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물론 입문: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 문규민 지음, 장원, 2022)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 등으로 대변되는 요즘 인간은 자연과 기술과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존재론(Ontology)을 요청받고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인문 철학분야에서도 질 들뢰즈(Gilles Deleuze) 이후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의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 브뤼노 라투르(Bruno Latour)의 행위자 연결망 이론(Actor-Network Theory, ANT) 그리고 그레이엄 하먼(Graham Harman)의 객체지향 존재론(Obeject-Oriented Ontology, OOO) 등 다양한 사상가들의 책이 소개되고 있다. 다양한 사상에 첫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좋은 입문서가 중요하다. 좋은 입문서란 단순히 사상을 요약 기술하거나 학자들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구도를 가지고 최대한 객관적인 범위 안에서 사상을 평가하는 책일 것이다.

오늘 소개하는 문규민의 『신유물론 입문: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이 바로 그런 책이다. 문규민은 현대 인류학과 존재론의 새로운 흐름들, 임상심리학 등으로 연구 영역을 넓혀 가는 국내 소장 학자이다. 그는 이 책의 목적이 “신유물론(New Materialism)이라는 흐름 그리고 그 안에 속한 이론들을 독자들이 활용 할 수 있는 ‘도구 상자’로 제시하는 것이다”라고 밝힌다(16쪽). 도구 상자는 다양한 작업을 위해 필요한 공구 상자를 말한다. 이 책은 신유물론을 독자의 용도에 맞게 도구 상자로 활용할 수 있도록 가급적 일상 언어와 예를 들어 설명한다. 이를 위해 신유물론과 관련 된 이론적 배경이나 논쟁은 최소한 줄이고, 참조한 자료들도 국내에 번역된 문헌들이나 온라인 자료들로 국한하여 신유물론에 입문하는 독자의 편의를 돕고 있다. 그리고 신유물론과 묶여서 다루어지는 학자들 가운데, 그레이엄 하먼이나 퀑탱 메이야수(Quentin Meillassoux)의 사변적 실재론(Speculative Realism), 레비 브라이언트(Levi R. Bryant)의 기계지향 존재론(Machine-Oriented Ontology)은 다루지 않는다. 이미 하먼과 같은 학자는 신유물론과 대립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유물론이란 무엇인가? 신유물론이라는 명칭은 다분히 오해의 소지가 많다. 기존 유물론(Materialism)과 역사유물론에 대한 거부감뿐만 아니라 신유물론 자체가 하나로 묶을 수 없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신유물론은 “다시 새로워진 유물론 또는 유물론의 새로운 형태(A New Form of Materialism)”로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23-25쪽). 쉽게 말해 신유물론에서 물질에 대한 새로움(Novelty)은 물질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달려 있다. 기존 유물론에서 보면, 물질은 외부의 다른 것에 의해서만 작용하고 변한다는 점에서 수동적이다. 즉 창조적이지 않다. 하지만 “신유물론은 바로 그러한 물질 이해를 넘어선다.”(33쪽) 신유물론은 물질 자신의 능력과 역량을 능동적으로 발휘하여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이러한 물질 이해는 복잡한 과학을 비롯한 현대 과학의 성과에 기반 한 것이다. 물질의 활동성과 행위성을 강조하는 신유물론은 고대에서 주창되던 물활론(Animism)이나 의인화(Anthropomorphism)가 아니라 실제 과학에 대한 고찰과 분석을 통해 얻어진 철학적 결론이다.

물질은 인간의 입장에서는 노동의 대상이지만, 다른 입장에서는 주체일 수 있다. 인공물 또한 인간 노동의 수단일 뿐만 아니라 자체적인 능력을 가진 행위자(Agency)일 수 있다. 이것은 물질과 의미, 자연과 문화, 인공물과 인간의 횡단성이다. 횡단성은 엄격하게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해 온 범주들이 서로 얽혀 있고, 경계를 뛰어넘는 것을 의미한다. 얽힌 범주를 통한 횡단성은 각종 범주를 너머 한쪽에만 손을 들어주는 이원론적 환원주의(Reductionism)의 위험을 벗어나게 한다. “횡단성을 통해 이원론을 끊임없이 돌파해 나가고 개정하는 것이야말로 신유물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95쪽) 횡단성은 범주들을 서로 얽히게 만들고, 자연/문화, 물질/담론을 넘어 인간/비인간을 가로지른다. 이런 의미에서 신유물론의 존재론을 교차성 존재론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신유물론은 포스트휴머니즘과 같이 인간주의를 벗어나 다양한 인공물과 결합하고 탈주하는 교차적 휴머니즘(Intersectional Humanism)으로 재구성된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은 새로운 생태학과 존재론을 향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환경(Umwelt)은 인간의 뒤로 무기력하게 물러난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다양한 행위자들이 소통하는 연결망이자 우글거리는 정글이다.

이처럼 신유물론이 말하는 물질은 자연으로 환원할 수도 없지만 의미의 차원과 분리될 수 없는 물질이다.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으로 대변되는 신유물론을 문규민은 일종의 잼 세션과 같다고 비유한다. “계획도 없고, 악보도 없고, 심지어 연주자들끼리 서로를 모를 수도 있다.”(111쪽) 예측 불가능함 속에서 보통 변주되고 반복되는 테마(theme)가 있는 것처럼, 신유물론 역시 다양한 스타일로 일관된 테마를 연주하는 학자들이 있다. 그래서 ‘물질-연주자들’이라는 제목을 붙인 책의 2부에는 마누엘 데란다(Manuel DeLanda, 3장: 새로운 물질성과 횡단성), 제인 베넷(Jane Bennett, 4장: 물질적으로 살아 있는),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 5장: 살아 있는 물질에서 인간-이후의 주체로), 캐런 바라드(Karen Barad, 6장: 현상-내-수행성)를 소개한다.

『신유물론 입문』에서 말하는 새로운 물질성은 이제껏 느끼지 못한 물질에 대한 낯선 감각을 일깨워준다. 이것은 물질의 횡단성에서 기인하는데, 물질은 인간의 통제와 예측을 넘어선다는 데에 있다. 물질이 단지 물질만의 문제일 수 없다는 생각은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에게 세상을 다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이 책의 독서를 통해 각자에게 맞는 신유물론이라는 ‘개념 엔진’(Conceptual Engine)을 탑재해 보길 권한다.

송화섭 목사(꿈의교회 부목사, 감리교신학대학교 객원교수/철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