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인생』, 카렐 카페크, 열린책들, 12,800원)
 사는 게 참 어렵다. 삶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이 너무나 끝없이 이어져서 그것이 마치 인생인 것만 같다. 하지만 누군가를 기리거나 회고한 이야기를 보거나 들으면 인생은 내가 어려움을 토로한 것과 다른 무언가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자서전을 낸다. 저마다 아주 두껍게 낸다.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아주 특별한 것처럼 쓴다. 그런데 이 체코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는 『평범한 인생』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물론, 반어법일 수도 있다. 아니면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찬사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인생이란 별난 모험이 아닌 일상적 법칙의 흐름이다. 삶에 나타나는 특이하고 비일상적인 것은 단지 삶의 바퀴가 덜컥거리는 소리일 뿐이다. (20p) 

 소목장이의 아들인 주인공이 죽음을 목전에 두고 쓴 이야기 형식인 이 책은 쉽고 잔잔하게 어린시절부터 인생의 여정을 회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다 큰 어른이 회고하는 어린아이의 엉뚱함, 나약함과 더불어 자신의 과거를 안쓰럽게 여기는 연민도 당연히 첨가되어 있다. 그러나 청소년과 청년시기를 회고하는 단순한 이야기 서술 중간에 갑자기 등장하는 날카로운 인생에 대한 관조는 담담한 듯 번뜩인다. 

 이것이 인생이란 말인가? 그렇다. 이것이 인생이다. (82p)

 우리는 많은 인생들을 본다. 그리고 우리의 인생을 산다. 수많은 순간, ‘이것이 인생인가? 이것이 삶인가?’ 묻는다. 누구에게 묻는 줄도 모르는 이들은 자기 자신에게 묻는다. 다행히, 우리는 물어볼 대상이 있다. 오, 주여. 이것이 제 인생입니까?

 성경 속에 등장하는 많은 인물, 인물들의 삶의 유형은 거의 모든 세상에 존재하는 유형을 담아 놓았다고 한다. 삶의 경우의 수를 정리하면 모두 성경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덕분에 우리는 이미 선행되어 기록된 삶의 흔적들 위에 우리의 삶을 시시때때로 얹어보며 토로하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희망을 품기도 한다. 

  담임목회를 한다는 것은 그 수많은 삶의 이야기를 듣고 연결하는 일이다. 지난주에는 장례가 난 성도의 삶이 있었고, 이번 주에는 아주 사소한 말다툼으로 마음이 상한 성도가 있었다. 가족이 어렵고, 사정이 어려운 삶의 고난 이야기가 들려 온다. 그러면 나는 이번 주일에 이 삶이 모인 자리에 어떤 성경의 삶을 소개하고 말해 주어야 할 것인가. 늘 주님만이 아신다. 이 단순한 이해가 나와 성도와 모든 하나님 자녀들의 삶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 이해가 바로 나이자 나의 삶이다. 이제 내가 살아온 모든 것은 내 경험 안에 축적되어 있다. 또다시 그 전부를 응용할 수 있게 되었고, 삶 전체를 다시 한번 살게 되는 것 같았다. (127p)

 평이하게 사연을 풀어내는 것 같은 전반부를 넘어서면 후반부에 이 책의 진가가 드러난다. 자신의 삶에 질문하고 답하며 단순한 사실로서의 삶이 아닌 부모와 환경과 의도와 의지와, 온갖 내면의 작용과의 연결을 시작한다. 그것은 주요했던 인생사의 이야기들을 감정을 중심으로 또는 욕망을 중심으로 자아와 연결시킨다. 

첫 번째는 평범하고 행복한 사람이고, 두 번째는 출세를 위해 몸부림치는 억척이이고, 이 우울증 환자가 세 번째 인물이지. 유감이지만 그것은 세 개의 삶이고, 서로 다른 존재들이야. 절대적으로, 극단적으로. 근본적으로 다른 삶이지. 그건 전체적으로 볼 때 한 개의 평범하고 단순한 삶이야. (159p)

 ‘내면을 뒤져보는 일’. 삶의 내면을 뒤져보는 주인공의 후반부 서술은 인생과 자아에 대한 많은 철학적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나의 주요했던 자아들이 행한 삶의 단편들, 가능성으로만 남아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지만 그 때 분명히 있었던 자아들, 상상들을 자신의 삶을 예시로 들어 설명해 나가며 독자에게 너는 어떠하냐고 묻는다. 그리고 주인공은, 또한 작가인 차페크는 인생과 한 사람의 존재에 대해서 광폭적인 결론을 내린다. 

인생은 여러 상이하고 가능한 삶들의 집합이며, 그중에는 단지 하나 또는 몇 개만이 실현되는 반면, 다른 삶들은 단편으로서나 가끔 발현되든지, 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213p)

그 모든 것은 너이다. 네 속에 그런 다양성이 있으니까. 모든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들을 인지할 수 있다. 그 모든 게 네 내면에 있다. 그들 중 각자는 네 삶의 어떤 것을 살았다. (238p)

가장 평범한 인생이다. 내 것이 아닌 우리의 삶, 우리 모두의 광대한 생명 말이다. 우리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면 우리 모두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평범하면서도 그것은 축복이다.(240p)

 인생은 단순한 하나의 자아로만 이어지지 않는다. 바울이나 다윗처럼 아주 극적이지 않아도 반항과 거부의 시기나 방황과 괴로움의 시기도 나름대로 있다. 우울과 억척과도 같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자아들의 돌출도 있다. 따라서 인생은 그런 다양한 자아들의 삶이며 다양한 삶들의 집합체다. 그리고 다양한 자아, 삶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인생은 결코 한 개의 인생이 아니며 우글거리는 많은 사람의 광대한 생명이다. 작가는 이같은 이유로 타인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삶,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가능하다는 인생론을 남긴다. 

 공감, 동감, 이웃을 사랑하기. 타인의 인생을 이해하는 원리는 그것이 모두 내 인생이기 때문이다. 오로지 나의 인생은 오로지 모두의 인생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어쩌면 이 인생론이 ‘공동체’의 이상적인 원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작가의 살아생전에는 보지 못했지만, 어쩌면 인류가 그런 모양새를 과연 이룰 것인지 의문이긴 하지만, “모두가 형제여, 네 형제가 아닌 누군가를 본 적이 있니?(230p)” 물을 때 “지금”이라고 답해 줄 수 있는 순간이 인생에 한 번쯤은 오기를 기대해 본다. 
 
박창수 목사(인천 성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