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손사래>, 이정배 지음, 도서출판 늘봄, 2023)

 1997년 3월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해서 2분의 교수님 덕에 신앙에서 신학으로의 첫걸음을 뗄 수 있었습니다. 한 분은 ‘신의 존재를 증명해 보라’고 하시며 ‘기독교 입문’을 가르쳐 주신 서창원 교수님, 그리고 다른 한 분은 ‘기독교는 종교들 가운데 하나’라며 ‘세계 종교사’를 가르쳐 주신 이정배 교수님입니다.

 이정배 교수님의 첫 수업은 지금도 잊히지 않고 생생하게 기억되고 있습니다. 큰 칠판에 분필로 긴 줄을 그으시고, 그 줄을 짧게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답은 그어진 줄보다 더 긴 줄을 긋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어디에 내세울 만한 신학을 세우지 못하고 있지만, 기독교 신앙에만 머물러 있는 저를 ‘神學’이라는 큰 틀로 이끌어 주시기에 아주 넉넉한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렇게 저에게 신학의 첫걸음을 뗄 수 있도록 도와주셨던 이정배 교수님이 당신의 31분의 스승에 대한 이야기를 <스승의 손사래>라는 제목으로 책으로 엮어내셨습니다. ‘손사래’라는 말을 찾아보니, ‘조용히 하라거나 어떤 일을 부인하려 할 때에 손을 펴서 휘젓는 짓’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제자를 옳은 길로 이끌었을 때 잘 따라오면 흐뭇하게 바라보고, 제자가 그른 길로 가는 것은 어떻게든 막아야 하기에 ‘손사래’라는 말을 쓰지 않으셨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이정배 교수님은 ‘시작하며’에서 ‘사람은 무엇을 먹는가에 따라 몸이 결정되고, 누구를 스승으로 삼느냐에 따라 생각의 방향이 잡힌다’(18)고 하면서 당신이 만난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담긴 <스승의 손사래>가 스승과 제자의 바른 관계를 만들어 가기를 바랍니다.

 <스승의 손사래>에는 고등학교 때부터 시작해서 신학교, 바젤에서의 유학, 감리교신학대학교의 교수 시절 등, 지난 50년간 이정배 교수님을 신학의 길로 첫발을 내딛게 해주고, 신학의 바탕을 만들어 주며, 신학의 깊이를 더해주고, 지역을 신학의 틀을 넓혀주어서 ‘거리의 신학자’로 이끌어 주신 선생님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이정배 교수님의 장인 故 이신 박사님과, 아내 이은선 교수님도 있습니다. 

 2장 ‘신학의 바탕을 만들어 주신 선생님들’에는 이정배 교수님에게서 풍기는 향인 토착화를 가르쳐 주신 海天 윤성범 교수님(67)과 멍에와 명예를 안겨준 一雅 변선환 선생님(80)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손사래>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1997년 감리교신학대학교에 입학해서 대학원을 마칠 때까지 이정배 교수님의 가르침을 되짚어 보았습니다. 1997년 퇴수회 때 이정배 교수님의 강의를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陰陽五行에 대한 필기를 해 놓은 다이어리가 집 어딘가에 보이지 않지만 잘 있다는 것과 강의 시간에 장의 비워내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기억이 떠올라 이정배 교수님의 가르침에는 수많은 선생님의 가르침이 녹아 있었다는 것에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습니다. 

 배움에는 끝이 없기 때문에 평생을 배워야 한다는 뜻을 담은 ‘學無止境’(학무지경)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많이 배울수록, 나이가 많아질수록, 아는 게 많아질수록 배우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배우지 않으면 점점 뒤로 물러설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을 비우고(空), 깨끗이 닦아낸(修) 다음, 배워서(學) 가득 채워야(滿)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르침을 받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삶으로 살아내기 위해 힘써야 제대로 가르침을 받은 겁니다. 이정배 교수님은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힘쓰고 계십니다.

 <스승의 손사래>에 대한 글을 마무리 지었는데, 이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었습니다. 논어 술이편에 세 사람이 길을 가더라도 그 가운데 반드시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뜻을 담은 ‘三人行必有我師焉’(삼인행필유아사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나는 모든 이들을 스승으로 삼고 살아가며, 자신도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아가기 위해 힘쓴다면 이 세상의 다툼은 사라지고 서로 모자란 것을 채워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오충환 목사(꿈이있는미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