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아려본 슬픔> C.S. 루이스 저, 강유나 역, 홍성사, 2019)

C.S. 루이스의 저서는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읽는 책 중 하나이다. 그는 치밀하고도 논리적인 변증과 명료하고 문학적인 문체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순전한 기독교>,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고통의 문제> 등의 작품이 유명하고, <나니아 연대기>라는 소설은 영화로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헤아려본 슬픔>은 전혀 다른 글이었다. 이것이 C.S. 루이스의 저작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낯설게 느껴졌다. 이 책에는 하나님에 대한 변증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회의와 의심, 답답함과 갈증이 여실히 드러난다. 루이스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슬픔과 고통의 문제,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뜻에 대하여 더욱 깊은 지점에 도달하게 된다.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과정이 곧 하나님을 알아가는 과정이고, 아픔과 고통을 통과하는 통로이다. 

<헤아려 본 슬픔>에서 C.S. 루이스는 그의 아내 H를 암으로 떠나보내며 겪은 고통을 적어 내려간다. 그냥 슬픔과 고통에 대한 감정을 쏟아 놓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기 아픔의 이야기를 질문하고 답하는 형식으로 기록했다. 그의 중얼거림에는 하나님을 향한 원망과 신뢰가 동시에 담겨 있다. 현실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기에 하나님을 원망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그분에게로 나아간다. 그래서 루이스의 정돈되지 않은 감정과 슬픔의 고백은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된다.

그의 처절한 감정 토로는 첫 페이지부터 시작된다. H를 잃은 슬픔이 마치 두려움의 감정과 비슷하다는 첫 문장부터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슬픔이 마치 두려움과도 같은 느낌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 주지 않았다. 무섭지는 않으나, 그 감정은 무서울 때와 흡사하다. 똑같이 속이 울렁거리고 안절부절못하며 입이 벌어진다. 나는 연신 침을 삼킨다.”(19)

그는 슬픔은 게으른 것이라고도 말한다. 
“또한 슬픔은 게으른 것이라고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았다. 일상이 기계적으로 굴러가는 직장에서의 일을 제외하면 나는 최소한의 애쓰는 일도 하기 싫다. 글쓰기는 고사하고 편지 한 장 읽는 것조차 버겁다. 수염 깎는 일조차 하기 싫다.”(21) 

누군가를 잃은 아픔은 두려움과 게으름을 몰고 온다. 홀로 남겨진 앞으로의 생을 두렵게 만들고, 삶의 의지를 말살시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든다. 그런 무기력함과 현실에 대한 회피 속에서 삶은 잔인하리만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어진다. 혹,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낸 기억이 있는가? 죽을 만큼 힘든 고통의 자리에서 근근이 버티며 아픔의 시간을 통과해본 적이 있는가? 작가의 말처럼, 슬픔은 한 존재를 두려워하고, 게으른 존재로 전락시킨다. 이것은 인간을 적극적인 나아감이 아니라, 수동적인 받아들임과 수용의 존재로 바꾸는 것이다. 

그는 슬픔은 ‘상태’가 아니라 ‘과정’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사실, 아픔의 기억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며 희석되고, 덜어내며, 승화되는 일련의 과정일 뿐이다. 루이스는 끝내 슬픔을 이겨냈다거나, 극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한 몸이었던 아내를 잃은 후의 슬픔은 다리를 절단한 후 회복하는 환자와 같다고 말한다. 격렬한 고통이 지나가고 의족을 의지해 걸을 수 있게 된 상태. 상처 부위는 아물고 고통도 잠잠해지겠지만 다리가 없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동시에 그 사실을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느끼거나 행복을 느끼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 책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슬픔과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 낙서장처럼 두서없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큰 울림과 공감이 되었던 것은 ‘관계’에 대한 삼층(三層)적 해석 때문이었다. 나와 너의 관계는 둘 사이의 무엇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의 존재를 요청한다. (그래서 모든 관계는 삼중 구조로 되어 있다.) 타자의 존재는 그 관계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 요청한다. 루이스에게 H는 하나님의 확실한 선물이었다. 셋은 늘 함께했다. 마찬가지로, 그녀를 떠나보냈을 때 느끼는 원망과 상실감도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회의와 갈증으로 다가온다. C.S. 루이스의 탁월함은, 그는 절대 절망의 아픔 속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모든 감정을 조목조목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감정이 프리즘을 통과한 빛처럼 다층화, 다각화되며 진짜 믿음이란 어떤 것인가라는 물음을 던져준다. 

이 책에서 루이스는 욥이다. 사람들은 그 마음을 이해하는 양 공감하고, 해석하고, 판단한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상황에 할 말이 많았다. 그러나 절대 슬픔의 상황에서는 논리적인 설명도, 감정적인 공감도, 정서적인 교감도, 신학적인 이해도 다 부질없는 것이다. 아픔은 오롯이 당사자의 몫이므로! 작가는 사람의 위로를 구하지 않고, 그 상황을 하나님께 아뢴다. 아니 원망하며 탄원한다. 압도하는 삶의 문제 앞에 어찌할 바를 몰라 질문만을 던지는 영혼 앞에 하나님의 대답은 침묵이다. 하나님은 다 아실까? 하나님은 다 계획하셨을까? 여기에도 그분의 뜻이 있을까? 분명한 대답은 없다. 아픔의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새로운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를 기대할 뿐이다. 그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알 수 없는 한 걸음을 비틀거리며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 책은 덮고,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요약도, 설명도, 정의도 내리기 쉽지 않았다. 책의 제목은 헤아려 본 슬픔인데, 책의 내용은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이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감정 앞에 솔직하게 나아가 언어의 형식으로 그 마음을 풀어내려고 애를 쓴다. 정돈되지 않아 뒤죽박죽이지만, 그 안에 진정한 사랑, 삶의 의미, 아픔의 승화, 믿음의 도약 등이 담겨 있다. 그는 글을 적어 내려가면서 자기 자신과 만나고, H와 만나고, 하나님과 만나며 치유의 과정을 거치는 듯하다. 그 아픔의 이야기가 오늘 내 삶의 의미와 존재를, 그리고 사랑하는 이의 소중함을 더욱 선명하게 비춰준다.

신동훈 목사 (마포 꿈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