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의 규모 있는 교회를 담임하는 K 목사는 평소 자신의 교회보다 더 큰 규모의 대형 교회 목사의 눈치를 보며 비굴하게 행동한다. 하지만 그가 식당에 가서 음식을 시중드는 나이 어린 여종업원에게 대하는 태도는 아주 무례하기 짝이 없다. 주문한 음식이 늦거나 맘에 들지 않으면 반말로 소리를 지르면서 함부로 말을 한다. 같이 간 목사들은 그런 그의 모습이 불편하고 민망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기 행동에 대한 부끄러움이 없다. 더 가관인 것은 그렇게 무례하게 행동한 K 목사는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 그 종업원에게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받는다’라고 하며 전도지를 내민다. 최근 조사에서 ‘배우자 종교로 피하고 싶은 종교’ 중 압도적 1위(96.4%)가 기독교인 이유는 목사와 기독교인들의 모습이 K 목사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나르시시스트의 극단적인 서열 의식에 대해 알아보자, 일반적으로 보통의 사람들은 서열에 대한 감각이 어느 정도 발달해 있다. 상명하복의 위계질서를 목숨처럼 여기는 군대처럼 서열 관계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위계질서와 수직관계를 받아들이는데도 나름 유연함을 갖고, 수직적 관계와 수평적관계를 융통성 있게 대처한다. 사람들과 마음으로 이어지는 평등한 관계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때로는 서열 관계를 인정하고 거기에 맞게 행동하는 유연성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런 서열 관계, 즉 위계나 서열에 거의 신경 쓰지 않고, 사람을 모두 평등한 존재로 생각하고 대우하는 이들도 있다. 나르시시스트의 정반대 성향을 가진 에코이스트들이다. 이들은 “한 인간이 타인을 서열로 판단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은 힘의 논리가 아닌 사람에 대한 존중과 유대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 집에서 일하는 가사 도우미에게나 대통령에게나 똑같은 말투로 말을 건다. 나이 어린 직원이나 직급이 높은 회사의 CEO나 똑같이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고 중요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누가 더 힘이 있는 사람인가를 판단하여 그 사람에게 특별히 굽신굽신하는 일은 없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라는 속담은 이들의 생각을 나타낸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는 에코이스트들과는 달리 극단적인 서열의식을 갖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사람은 ‘승자와 패자, 그리고 모르는 사람’ 3가지로 서열이 매겨진다. 자기보다 더 탁월한 능력, 자신보다 더 강한 권력을 갖고 있어서 자기에게 이득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승자라고 여기고 그들에게 철저히 복종한다. 물론 시간이 지나 효용가치가 떨어지면 더 이상 복종하지 않는다. 반면 자기보다 낮은 지위에 있거나, 자신의 가스라이팅에 넘어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이들이거나, 자신보다 실력이나 소유나 권한이 적은 이들은 패자라고 여긴다. 나르시시스트는 이들을 대할 때, 마치 자신이 주인이라도 되는 양 행동한다. 모르는 이들은 가까운 거리에 있지 않은, 아직은 자신과의 서열 관계 속에 들어오지 않은 이들로, 자신의 의도되고 꾸며진 모습만 보고 있는 소위 SNS 친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에게 있어서 서열이란 실제로 ‘주종관계’와 비슷하다. 나르시시스트는 서열상 윗사람이 주인이고 아랫사람이 종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은 서열상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막 대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자신은 패자들, 소위 아랫사람과는 급이 다른(Another level)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대놓고 그렇게 말하는 이도 있다. 그리고 아랫사람은 윗사람의 말을 절대 거역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만약 나르시시스트가 생각하는 서열의 아랫사람이 자기 말이나 결정에 동의하지 않거나, 반대하거나,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어디 감히 내게 대항하느냐?”며 그 사람을 비난하고 응징을 가하려 한다. 실제로 소시오패스와 나르시시스트가 제일 많이 하는 말이 ‘어딜 감히?’이다.(모든 소시오패스는 나르시시스트이다) 이 말은 일반사람들이 쉽게 하지 않는 말이다. 혹시 자신이 ‘어디 감히?’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면 자신을 돌아보기를 바란다.

왜 나르시시스트들은 이런 극단적인 서열의식을 갖고 있을까? 이들은 타인을 자신을 위한 이용 도구로 여기기 때문이다. 서열 아래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하는 것은 그 앞에 군림함으로 자신의 우월성을 확인하기 위함이고, 서열 윗사람에게 굽실굽실 아부하는 것은 그 사람을 자신의 위치를 높이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기 위함이다. 이것은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의 욕구와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 회사의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알고 있다. 자기 아래 직원들에게 ‘야! 임마! 너!‘하며 함부로 대한다. 회식으로 바비큐파티를 하면 자기 아래 사람보고 “고기 굽는 것은 노예들이 해!‘하며 지시한다. 농담반 진담반 식으로 말하는 것이지만 듣는 이들은 농담이 아님을 알기에 그 앞에서 기분 나쁜 표정도 짓지 못하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고기를 굽는다. 그 직원들의 아내들이 같은 자리에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편들에게 그렇게 말한다. 자기 남편들이 직장에서 그런 대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내들은 표정이 굳어진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그 아랫사람들이 모두 같은 교회에 다니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막말하는 그 직급 높은 사람은 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자기 행동에 조금의 부끄러움도 없다.

이 정도 행동을 하는, 극단적 서열 의식을 가진 나르시시스트가 어떤 조직이나 공동체의 지도자가 되면 그 조직은 잘 될 리가 없다. 나르시시스트 지도자에게 잘 보이려고 아첨하는 이들은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정작 실력 있고 그 공동체를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 아첨하거나 굽신대기 싫어하는 이들은 나르시시스트 리더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한직으로 밀려나거나, 자발적으로 그 조직을 떠나게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서서히 그 조직과 공동체는 능력 없는 예스맨들로 채워지게 되고 생산성과 창의성이 떨어지면서 추락하게 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이렇게 극단적인 서열 의식으로 가득한 나르시시스트들을 만날 가능성이 있다. 이런 서열 관계가 정말 불편한 에코이스트들은 1인기업이나 혼자 일하는 직업을 선택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나르시시즘과 에코이즘의 스펙트럼 전체를 필요에 따라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좋은 사람들과는 평화로운 방식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가되, 극단적 서열의식을 가진 나르시시스트 앞에서는 자신이 서열상 위쪽에 있는 승자가 되어서 그들에게 바른 방향을 지시하고 복종시키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임석한목사(성복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