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유진 피터슨 지음, 이종태옮김 (IVP, 1999)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유진 피터슨만큼 인기 있는 기독교 작가는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는 영향력이 있습니다. 그의 탁월함은 그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묻혀있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데 있습니다. 그는 독자를 성경 속 인물과 현장 속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리곤 이내 발 딛고 있는 현실과 마주하게 합니다.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은 그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초기 대표작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는 다윗 이야기를 통해 다윗이 내 안에서, 나와 함께 우리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합니다. 

젊은 시절, 신앙생활에도 철이 드는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내 안에서는 한동안 보수주의 신앙과 자유주의 신앙이 치열하게 자리다툼을 하였습니다. 물론 그것은 정확한 의미의 보수주의와 자유주의가 아니라 상식적으로 통용되는 문화로서의 보수와 자유였다는 것이 좀 더 적절할 것입니다. 청년 시절, 나에게 보수적인 신앙은 폐쇄성과 편협함의 대명사였습니다. 신앙을 지루하고 답답한 것으로 만드는 주범이었습니다. 이에 비해 자유주의 신앙은 좀 더 넓은 시야와 더 인간적이란 매력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달랐습니다. 자유주의는 영락없는 책상물림, 양보와 타협과 같은 맥없는 모습으로 귀결되기 일쑤였습니다. 당연히 자유주의 신앙은 내 믿음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에 답을 주기는커녕 더 큰 혼란을 안겨주곤 했습니다. 

이때 큰 도움을 준 책이《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입니다. 이 책을 손에 들고 처음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 신앙은 현실을 다루는 능숙한 삶의 언어임을 깨달았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 책에서 ‘신앙의 본질은 철저함(radical)과 동의어’라고 강조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이 말에 전적으로 공감하였지요. 이 책은 이야기책처럼 편하게 읽힙니다. 그런데 쉬운 이야기에 담긴 힘이 만만하지 않습니다. 성서의 리얼리티를 삶과 연관시켜 주는 작가의 영성의 힘일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은 성경을 이야기라고 규정합니다. 이야기는 성령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문학 장르로서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 형식으로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그는 《비유로 말하라》에서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여정도 ‘사마리아 이야기’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은 사무엘상 16장에서 열왕기상 2장에 걸쳐 나오는 다윗의 긴 생애를 다룹니다. 유진 피터슨은 다윗 이야기를 모두 20개의 주제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그 주제들은 이름, 일, 우정, 성소, 아름다움, 공동체, 관대함, 슬픔, 어리석음, 고통, 사랑, 죄, 죽음과 같은 삶에서 늘 직면하는 문제들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전하는 다윗 이야기의 방식은 주인공 다윗과 만났던 인물들을 대응자로 내세우거나, 다윗이 처한 상황을 그가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초점을 맞추고 전개됩니다. 다윗과 그의 대응자가 일을 하는 법과,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소통법과 자기표현을 만날 수 있습니다. 피터슨의 말마따나 ‘이야기야말로 하나님의 계시를 가장 잘 드러내는 통로’임을 실감하게 되지요. 

다윗과 사울의 이야기를 한번 볼까요?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일’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됩니다. 일을 잘하는 왕이 되려고 했던 사울왕은 일을 위하여 하나님을 방편으로 끌어들입니다. 사실은 그 모습이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해서 깊은 공감과 함께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킵니다. 사울이 급하고 두려운 마음에 스스로 제사하는 순간, 그는 예배를 도구화하는 나락에 떨어집니다. 그 결과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다윗과 사울을 통해 우리는 일과 예배가 일치를 이루어야 한다는 통찰을 얻게 됩니다. 골리앗의 물맷돌 이야기는 어떤가요? 물맷돌은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는 믿음의 상상력입니다. 우리는 늘 깨어 물맷돌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아야 합니다. 이걸 영적으로 깨어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믿음의 상상력이 생생할 때만 믿음은 현실을 극복하는 실재적인 힘이 됩니다.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의 영어 제목은 “Leap over a wall : Earthy spirituality for everyday”입니다. “벽 뛰어넘기-일상을 위한 흙의 영성”이란 말입니다. 이 책은 우리의 믿음이 땅에 뿌리박은 현실의 영성이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다윗 이야기는 흙으로 빚어진 인간이 땅에서 겪는 삶의 온갖 내용이 실제로 영적인 성장을 가져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리하여 ‘인간적이라는 말은 그리스도인다움이란 말과 동의어’라는 것을 강조하지요. 모든 삶은 유기적으로,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하나님의 구원과 거룩의 역사에 사용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유진 피터슨이 재구성한 다윗 이야기는 울끈불끈 솟은 힘줄과 핏줄을 가진 인간 다윗의 생생한 신앙을 우리 앞에 선물합니다. 유진 피터슨의 다윗 이야기는 다윗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나와 그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리처드 포스텨). 

이광섭목사 / 전농감리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