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돌 기법은 나르시시스트와 인연을 끊을 수 없는 상황에 부닥친 사람이 나르시시스트 앞에서 회색돌같이 재미없고 지루한 상대가 되는 것을 말한다. 길가에 흔하게 널려있는 회색돌을 무시하고 지나가듯이, 나르시시스트를 향해 최소한의 반응을 보이고, 그들이 조종하는 대로 감정을 분출하지 않고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며, 자기 자신을 방어하거나 설명하지 않고, 논쟁하지 않는 것이다. 그들의 도발에도 불구하고 상황에 관해 설명하거나 자신을 변호하거나 싸우지 않는 것이다. 옳고 그른 게 무엇인지, 나르시시스트가 잘못한 것이 무엇이고, 그로 인해 자신이 얼마나 힘들고 아프고 상처받고 실망했는지 등등의 이야기들을 일절 하지 않는 것이다.

회색돌 기법의 핵심은 나르시시스트에게 ‘지루하고 재미없는 존재’가 되어 나르시시스트들이 원하는 공급을 제공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에 산소공급을 차단하는 것과 같다. 회색돌기법의 목적은 나르시시스트가 당신에게서 관심을 끊게 만드는 것이다.

회색돌 기법은 나르시시스트와 인연이나 연락을 끊을 수 없고 관계를 어느 정도 유지해야만 하는 경우에 사용하는 기법이다. 할 수 만 있다면 나르시시스트는 떠나는 것이 가장 좋다. 깔끔하게 안 보고 사는 “노 콘택트(No contact)’가 가장 좋지만, 그럴수 없는 경우들이 있다. 나르시시스트 배우자와 아이를 공동 양육하고 있거나, 나이든 나르시시스트 부모를 봉양하는 중이거나, 당장 떠날 수 없는 직장에 매여있는 등 어떤 식으로든 나르시시스트와 엮여서 지내야 할 때, 회색돌 기법은 가장 기본적이고 효과적인 대처 방법이다.

회색돌 기법은 나르시시스트 앞에서 담대하게 말로 받아치기 어려운 경우에 가장 먼저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른 대응방식에 비해 위험성은 적지만 그 효과는 아주 강력하다. 이 기법은 나르시시스트의 심리가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들만 이용할 수 있는 아주 똑똑한 기술이다. 더 이상 나르시시스트와 심리 게임을 하지 않겠다는 의지, 다시는 나르시시스트의 공급자(서플라이)가 되지 않을 것이고, 모욕당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과 엮이는 일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회색돌 기법은 자신이 느껴야 할 부정적인 감정을 남이 대신 느끼고 표출하는 것을 보며 쾌감을 느끼는 나르시시스트로 하여금 남에게 자신의 감정을 떠넘기지 못하게 만든다. 나르시시스트가 비난하고 깎아내리면 상대방이 기분 나빠하고 화를 내고 흥분하고 울고 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 원하는 패턴이다. 이 패턴을 깨버리는 것이 회색돌기법이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안절부절 ‘불안’하고 ‘어색’해하는 것은 회색돌 기법이 아니다.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지?’ 하며 ‘슬픔’과 ‘의아함’을 참고 있는 것도 회색돌 기법이 아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들거나 쏘아붙이고 싶은 ‘분노’를 겨우 억누르고 있는 것도 회색돌 기법이 아니다. 기가 질려서 ‘정색’하고 ‘포기’하는 것도 역시 회색돌 기법이 아니다. 회색돌 기법은 감정을 분출해야 할 시점에 우리가 전혀 흔들리지 않고 표정조차 변하지 않으면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회색돌 기법을 사용하면 나르시시스트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남에게 떠넘기고 자신은 해방되려 했지만, 그 부정적인 감정이 그대로 반사가 되어 다시 나르시시스트에게 돌아가게 된다.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떠넘기지 못했으니 스스로 직접 그 감정을 느껴야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회색돌 기법은 일종의 미러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논쟁하려 들지도 않고, 감정도 보이지 않고 그저 차분하고 조용히 마치 하나의 조각상이 서 있는 그것 같은 그런 모습을 유지함으로써 그 부정적인 감정들, 불안감과 수치심, 죄의식 등을 그대로 반사해 되돌려 주는 거울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나르시시스트 앞에서 이 회색돌 기법을 처음 시도했을 때, 이전과는 다르게 당신이 ‘재미없게’ 반응을 하지 않으면 나르시시스트는 굉장히 분노할 것이다. 이들이 회색돌 기법을 사용하는 이들에게 분노하는 이유는 이들이 이런 부정적인 감정을 스스로 다룰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희생양이 되어 자기 대신 느껴줘야 그 감정이 해소되는데, 희생양이 희생양 역할을 안 하고 거부하고 반사하는 거울 역할을 해버리니 당황스러운 것이다.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부정적인 감정들을 도대체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혼란에 빠지게 된다.

이 상황에서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이 다시 감정을 쏟아내게 만들기 위해서, 약 올리고 떠보고 겁주고 화를 내고 나쁜 말들을 쏟아낼 수 있다. 남들에게 상대방 욕을 할 수도 있다. 당신을 향해 거만하네, 꼬장꼬장하네, 하며 빈정거리고 아주 하찮은 사람이 된듯한 기분을 느끼게 만들 수도 있다. 이 시기는 꽤 오랜 기간 이어질 수 있다. 그때는 그냥 놔두어야 한다. 뭐가 옳은지 그른지 일일이 설명하고 똑같이 비난하고 욕하고 화내는 것은 그들에게 또다시 휘둘리게 되어 진흙탕 싸움 속으로 다시 끌려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의 심리를 파악한 사람답게 끝까지 회색돌 기법을 사용하면서 어떤 감정적인 반응도 하지 말고 끌려가지 말아야 한다.

기억해야 할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있다. 그들이 당신을 비난하고 모욕하고 경멸할 때 그것은 당신을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것은 그들 내면에 있는 불안과 상처에 대한 것이지 당신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나르시시스트가 정말 불필요한 말을 할 때 그리고 나를 공격하는 말을 할 때만 이 그레이락을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주제를 언급해야 한다든지, 정보를 주고받아야만 하는 경우에는 아주 건조하게, 감정이 없이 필요한 만큼만 짧게 이야기하고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