 여자 축구팀의 애칭은 ‘The Matildas’입니다. 

그나저나 어쩌다가 소울 푸드와 소울 뮤직을 이야기 하다가 이 노래 ‘춤추는 마틸다’로 이어진 것일까요?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이 음악과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며 며칠을 보내고 있었는데 문득 기억 저편에서 이 노래의 멜로디에 가물가물 우리말 노랫말이 실려 오는 것이었습니다. 

‘ .... 가파른 언덕 흐르는 냇물 그 속에 뛰놀던 친구들아...아무리 불러봐도 대답 없는 친구들 내 노랫소리를 들어라...’

그리고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노래가 그토록 제게 친숙하게 들리고 소울 푸드를 먹었을 때처럼 저의 눈물샘을 터트린 이유는 저의 소울 음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만,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의 기억이었기에 저의 소울 음악인지도 몰랐던 것이었지요.  

이 노래는 1983년 KBS2에서 방영되었던 ‘비밀의 계곡’이라는 의 주제곡으로 쓰였습니다. 원곡과는 완전히 다르지만, 우리 말로 새로 입힌 가사가 참 정겹습니다. 어쩌면 이 노래는 그 시절의 어린이들이 아니라 먼 훗날 어른이 되어 버릴 이들을 위한 노래, 그들을 위한 ‘소울 음악’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어린 시절, 보고파도 볼 수 없는 함께 놀던 친구들, 모두가 그립습니다. 

해맑은 아침이면 정답던 얼굴들
이제는 뿔뿔이 흩어져
보고파도 볼 수 없는 친구들
내 노랫소리를 들어라

가파른 언덕 흐르는 냇물
그 속에 뛰놀던 친구들아
나무 속에 감추어둔 물총이
아직도 우리를 기다려

어스름 저녁이면 들려오던 목소리
다시는 들을 수 없겠네
아무리 불러봐도 대답없는 친구들
내 노랫소리를 들어라

가파른 언덕 흐르는 냇물
그 속에 뛰놀던 친구들아
아무리 뒹굴어도 변치 않는 계곡에
모이자 노래하자 뛰놀자

https://youtu.be/7UFmwArST-I?si=5pB8EsukVvNVMvU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