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없는 진보, 김상봉, 온뜰, 2024

 정치란 무엇인가? 정치(政治, politics)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의미한다.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정치는 위의 정의에 부합하고 있는가?

“한국은 선진국이다. 정치만 빼고...”

우리나라 정치에 대한 자화상을 한 줄로 표현한 말이다. 4.16이란 국가적 슬픔 이후 무능한 정치가 국민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는지 알게 되었다. 어디 4.16뿐인가? 6.25가 발발한 때도, 5.18 광주민주화운동도 정치는 무능했고 그 무능을 감추기 위해 국민을 억압했다. 

역사의 굴곡마다 민중과 진보세력이 힘을 합해 민주화를 이끌고 진실을 밝혀 이 땅을 이끌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정치의 문제를 말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사실은 진보 진영에서 희망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치가 퇴보했다는 말이다. 

저자는 민주주의를 새롭게 할 진보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한국의 정치는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역사였다. 그 투쟁은 지배권력에 대한 비판과 부정의 역사였다. 이것은 진보가 해야 할 역할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멈춰버렸다. 

진보는 보수를 비판하고 부정하는 것을 넘어 대안적 방법을 제시하고 이를 자신의 모습(정치적 행동)으로 구현해야 한다. 하지만 자기이익 앞에 진보와 보수는 야합하고 국민은 뒷전이 되었다. 정당정치에서 진보를 표방하던 이들이 보수정당으로 흡수되는 모습에 보수와 진보를 구분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게 한다. 다 똑같은 놈들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저자는 후퇴한 우리의 정치에 영성을 소환하는데 그 개념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들 각자의 마음이 무한히 큰 하나의 마음으로 이어져 있고, 하늘과 사람이 근원에서는 하나로 합일해 있으며, 신의 마음이 곧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모두 표현이 다를 뿐 나와 전체가 근원에서 하나라는 믿음의 표현이다.”

우리의 정치를 새롭게 한 정치적 활동에는 전태일의 노동운동, 5.18광주민주화 등이 있었고 그 속에는 너와 나가 다르지 않다는 영성에 기초한다. 이는 맹자가 말한 측은지심(惻隱之心) · 수오지심(羞惡之心) · 사양지심(辭讓之心) · 시비지심(是非之心)이며 예수가 가르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다르지 않다. 

진보에도 위에서 말한 영성이 있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나쁜 놈들의 전성시대를 보며 진보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자문했으리라 생각된다. 진보를 유지할 영성의 힘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저자는 믿음을 언급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은... 역사에 대한 믿음, 전체에 대한 믿음 그리고 나와 그 전체가 하나라는 믿음이다. 오직 이 믿음 속에서만 우리는 세상의 고통 속에 자신을 던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희덕 시인의 노래한 것처럼 불가능성의 가능성이란 믿음이 필요하다. 불가능성의 가능성을 믿는 그 믿음의 대상은 무엇인가? 역사란 진보한다는 믿음이다. 역사란 주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런 역사에 믿음이란 맹목적이지 않을까? 저자는 말한다.

“역사에 대한 믿음이란, 역사가 우연도 맹목도 아님을 믿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에 뜻이 있음을 믿는 것이다. (중략) 그 역사는 우리가 수난과 저항과 투쟁 속에서 형성해 온 우리 자신의 역사이다. 그리고 그 역사에 뿌리박은 믿음이란 어쩌면 그 속에서 스스로 믿음의 모범이 된 사람들이 선구적으로 보여 주었던 그런 믿음일 것이다.”

믿음이 없기에 세상은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지 모르겠다. 예언자들의 상상력으로 그려진 새 하늘과 새 땅을 믿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듯이 오늘과 다른 세상이 오리라는 믿음이 진보의 운동성을 만든다. 그런 측면에서 영성 없는 진보란 말은 참이다. 영성이 없다는 이 말이 어디 진보만의 이야기일까?

총회농촌선교센터(예장통합) 원장 이원영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