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리언: 로물루스> (Alien: Romulus, 2024)

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80년대 중반, 갓 대학에 들어가서 극장에서 보게 된 <에이리언>이라는 영화는 좋은 의미에서 엄청난 충격이었다. 우주를 배경으로 불현듯 출몰한 우주 괴생명체에 대항하여 홀로 남아 작은 소녀를 지키며 싸우는 여전사! 처음 보는 여전사의 SF 액션과 긴장감 넘치는 전개는 영화의 몰입감을 한층 더했고, 영화를 본 이후 <에이리언>은 SF 영화의 고전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내가 본 영화는 <터미네이터>와 <아바타> 시리즈로 유명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이 만든 속편 <에이리언 2>였다는 것을. 나중에 비디오로 찾아본 1편 <에이리언>은 역시나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였다. 액션이 강조된 제임스 카메론의 속편과 달리 리들리 스콧의 첫 번째 영화는 액션보다 긴장감과 공포에 더 치중된 분위기였다. SF 호러물로 분류되기도 하는 <에이리언> 시리즈에 가장 적절한 영화였달까? 이후로 <에이리언>은 무려 4편까지 제작되었다. 그런데 4편의 감독이 모두 달랐고 각각의 영화마다 비범한 감독들의 특색이 잘 드러난 수작이었다는 점에서 ‘에이리언 앤솔러지’라 불리는 이 4편의 시리즈는 독특한 가치를 지닌 SF 영화로 영화사에 남게 되었다.

처음 <에이리언> 시리즈의 문을 연 리들리 스콧 감독은 이후 이야기를 거대하게 확장시켜 <프로메테우스>와 <에이리언: 커버넌트>라는 영화를 통해 인류 생명의 기원과 우주 생명체 에이리언의 기원을 연결하는 프리퀄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야기가 어마어마하게 확장됨에 따라 시리즈의 주인공이었던 에이리언의 자리도 그만큼 희미해져 갔다. 그러던 차에 마침내, 그 옛날의 에이리언이 다시 돌아왔다. 시리즈의 시작을 열었던 리들리 스콧이 이번에는 감독이 아닌 제작자로 <에이리언: 로물루스>를 우리 앞에 내놓은 것이다. 스릴러 영화로 유명한 페데 알바레즈 감독은 리들리 스콧이 시작했던 에이리언 시리즈의 처음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했다. 따라서 어쩌면 독특하게 신선한 지점은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영화는 충분히 재밌다. ‘그래, 이런 게 에이리언 시리즈지.’라는 느낌이랄까? 영리하게도 감독은 시리즈를 전혀 모르는 사람도 상관없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그러나 시리즈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흥미로운 연결점들을 잔뜩 발견할 수 있도록 영화를 만들어냈다.

흥미롭게도 ‘에이리언’(alien)이라는 단어는 성경에도 자주, 중요하게 등장한다. 흔히 외계인(外界人)으로 번역되는 alien은 원래 우주의 다른 생명체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다. 외계인의 한자어가 뜻하는 것처럼 그것은 다른 세상에서 내가 사는 세상으로 들어온 존재를 뜻한다. 즉, ‘외국인’, ‘외지인’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바로 이 존재를 성경은 ‘나그네’ 혹은 ‘객’이라고 표현하면서 고아, 과부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학대를 금지한 존재들 중 하나로 소개한다.(출 22:21-22, 신 24:17) 이 외계인이 그리스어로는 Xenos이며 이 단어로부터 우리가 잘 아는 단어가 생겨났는데, 그것이 바로 외국인 혐오를 뜻하는 xenophobia다. 구약의 시대에나 지금이나 낯선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았던 모양이다. xenophobia에 들어있는 또 다른 그리스어 단어 phobia가 뜻하는 ‘공포’처럼, 예나 지금이나 나와 다른 낯선 존재는 늘 두려움의 대상이고 그러기에 할 수만 있다면 박멸하고야 마는 대상이다. 영화 속 에이리언들 역시 늘 박멸의 대상인 것처럼 말이다.

시간적으로는 1편과 2편 사이의 사건을 묘사한 <에이리언: 로물루스>의 제목에는 로물루스라는 로마 건국의 신화적 인물이 들어있다. 신화 속에서 버려진 쌍둥이 형제 로물루스와 레무스는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란 후 형인 로물루스가 동생 레무스를 죽이고 로마의 초대 왕이 된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에는 많은 형제자매 관계가 등장한다. 따지고 보면 영화의 설정상 에이리언도 인간의 DNA와 결합하여 탄생하는 괴물이니 에이리언 역시 인간과 형제인 괴물인 셈이다. 형제는 서로를 돌보고 보호하기도 하지만 로물루스가 레무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카인이 아벨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영화 속에서 에이리언이 인간에게 그랬던 것처럼 서로를 살해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감리교인들은 1930년 처음으로 고백한 교리적 선언 속에서 다음과 고백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 모든 사람이 형제 됨을 믿으며.” 즉, 우리는 모든 인류를 형제요 자매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에 의해 형제와 자매로 맡겨진 다르고 낯선 모든 타인들을 과연 어떠한 태도로 대해야 할까? 지금과는 분명 다른 태도여야 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시리즈 속에서 에이리언은 충분히 제거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보존되고 유지된다. 인간을 파멸하는 가장 무서운 존재가 결국 인간의 탐욕으로 인해 존재하는 쌍둥이와도 같다니, 참으로 무서운 은유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