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리즈 파텔, 제이슨 W. 무어, 백우진, 이경숙 옮김, 북돋음, 2020)

1989년 사회주의를 내걸었던 소련을 중심한 동구권이 몰락한 이래 세계는 여전히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일부 나라를 제외하고 자본주의가 평정했다. 심지어 일부 사회주의 국가조차 자본주의의 거대한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과연 자본주의 천하를 이룩한 오늘날 세계는 행복한가? 도처에서 터져 나오는 불평등과 폭력, 무엇보다 이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기후위기의 도래는 오히려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근본적 물음을 제기하도록 만들고 있다.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바로 ‘자본주의’를 문제 삼고 있다. 학자들은 약 1만 2천 년 전부터 현재까지의 시기를 지질학적으로 홀로세라고 부른다. 그러나 최근 그중 2천 년을 따로 떼어 인류세(Anthropocene)라고 명명하자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지구 환경의 변화에 인류가 크게(그리고 나쁘게) 영향을 끼쳐온 까닭이다. 본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1400년대 이후를 자본세(Capitalocene)로 부르자고 주장한다. 자본주의가 지구 생명망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는 자본주의 600년의 역사가 어떻게 구축되었는지, 그 자본주의는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파고든다. 특별히 일곱 가지 저렴한 것들의 역사를 살펴봄으로써 자본주의를 제대로 이해하고 지구의 미래를 가늠하도록 안내한다. 

저자들은 자본주의 발전의 역사를 세계 생태계, 저렴함, 프런티어라는 개념을 도구로 설명한다. 세계 생태계는 “자본주의가 무한 축적이라는 힘에 추동되어 프런티어를 지구 전역으로 확장한 생태계”라고 정의한다. 세계의 폭력적이고 착취적인 관계가 다섯 세기 전 자본주의에 뿌리를 두고 현재까지도 유기적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또한 자연, 돈, 노동, 돌봄, 식량, 에너지, 생명 등 일곱 가지 저렴한(cheap) 것들의 역사에 주목한다. 이때 저렴하다는 것은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적은 보상을 주고 동원하는 폭력”이다. 이전에는 셈해지지 않았던 것까지 화폐가치로 환산해 최대한 적게 값을 매기는 전략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는 소중한 것들을 저렴하게 만든 역사다. 그러나 노동이건 돌봄이건 에너지건, 모든 것에는 돈이 들고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든다. 여기서 프런티어가 등장한다. 프런티어는 “새로운 저렴한 것들을 확보할 수 있고 인간과 다른 자연의 저렴한 노동을 강제할 수 있는 장소”다. 즉 권력이 작동하면서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주의에 최적화된 장소다. 자본주의는 이 프런티어를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고, 더 많은 곳으로 확장하면서 이윤을 창출한다.

이 책이 돋보이는 지점은 ‘저렴한 세계’가 과연 지속 가능한가를 절박하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프런티어를 발견하고 발명함으로써 유지되어왔다. 그러나 더 이상 값싼 세계가 남아 있는가? 저자들은 이제 프런티어는 전에 없이 축소된 반면 새로운 투자 기회를 찾는 자본의 규모는 어느 때보다 크다고 진단한다. 그간 세계를 저렴하게 만들며 유지되어온 세계는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인식의 틀을 부수는 담대한 상상이 필요하다. 본서는 그에 대해 인식, 보상, 재분배, 재상상, 재창조라는 답을 내놓는다.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고, 그에 걸맞은 제대로 된 보상이 요구된다. 이는 보상을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누가 지불할 지를 따지는 일까지 포함한다. 그것은 마땅히 기존의 자본주의식 저렴화 전략이 없는 세계를 창조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 책은 값진 것들을 저렴하게 만듦으로써 가능했던 자본주의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 자본주의가 인류의 눈부신 진보를 가져왔음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그 진보의 과실이 미래 세대가 치러야 할 비용에 기대어왔다는 사실을 더 늦기 전에 상기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자본주의에 대한 상상은 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감 그리고 그동안 감춰진 비용에 대한 더 많은 앎으로부터 올 것이다.” (’추천의 글‘, 12쪽)

진광수 목사 (바나바평화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