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집에서 보다> 도스토옙스키와 갱생의 서사, 석영준·손재은·이선영·김하은 저, 열린책들, 2024)

도스토옙스키는 시베리아 유형에서 돌아온 뒤 유배지에서 겪은 일들을 토대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의 집의 기록>이라 불리게 될 소설입니다. 1860년 9월에 시작하여 1862년에 완성되었습니다. 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유형생활을 마친 뒤 시베리아 오지에 정착해 아이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살다 세상을 떠난 고란치코프의 방에서 공책 한 권이 발견됩니다. 그의 수기에는 지난 10년간의 감옥 생활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감옥에서 겪은 가장 괴로운 것은 일분일초도 홀로 있을 수 없다는 현실이었습니다. 살을 맞대고 지내야 하는 온갖 종류의 난폭하고 야만적인 죄수들, 자기가 저지른 살인에 대한 참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의 뻔뻔스러움은 인간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킵니다. 

감옥에서 죄수들은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옷을 입거나 벗어야 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이런 상황에서 인간이 본질적으로 육체적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감옥 중에서도 다른 죄수들이 거처하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그곳에 있는 죄수는 자기만의 집에 혼자 살면서 죄수복도 입지 않고 자율적으로 생활합니다. 그러기에 모든 죄수들은 하나같이 그곳에 있는 죄수들을 부러워하며 그것에 가기를 소망합니다. 

감옥에서는 죄수복뿐 아니라 족쇄 역시 죄수들의 의식을 옥죄는 도구입니다. 족쇄가 가하는 청각적 자극은 강렬합니다. 누구 하나라도 몸을 움직이면 귓속을 울리는 철의 마찰음은 벗어날 수 없는 처지를 상기시킵니다. 죄수복과 족쇄는 하나의 수치심이며 굴욕이고 육체적, 정신적 부담이 됩니다. 야위고 허약한 육체와 그곳에 채워진 무겁고 단단하고 강한 족쇄는 강하게 대비되며 벗어날 수 없는 현실 앞에 서 있는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을 연상하게 합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죄수복과 족쇄와 함께 죄수의 낙인에 대해 언급합니다. 낙인은 죄수의 몸에 직접 새기는 형벌입니다. 옷과 족쇄는 형기가 끝나면 벗어던질 수 있지만, 낙인은 출소 후에도 몸에서 지울 수 없는 불멸성과 고정성을 가집니다. 

죄수들이 집단으로 목욕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빡빡 깎은 머리에 온 몸에는 채찍으로 맞은 상처와 낙인, 목욕탕 안에서 울려 퍼지는 족쇄라는 쇠사슬이 내는 끔찍한 소음은 지옥을 연상하게 만듭니다. 바닥을 질질 끄는 1백 개의 쇠사슬 소리, 아비규환의 목욕탕을 들여다보면 누구라도 그곳에서 지옥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침내 형기를 채우고 출옥하는 고랸치코프의 발목에서 족쇄가 잘려나갑니다. 그 순간의 마음가짐대로 고랸치코프는 여생을 살다갔을까요? 그의 새로운 삶은 어떠했을까요? 고랸치코프는 지옥과 다름없는 감옥에서 벗어난 후 기쁨과 희망에 가득한 새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오히려 음울한 모습으로 무미건조한 삶을 살아갑니다. <죽음의 집의 기록>은 도스토옙스키의 자전적 소설입니다. 그는 이 소설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봄을 통한 부활 가능성을 얘기합니다. 어떤 사람은 감옥에 오기 전에도, 감옥에 온 후에도, 감옥을 나간 뒤에도 동일한 지옥에 갇혀 살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감옥에서 나온 후, 족쇄가 끊어진 후에 완전히 새 새사람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유형의 사람이어야 하겠습니까?

이기철(응암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