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삼촌>, 현기영, 창비, 2015)

8월 마지막 주, 한국과 일본의 청년 마흔 명이 제주도에 함께 모여 다. 전쟁과 살육의 아픔이 서린 장소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화해와 평화를 고민한다. 오늘은 여러 곳 중 옴팡밭을 방문하였다. 오목하게 파여 쏙 들어가 있는 밭이라서 주민들은 이곳을 옴팡밭이라 불렀다. 4.3 사건 당시 최대의 인명피해로 기록되고 있는 북촌대학살 현장의 한 곳이다.

1949년 1월 17일, 북촌리 마을 사람들은 두 명의 군인들이 죽어있는 것을 발견한다. 무장대의 습격에 사망한 자들이었다. 마을의 원로들은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 회의하였다. 본인들의 짓이 아님을 군인들에게 분명히 납득시켜야 빨갱이로 내몰려 죽임 당하지 않을 수 있었다. 회의 끝에 그들은 시신 두 구를 군대로 옮겨갔다. 군대는 2연대 3대대로 모두 서북청년단원들로 구성된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시신을 옮겨간 열 명 중 경찰 가족 한 명을 제외한 아홉 명을 죽였다. 뒤이어 마을을 포위한 뒤 400여 가옥에 불을 지르고, 뛰쳐나온 1000여명의 주민들을 북촌초등학교로 모이게 하였다. 운동장에 모인 주민들은 군인·경찰 가족들과 아닌 사람들로 나뉘었다. 아수라장이 되었다. 누구라도 군경가족 쪽에 줄을 서기 위해 마구 뒤엉켰다. 군경가족이 아닌 자들은 당팟(밭)으로, 옴팡밭으로 끌려가 총살을 당하게 되었다. 그 수가 1949년 1월 17일에만 350명을 넘었다. 당시 이 일대에는 ‘마치 무를 뽑아 널어놓은 것 같이’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고 한다.

옴팡밭의 가운데에는 작은 봉분이 있는데 이 역시 당시 희생된 어린아이의 무덤이다. 그 옆에는 순이삼촌 문학비가 커다랗게 설치되어 있다. 현기영 작가가 소설 <순이삼촌>으로 오랫동안 묻혀있던 역사와 진실을 문학을 통해 처음 공론화시킨 일을 기념하기 위함이다. 소설은 오랜만에 고향인 제주도 북촌마을을 방문한 화자가 순이삼촌이 음독자살하였다는 소식을 듣는 데에서부터 시작하여, 죽음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순이삼촌은 화자의 친척아주머니로, 비극적 사건의 트라우마로 평생을 신경쇠약과 환청에 시달리다가 비극의 현장인 옴팡밭에서 스스로 숨을 거두었다.

책은 1978년 출판 직후 금서로 지정되었다. 또 작가는 안기부에 끌려가 1달간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하였다. 당시는 4·3사건 언급 자체를 할 수 없었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의 출판을 계기로 하여 4·3사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북촌리에서는 1993년에 이르러서야 마을 원로회를 중심으로 4·3희생자 조사에 나섰다. 1차 조사결과 426명의 사망자 명단을 확인, 2차 조사에서는 479명으로 불어났다. 이 숫자는 아직까지도 계속 유동적이다. 요즘은 뉴라이트니, 광복절이니 정신이 없고 혼미하다. 내가 2024년을 살아가고 있는 게 맞는지 어안이 벙벙할 때도 있다. 우리 현대사에는 청산해야할 것이 아직 너무 많이 남아있다.

노승혁 전도사(색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