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독일 북서부의 작은 도시 슈베르테(Schwerte)에 있는 베스트팔렌주교회(Evangelische Kirche von Westfalen) 산하 연수원에서 임상 목회 교육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임상 목회 교육이 CPE(Clinical Pastoral Education)로 알려져 있지만, 독일에서는 이를 KSA(Die klinische Seelsorgeausbildung)라고 부른다. 이곳에서는 병원 목회자뿐만 아니라 교도소, 복지시설, 교회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역하는 사람들이 임상 목회 교육에 참여한다. 즉, 독일의 임상 목회 교육은 병원 현장을 넘어서 다양한 임상 현장에서 영적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을 돌보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이 교육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꼭 받아야 한다. 주교회 본부에서 나에게 필수 교육으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 연수원의 앞 뜰

처음에는 KSA 과정이 병원 목회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만 참여하는 줄 알았다. 그래서 필수 교육이긴 하지만, 큰 관심이 없었고 '이런 것까지 꼭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교육에 참여한 지 두 주가 지난 지금, 이 교육을 필수로 지정해 준 주교회 본부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 연수원의 산책로에 있는 석상. 목회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이 교육에는 나를 포함해 베스트팔렌과 라인란트 각지에서 목회하는 10명이 참여하고 있다. 이 열 명은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며, 교육에 참여하면서 자신과 자신의 감정뿐만 아니라 타인과 타인의 감정에도 집중하고 있다. 매 시간 각자의 생각과 감정을 나누며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갔다.

▲ 연수원의 자그마한 예배당

처음 두 주 동안 가장 의미 있었던 시간은 '공격성(Aggression)'을 주제로 한 시간이었다. 내 안에 내재된 공격성이 폭발할 때를 떠올리며 그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우리는 3~4명씩 조를 나누어 개별 공간으로 들어갔다. 각자가 그린 그림을 소개하고, 과거와 현재를 솔직하게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당한 언어적, 신체적 폭력으로 인해 과거를 떠올리기 어려워하는 사람, 지나친 남성성을 강요하던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 학창 시절 겪은 폭력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지난 일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는 사람, 그리고 현재의 상황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 등 각기 다른 사연들이 있었다. 내재된 공격성을 표출하는 방법 또한 사람마다 달랐다.

▲ 연수원의 산책로

이 시간이 나에게 가장 큰 의미가 있었던 이유는, 모두가 서로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을 넘어, 그 시간 이후로 열 명의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 생겼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기 다른 삶을 살아왔고, 동일한 일에 대해 각기 다른 감정을 느끼는 개별적인 존재이지만, 우리를 하나로 묶는 신비롭고 따뜻하며 포근한 끈이 생긴 것이다. 그 끈은 30년 동안 한국에서만 살아온 나와 전혀 다른 역사와 문화, 사회적 배경을 가진 그들 사이에도 이어졌다는 점에서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피부색과 눈동자 색, 언어와 문화는 다르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것을 공유하고 있다. 안타까운 일에는 함께 슬퍼하고, 기쁜 일에는 함께 기뻐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모두 같은 인간이다. 두 주간의 교육을 마치고 잠시 삶의 자리로 돌아가기 전에 우리는 함께 시편 121편을 읽고, 다시 만날 날을 기리며 서로 축복했다

“Ich hebe meine Augen zu den Bergen. Woher kommt meine Hilfe?

Meine Hilfe kommt von Gott, der Himmel und Erde gemacht hat.

Gott lasse nicht zu, dass dein Fuss wanke.

Gott schlummere nicht, die dich behuetet.

Schau, sie schlummert nicht, sie schlaeft nicht, die Hueterin Israels.

Ja, Gott ist es, der dich behuetet.

Gott ist dein Schatten, ist dir zur rechten Hand.

Am Tag wird dir die Sonne nicht schaden, noch der Mond in der Nacht.

Gott behuete dich vor allem Boesen,

Gott behuete dein Leben.

Gott behuete dein Gehen und dein Kommen - von nun an und fuer immer.

Amen.”

▲ 권순명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