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경기에서만 기록 갱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더위도 마찬가지인 듯 싶다. 작년에 여름도 더웠다고 생각하는데 올해의 더위를 경험하니 작년의 더위는 껌이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보도에 따른 지구 곳곳에 나타나는 기후 이상은 진짜 지구의 종말이 더 빨리 진행되고 있음을 걱정근심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숨이 턱턱 막히는 여름을 보내며 벌써 35년 전의 여고 시절의 더위가 떠올랐다. 그때도 꽤 더웠다. 지금과 같이 흔하디흔한 에어컨이 없었던 시절에 더위를 쫓아내는 것은 고작 천장에 고정된 선풍기 2대가 다였다. 그것도 어쩌다 한번 켜주었을까나? 거의 모든 교실은 창문을 열어놓고 수업을 진행하였고, 여기저기서 공책이나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더위를 쫓았다.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풍기와 부채로 긴 여름을 보냈다. 때로는 대야에 물을 받아 발을 담그고 여름 과일을 먹는 것이 나름의 호사였다. 아니면 방바닥에 얼굴을 대고 누워있다가 잠시 단잠에 빠지다 일어나는 것이 여름나기 방법이기도 했다. 

35년 전, 20년 전, 10년 전 그리고 1년 전과 비교했을 때 더위의 강도는 높아만 간다. 이번 더위는 습도도 높다. 방바닥이 끈적끈적거려 발을 디딜 때마다 불쾌하다. 산 밑이라 바깥은 시원하지만 집안은 찜통이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가면 먼저 선풍기를 틀고 제습기를 돌린다. 잠을 잘 때도 타이머를 예약하고 선풍기를 틀어놓는다. 그리고 자다 깨면 어김없이 선풍기 바람이 멈춰있는 것이다. 다시 돌리기를 무한 반복하다 보면 아침이다. 처음 결심했다. 올해는 그럭저럭 선풍기로 버티고 내년 여름에는 에어컨을 설치하리라. 

문을 열고 나가면 숨이 턱 막힌다. 땀이 송글송글 맺히다 쪼르륵 흐른다. 금방 상반신이 흠뻑 젖는다. 이렇게 더운 날, 나는 여지없이 콩과 들깨가 있는 밭으로 향했다. 미친 짓이 아닐 수 없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떨어지려면 아직 더 있어야 하지만 서산에 기우는 태양을 마냥 기다릴 수 없었다. 그보다 더 내 마음을 복잡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풀이다. 풀이 지난번보다 더 자라 있었다. 콩도 엄청 자라 있지만 풀도 그만큼 자라 있었다. 풀이 고랑을 빼곡이 메우고 있어 이랑과 이랑 사이에 바람이 통할 길이 없었다. 햇빛이 투과될 틈도 없었다. 그래서 풀을 베야만 했다. 지난번만 해도 손으로 뽑을만 했던 풀이 이번에는 땅에 단단히 뿌리를 내려 뽑기보다는 낫으로 베는데 힘을 더 쏟아야 했다. 내 팔뚝과 손마디가 괜히 굵어지는 것이 아니다. 

비오듯 쏟아지는 땀을 벗삼아 오르면서 베고 내려오면서 베다 일어나면 고랑 반 정도까지 왔다. 뒤돌아보면 누워있는 풀이 있고 앞을 바라보면 성벽을 이루듯 서 있는 풀이 있다. 채움과 빔의 딱 중간에 서서 발걸음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옆 고랑으로 옮겨진다. 아래쪽은 내 키만큼 커진 콩이 숲을 이루어 그곳에 머무를 때는 그나마 뜨거운 볕을 피할 수 있다. 그러나 위쪽으로 갈수록 아직 내 무릎까지 자란 콩이 줄을 이어 있어 뙤약볕을 피할 수 없다. 그러기에 나의 발길은 좌로 갈까, 우로 갈까를 고민하다 허리가 굽혀지는 쪽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한다. 그러면 어느 고랑은 풀이 위만 있고 아래는 깨끗하게 예초가 되어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좋다. 웃자란 풀들이 베어진 고랑 사이로 콩들이 환하게 몸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람! 들깨 쪽으로 가 봤더니 일주일 전에 깨끗했던 고랑이 다시 풀이 성큼 자라나 있었다. 내가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는데 풀은 스스로 원상복구를 한 셈이다. 약이 바짝 오를 수밖에 없다. 대체 뭘 먹고 저렇게 자라날까? 나는 더위에 지쳐 곤혹스러운데 풀들은 이 뜨거운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려 잘도 자란다. 덥다고 아우성치는 나를 보고 풀들은 그저 웃을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