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계절>, 존 버닝햄 그림/글, 시공주니어, 2008)

(<시간의 지도: 달력> E.G.리처즈, 까치, 2004)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사계절>은 그림책이다. 어쩔 수 없이 보셔야만 한다. 존 버닝햄이 쓴 글은 전문을 싣는다. 지면에 어떤 그림이 실렸을지 상상하며 전문을 읽으시면 좋겠다.

봄에는/ 새들이 둥지를 틀고/ 돼지가 코로 땅을 파헤치고/ 새끼 양들이 뛰놀고/ 오리들이 물장구를 치고/ 꽃이 핍니다
여름에는/ 옥수수가 여물고/ 방학이 있고/ 곤충들이 윙윙거리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천둥과 폭풍우가 칩니다
가을에는/ 낙엽들이 흩날리고/ 다람쥐가 먹이를 모으고 사람들이 트랙터로 밭을 갈고/ 모닥불을 피우고 기러기들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고/ 밤이 길어집니다
겨울에는/ 낮에 안개가 자욱히 끼고/ 밤에 서리가 내리고/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리고/ 비가 줄기차게 내립니다
그러고 나면 다시 봄이 시작됩니다

존 버닝햄은 브라이언 와일드스미스, 찰스 키핑과 더불어 영국 3대 일러스트레이터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작품을 소개하는 글에서, <사계절>은 마치 크고 넓은 창문이 있는 방 안에 편안히 앉아서 창밖 풍경을 막연히 내다보고 있는 듯 편안하다, 고 설명한다. 사실 문밖의 삶의 풍경이 그리 한가롭지는 않다. 한순간 광야로 돌변하기도 한다. 그러나 계절은 바뀔 것이다. 분주하고 번뇌로 일그러진 생활에서 잠시 마음 안으로 <사계절>의 풍경을 가져올 만하다.

성경에서 민수기라는 책의 원제목은 ‘광야에서’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율법의 말씀을 몸에 익히고 새기는 과정을 거쳤다. 가만히 상상해본다. 광야에서 그들의 사계절은 어떤 것이었을까?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그들은 알았을까? 삶이 변화되는 순간을 감지할 지표는 무엇이었을까? 물론 적도와 위도상에서 계절이 낙하하는 지점을 포착하면 광야의 온도와 날씨를 알 수는 있겠다. 그러나 그것은 광야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는 얘긴 아닐 것이다. 

하나님은 절기를 주시고 인생의 계절이 바뀌고 삶이 변화하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광야의 사람들은 가나안을 향하는 공간의 지도만이 아니라 ‘시간의 지도’를 갖게 된 셈이다. 계절의 변화에 둔감한 사람에게 <사계절>과 <시간의 지도: 달력>은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인생광야의 좋은 벗이 되어줄 것이다.

<시간의 지도: 달력>은 무명씨의 담백한 말로 시작된다. “신은 낮과 밤을 만들었고 인간은 달력을 만들었다” 그리고 달력의 기원에서 현재 사용하는 달력까지 거의 모든 달력을 종합해 설명한다. 신석기 시대에서부터 인류의 역사에 등장한 달력의 원리와 역사가 담기고 있다. 여기에 천문학적인 배경과, 문자와 셈법을 발명하고 발전시킨 선조들의 지혜와 노력과 언어와 문화의 교류 이야기가 보태지면서 시간의 흐름과 인간의 역사가 가진 이해 관계를 1년 365일이라는 단 한 장의 지도안에 가뿐히 짜넣은 이유와 과정을 고개 끄덕이도록 알려주고 있다. 

달력은 인간의 역사를 담은 무수한 고갯길과 굽잇길이었다. 정치적인 위기와 격변이 있고, 과학의 진보와 퇴보, 그리고 종교들의 논쟁들, 천재지변과 문명의 충돌, 나라와 민족의 전쟁의 역사가 달력과 명운을 같이 했다. 그런가 하면 가정집과 사무실에 걸린 달력은 평안하고 무료하게, 때로는 소란하고 부산스럽게 여백이 채워지고 있다. 

지금 벽면에 걸린 달력은 그레고리력이다. 정치의 변동과 자연의 변화와 문명의 변화는 ‘시간의 지도’를 그레고리력에서 어떤 지도로 바꾸게 될지는 그 누구도 모른다. 

1부에서는 달력의 이론적 배경을 7장에 걸쳐 설명한다. 2부에서는 선사시대의 달력들과 바빌로니아와 근동의 달력들, 이집트력, 중국과 동아시아의 달력들, 인도의 달력들, 마야와 아스텍의 달력들, 유럽의 네 가지 달력들, 로마력과 율리우스력, 유대력, 이슬람력과 바하이력, 그레고리력, 프랑스의 혁명력, 일주일을 다룬다. 3부는 흥미롭게도 부활절을 다루고 있다. 

천문학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번역의 문제로 수정해야 할 곳이 있다고는 하지만, 부록과 함께 용어해설과 참고문헌과 색인을 꼼꼼히 포함하고 있어 한 번 훑어 읽기보다는 오랜 기간 묵혀 읽기에 꽤 좋은 책이다. 

모든 역사는 예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해서 서술되고 있다. 거슬러 올라가며 과거를 기록하고 펼쳐 전진하며 미래를 기록하고 있다. B.C(before christ)와 A.D(anno domini)는 예수를 중심으로 한 표기라서 B.C.E(before common era)와 A.C.E(after common era)로 기록을 한다. 그렇다고 해도, 예수의 탄생이 기준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저자가 추적한 대로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달력을 만들고 역사를 살아왔다. 올해는 유난한 폭염 탓에 언론에서도 전국 곳곳에서도 호들갑이었다. 그럼에도 가을은 이렇게 찾아왔다. 이 가을에 나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내 인생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시간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지 즐겁게 묵상해 보자.

유성원 목사 (서초 주님의 몸된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