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에게 희망을>, 트리나 폴러스, 김석희 옮김, 시공주니어, 2017)

 서로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산다는 게 가능할까? 나는 요즘 들어 ‘외계인이 지구에 쳐들어와도 인류가 하나가 될 일은 없겠다.’라고 생각한다. 이게 무슨 시대에 뒤떨어지는 생각이냐고? 물론 나도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처음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독일, 가나, 페루, 태국, 일본, 미국, 체코, 아이슬란드, 스위스, 우크라이나, 멕시코, 중국, 호주, 슬로바키아의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면서 ‘견문(見聞)을 넓힌다는 게 이런 거구나’, ‘다양성과 차이성이 이래서 중요하구나’ 몸소 깨달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다양성’과 ‘차이성’이 불편해졌다.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을 서슴없이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무례하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이 문제가 저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라고 생각했다. ‘저 사람들의 나라나 문화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내가 한국적 관점으로만 바라보고 판단해서 생긴 문제겠지, 저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내가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겠지’라고 애써 생각했다. 

 하지만 ‘거들먹거리며 동양인들을 깔보는 듯한 우크라이나인들’, ‘자기들끼리만 뭉쳐서 어울리는 체코인들’, ‘길거리에서 상습적으로 무례한 행동을 하는 중동인들’과 같은 상황을 마주할 때면 짜증과 분노가 솟구쳤다. 몇 사람만 보고 일반화하지 말자고 다짐해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었고, 어느 순간 나는 몇몇 집단을 불쾌하게 여기게 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여기에 있는 ‘난민’이나 ‘이민자’들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들이 무조건 선하고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 도움을 주어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 그들이 사회 내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키는 모습들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상 속에서 그동안 내가 한국에서 생각하고 말했던 내용들이 얼마나 안일하고 공허한 말이었는지를 깨달았다. 한국에 있을 때 나는 혐오와 차별을 일삼는 사람들을 향해 분노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교회라면 다양성을 포용하여 모든 사람을 환대해야 한다고, 한국 사회가 지금보다 난민이나 이민 문제에 대해서 개방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정확히 정반대 지점에 서 있다. 그리고 이전에 내가 그런 말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현실과 멀리 떨어진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하나가 되자는 말도, 서로 포용하고 환대하자는 말도 주류인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말들은 이러한 현실과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회의마저 들었다.

 그래서일까, 어느 순간부터 내 모습도 싫어졌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쓰레기처럼 느껴졌달까. ‘타인’도 싫고 ‘나’도 싫어지자 ‘인간’이라는 것 자체에 질려버렸다.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일까...’ 이것이 근래 나를 괴롭힌 문제였다.

 별다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스트레스만 쌓여 갈 때 여자친구가 내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중고등부 여름 성경학교 워크북을 만드는 중인데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책과 질문들을 연관시켜달라는 것이었다. 동화책이기에 큰 부담감을 가지지 않고 책을 읽었는데, 바로 이곳에서 예상치 못한 해답을 발견했다.

 이 책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호랑 애벌레가 삶의 의미를 찾아 여정을 떠난다. 호랑 애벌레는 어느 한 기둥을 발견하게 되는데, 수많은 다른 애벌레들이 그 기둥의 꼭대기를 향해 오르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곳에 어떠한 의미가 있을 거라 여기며 기둥을 오른다. 하지만 기둥을 오르기 위해서는 다른 애벌레들을 밟고 올라가야만 했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했다. 그러한 삶에 의문을 품던 찰나에 같은 고민을 하던 노랑 애벌레는 만나게 되고, 그들은 꼭대기에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려가서 함께 사는 것을 택한다.

 땅에 내려온 둘은 행복한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은 얼마 가지 않았다. 호랑 애벌레가 다시 꼭대기를 오르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랑 애벌레는 꼭대기에 올라가고 싶지 않았기에 결국 둘은 이별한다. 노랑 애벌레는 다른 곳을 탐험하다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린 늙은 애벌레를 만나게 된다. 노랑 애벌레는 늙은 애벌레가 곤경에 빠진 줄 알고 도와준다고 했지만, 늙은 애벌레는 오히려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노랑 애벌레는 나비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러자 늙은 애벌레가 대답한다.

 “나비는 미래의 네 모습일 수도 있단다. 나비는 아름다운 날개로 날아다니면서, 땅과 하늘을 연결시켜 주지 ...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사랑의 씨앗을 날라다 준단다.”(70)

 노랑 애벌레는 놀라서 어떻게 하면 나비가 될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그는 “하나의 애벌레로 사는 것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간절하게”(75) 날기를 원해야 하고 고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노랑 애벌레는 자신이 나비가 된다는 확신이 없었지만, 용감하게 모험에 나선다.
 반면 꼭대기에 가까이 이르게 된 호랑 애벌레는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한다.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사방에는 자신이 오른 기둥과 똑같은 애벌레 기둥이 수천 개나 존재했다. 그리고 꼭대기에 있던 애벌레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기둥에 충격을 주어 다른 애벌레들을 떨어트려 죽였다.

 허무함을 느끼고 있을 때 한 노란 나비가 그에게 다가왔다. 호랑 애벌레는 그 나비야말로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를 따라 다시 기둥을 내려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내려가는 동안 자신의 판단과 결정이 틀렸음을 걱정한다. 그럼에도 그는 꿋꿋이 내려갔고, 나비는 자신의 고치가 있는 곳으로 그를 데려간다. 호랑 애벌레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깨닫고, 결국 그도 나비가 된다. 이후 다른 애벌레들도 기둥을 내려와 나비가 되고, 하나의 기둥이 무너진다. 그리고 저자는 이것이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얼마 전까지 내가 올바르지 못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던졌어야 할 질문은 ‘인간이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인간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였다.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인간은 ~이다’라는 ‘답’을 찾게 하지만, ‘인간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인간은 ~이 될 수 있다’라는 ‘가능성’을 찾게 한다. 달리 말하자면 ‘답’은 과거와 현재를 연구하여 하나의 ‘결론’을 내려 문제를 종결시키는 것이라면, ‘가능성’은 ‘열린 미래’를 상상하고 꿈꾸게 만들어 그곳을 향해 나아가게 한다.

 이 책의 저자는 그 가능성이 꼭대기가 아닌 아래에 있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내려가야’ 한다. 하지만 내려가는 일은 쉽지 않다. 시대와 현실이 요구하는 모든 가치에 맞서 정반대로 가는 것이기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내려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과 힘이나 의지가 아니라 ‘신뢰’가 필요하다. 노란 나비가 나를 올바로 인도하고 있다는 신뢰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신뢰하지 않고선 끝까지 내려갈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내려가서도 신뢰가 필수적이다. 애벌레가 내려간 뒤에는 번데기가 되어야 하는데, 번데기가 된다는 것은 애벌레로서의 삶을 모두 포기하고 겉으로 봤을 땐 죽은 상태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상태가 진정한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신뢰없이는 애벌로서의 삶도 포기할 수 없고 번데기가 될 수도 없다. 따라서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면 전적으로 그 가능성을 신뢰해야만 한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난제들이 가득하다. 이 난제들은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진다. 또한 그동안 우리를 지탱해오던 가치관들이라 정신들도 소멸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미래는 어둡기만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리가 질문만 바꿔도 우리에게는 새로운 길이 열린다. 그러니까 ‘인간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신학은 무엇이 될 수 있는가’, ‘한국 교회와 한국 기독교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라고 질문만 바꿔도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때 우리에게는 어떠한 가능성이 펼쳐질까. 이 광대한 가능성 앞에서 가슴이 뛴다면 내가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젊은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적어도 나는 이 작은 생각의 전환만으로도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큰 물결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김윤형 (청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