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시작>, 바버라 애버크롬비 지음, 박아람 옮김, 책 읽는 수요일, 2016)

글쓰기는 평생의 숙제다. 특히 목회자에게 글쓰기는 소명이자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단 한 주간도 글을 쓰지 않고는 설교를 준비할 수 없고, 강단에 설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글쓰기는 목회자의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그리 쉽지 않다. 때로는 고통스럽다. 더욱이 설교문 작성은 학문적 논문이나 삶의 이야기를 펼치는 글쓰기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연구와 묵상과 성령의 감동으로 작성해야 하기에 고되고 힘든 일이다. 더욱이 목회자의 글쓰기가 어려운 것은 글쓰기로 끝나지 않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설교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전달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그럼에도 설교를 위한 글쓰기는 설교자에게 가장 큰 축복이고 은혜임이 분명하다. 한없이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의 도구로 사용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설교자의 설교문 작성과 설교 행위를 통해 영광 받으시며 교회공동체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케 하시며 강하고 아름답게 하시기 때문이다. 선포되는 말씀은 거칠고 고된 세상을 살아가는 주님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며,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과 권능을 공급해줌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들로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힘들어도 목회자는 글쓰기를 포기할 수 없다. 목회자의 글쓰기를 통해 하나님은 주님의 종으로서, 말씀 선포자로서, 시대의 예언자로서 훈련시키시고 다듬으시며 임재하시기 때문이다.

한 편으로는 힘든 일이고, 또 한 편으로는 은혜인 설교자의 글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 있다. 미국의 소설가이자 에세이시트인 바버라 애버크롬비가 쓴 [작가의 시작]이라는 책이다. 작가들에게 가장 사랑 받는 글쓰기 멘토인 바버라 애버크롬비는 이 책을 통해 어떤 형태이든 글을 쓰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때로는 따끔한 충고도 아끼지 않는다. 저자는 자신의 글쓰기 경험과 위대한 작가들의 일화와 명언들을 365개의 작은 글들에 녹여 우리에게 선물한다. 이 글들은 반짝이는 보물과 같다. 짧은 글들이지만 큰 용기와 영감을 주는 글들이기 때문이다. 그 중 몇 가지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언제 어디서 글을 쓰든 집필 시간과 집필 공간을 신성하게, 즉 불가침의 시간과 장소로 만들어라.” [영감을 유혹하기] 002

“글쓰기는 취미 생활이 아니다. 우표수집이나 동전 모으기, 그런 게 취미 생활이다. 글쓰기는 소명이다.” [거룩한 소명] 003

“문장은 문명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이 놀라운 단어들의 조합을 배치하는 것은 멋진 일이다. 내게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 그것은 내가 닿을 수 있는 최대한의 신앙이다.” [문장 노동자] 053 ‘존 밴빌의 말을 작가가 재인용함’  

“우리는 그저 앉아 있어야 한다. 소재가 떠오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그냥 그렇게 앉아 있어야 한다.” [엉덩이로 쓰는 글] 056

“책을 읽지 않는 건 진공 상태에서 글을 쓰는 것이다. 독서는 영감을 얻기 위해, 자료를 얻기 위해, 기분 전환을 우해, 본보기로 삼기 위해, 자신이 글을 쓰는 본질적인 이유를 상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작가는 책을 사랑해야 한다.” [독서에 대한 사랑] 186

“나는 은총과 투지로 글을 쓴다.” [은총과 투지] 테리 템페스트 윌리암스의 [나는 왜 글을 쓰는가]에서 재인용 258

“무엇이 빛을 비추는가? 무엇이 환하게 빛나는가? 어떤 종류의 글이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의 삶을 뒤흔드는가? 중요한 것은 완벽이 아니라 진성성이다.” [틈으로 들어오는 빛] 287

“당신이 가진 이야기는 이 지구상의 다른 누구도 당신과 똑같은 방식으로 들려줄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라. 당신의 이야기는 중요하다는 사실, 누군가는 그것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라.” [당신의 이야기는 당신이 써야 한다] 365

위의 문장들은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며 위안과 도전을 받은 문장들이다. 작가들도 글쓰기를 거룩한 소명으로 여긴다는 사실, 글쓰기를 불가침의 신성한 작업으로 여긴다는 사실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자리에 묵묵히 앉아 책을 읽고, 생각하며 은총과 투지로 글을 쓰는 작가들! 그들의 모습이 거룩하고 신성하게 느껴진다. 

목회자도 작가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열고, 세상을 관통하는 눈빛으로, 말씀에서 솟아나는 생명의 글들을 모아 기록하고 선포하는 거룩한 작가이다. 이 시대의 설교자들이 봉쇄수도원의 수도자들처럼 구별된 성소에서 성경연구와 필사, 기도와 침묵, 독서와 묵상, 노동과 글쓰기를 통해 강단을 신성하고 아름답게 만들어가면 좋겠다. 넘치는 미디어와 유튜브 영상이 생각과 영혼을 잠식하는 이 시대에 목마르고 갈급한 영혼들을 위해 ‘생명수 샘물 같은 말씀’을 길어내는 거룩한 작가들이 되면 좋겠다. 목회자의 글쓰기는 거룩하고 찬란한 소명이며 평생의 고독한 영성훈련이기에, 오늘도 문들 닫고 책을 펼치며 또 한 문장을 써내려 간다.

최명관 목사 (혜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