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경 목사의 영화일기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 2023)

독일 영화의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던 이른바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 빔 벤더스(Wim Weners) 감독의 영화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그의 1987년 작 《베를린 천사의 시》(Der Himmel über Berlin)다. 거의 대부분을 흑백으로 촬영한 이 영화 속에서 감독은 베를린 시내를 담당한 두 천사의 이야기를 동화적으로 그리고 시적으로 관객들에게 들려주었었다. 영화의 마지막쯤 주인공 천사는 지루하게 영속하는 시간을 벗어나 ‘지금’을 맛보기 위해 필멸의 인간이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천사가 인간이 되어 인간의 감각을 느끼게 된 순간, 마침내 ‘지금’을 누리게 된 천사의 시점을 따라 영화는 컬러로 바뀐다.

통일 이전의 암울한 역사를 배경으로 담은 베를린이라는 무대가 그의 신작 《퍼펙트 데이즈》에서는 현대 일본의 수도 도쿄로 바뀐다. 영화의 주인공인 중년의 남자 히라야마는 도쿄의 공중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을 하고 있다.영화 《퍼펙트 데이즈》는 마치 《베를린 천사의 시》가 큰 서사 없이 천사의 일상을 담담히 따라다녔던 것처럼 역시 서사의 부재 속에서 주인공 히라야마의 일상을 담담히 따라다닌다. 새벽녘 거리의 빗질 소리에 잠을 깬 히라야마는 이불을 개고 수염을 다듬고 세수하고 화분에 물을 주고는 집을 나선다. 문을 나서자마자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미소 지으며 숨을 내쉰다. 그리고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들고 차에 올라 출근길에 들을 카세트테이프를 고른 후 올드팝을 들으며 점점 밝아지는 도시와 함께 그가 청소할 첫 번째 화장실로 향한다. 그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일에 과도하게 진심인 것처럼 보인다. 자신만의 도구를 발명하여 청소에 임할 정도다. 그렇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늦은 오후에는 목욕탕에 들러 목욕을 하고 지하철역 지하상가에 위치한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집에 돌아와 문고판 문학책을 읽다가 잠이 든다. 거의 한 치의 변함도 없는 이 평일의 루틴처럼 쉬는 날은 또 쉬는 날만의 변함없는 루틴이 있다.

화장실청소부라는 직업 속에서 그는 사람들로부터 자주 무시와 오해를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라도 화를 낼 만한 상황에 히라야마는 평온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평정심이 가능한 것일까? 물론 이 평정심이 언제나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작은 일상의 균열들로 인해 그의 평정심은 흔들리기도 깨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그는 무너지거나 추락하지 않고 다시 올곧은 자신에게로 돌아온다. 영화 전체의 또 다른 주인공인 하늘을 향해 올곧게 뻗은 나무처럼 말이다. 히라야마는 늘 같은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점심을 먹으며, 나뭇잎 사이로 일렁이는 햇살을 바라보고는 언제나 지니고 다니는 필름카메라에 이를 담담히 담는다. 영화를 둘러싼 이 모든 담담함들은 ‘지금’의 의미를 묻게 만든다. ‘지금’을 살아낸 날이야말로, 오직 그 날만이 ‘완벽한 날’이라는 강력한 무언의 주장과 함께. 주인공은 그렇게 하루하루를 완벽한 날로 채워가고 있는 중이다. 똑같아 보이지만 똑같은 날은 없다, 똑같아 보이지만 똑같은 나뭇잎들은 없다. 똑같아 보이지만 똑같은 햇살은 없다. 영화는 시종일관 변함없고 똑같아 보이는 것들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깨달음으로 이끈다. ‘지금’이라는 순간을 만난 모든 것들은 완전히 새롭고 그 자체로 유일무이한 것이기 때문이다. 원래 영화는 도쿄 올림픽을 맞아 일본의 유명 건축가들에게 의뢰했던 도쿄의 공중화장실 개축 프로젝트와 관련된 홍보로부터 출발했다고 한다. 단편으로 의뢰를 받은 일종의 홍보 영화를 빔 벤더스는 장편으로 만들며 자신의 예술적 인장을 찍었다.

히라야마의 담담한 삶은 그 어떤 더러운 오물도 결코 인간의 고결함을 망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듯하다. 영화 속에서 그는 자주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그의 이 작은 동작을 보며 나는 그동안 얼마나 하늘을 보지 않고 살아갔던가를 문득 깨닫게 된다. 하늘은 무엇인가? 그곳은 하나님이 계신 곳이 아니던가? ‘하나님’이라는 거룩한 말조차 ‘하늘’이라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그러기에 그저 하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한 조각 고결함을 얻을 수 있다. 하루치의 거룩함을 얻을 수 있다. 나뭇잎 사이로 어른거리는 햇살에 대한 감사를, 지금의 유일무이함을 깨달을 수 있다. 그러니 나는 더 자주,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아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