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인기 있었던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문동은(송혜교분)을 괴롭혔던 박연진(임지연분)은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라고 할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란 나르시시즘에 빠진, 자기도취형 인간을 말한다. 자신의 모습을 지나치게 이상화해서 추앙하는 자기중심적이고 왜곡된 자아상을 가진 이들이다. 

나르시시스트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객관화를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착각한다. 나르시시스트와 오래 교류하지 않은 이들, 그저 피상적인 친분이 있는 이들은 나르시시스트를 자신감과 자존감이 높고, 사교적이고 친절한 이들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와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져, 깊게 알게 되면 될수록 점점 나르시시스트의 실체를 깨닫게 된다. 오늘은 나르시시스트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갖는 일정한 패턴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다. 오늘 글을 통해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변화되는지에 대한 이 패턴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1. 이상화(Idealization)

나르시시스트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때, 처음에는 이 이상화단계로 시작한다. 이상화단계란 상대방을 이상적이고 완벽한 형태로 보는 것을 말한다. 마치 유아기의 아기가 엄마를 자기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는 완벽한 존재로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 이 단계에서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에게 지나칠 정도의 애정과 관심을 쏟는다. 그리고 상대방을 자신의 이상과 꿈을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여긴다. 

이 단계에서 나르시시스트가 상대방에게 지나친 관심과 애정을 쏟는 것을 러브바밍(Love Bombing)이라 한다. 사랑의 폭탄을 쏟아붓듯이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에게 칭찬과 애정을 퍼붓는 것이다. 또한 이 시기에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에게 과도한 선물을 주고 지속적인 연락과 관심을 보여줌으로 상대방의 생활 깊숙이 들어가려고 한다. 상대방은 이 나르시시스트의 러브바밍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특별하고 매우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게 되고 나르시시스트에게 깊게 몰입하게 된다. 

나르시시스트가 상대방을 연인으로 대할 때 이 이상화단계로 시작하며 러브바밍을 사용한다. 예를 들자면, 누군가가 몇 번밖에 데이트를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내 인생의 사람”이라고 말하며, 매일 수십 통의 문자를 보내고, 비싼 선물을 자꾸 사준다면 이는 러브바밍의 징후이다.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결혼을 이야기한다거나, 함께 살자고 하거나 장기적인 계획 등을 서두르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단계에서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의 일상에 지나치게 관여하려 하고, 누구와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는 행동을 보이는데 이것은 매우 로맨틱하고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상대방을 감정적, 심리적 조작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기에 위험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종적이고 통제적인 관계로 변질 될 수 있다. 

나르시시스트의 이상화 단계는 나르시시스트가 상대방을 ‘길들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상대방의 신뢰를 얻고 그들이 나르시시스트에게 빠져들게 만들기 위한 도구일 뿐이기에 오래 가진 못한다. 이들이 상대방을 이상화하는 이유는 그들의 내면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신의 가치와 사랑받을 자격을 외부의 인정과 존경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상대방을 이상화함으로써, 나르시시스트는 자신의 완벽함과 특별함을 반영하는 거울을 만든다. 이는 그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내면의 불안과 열등감을 일시적으로 치유한다. 

목사가 처음 교회에 부임했을 때, 제일 먼저 달려와 가방을 들어주는 사람을 조심하라는 말을 목사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이 목사를 쫓아내는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이 말은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목사가 처음 부임했을 때 러브바밍을 쏟아놓는 교인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나르시시스트일 경우가 있으니 조심할 필요가 있다. 물론 목사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모든 이들이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부터 지나치게 잘하는 사람은 목사를 이상화시켜서, 목회자가 자신에게 마치 모든 걸 다 해주는 아빠처럼 기대하는 경우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목사는 그럴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목사에 대한 이상화에 실망하게 될 때, 목사에게 가졌던 그릇된 기대가 깨지게 될 때, 그 사람은 가장 큰 공격자가 될 것이다. 그래서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 적절한 거리를 두는 것이 지혜로운 처신이다. 

2. 평가절하(Devaluation)

이상화 단계에서 나르시시스트의 러브바밍을 경험한 상대방은 종종 사랑에 빠진 것처럼 느끼고, 강력한 정서적 연결감을 느끼며, 이 시기를 관계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여긴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가 상대방에게 가지는 이상화의 단계는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나르시시스트의 ‘이상화’와 ‘러브바밍’은 언제까지일까? 피해자를 나르시시스트의 곁에 묶어둘 때까지만 진행된다. 피해자가 나르시시스트가 만들어낸 동화 같은 현실을 믿기 시작하는 순간, 다음 단계인 ‘평가절하’의 단계가 시작된다. 상대방이 나르시시스트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 나르시시스트는 본인의 깊고도 심각한 ‘자기혐오’를 상대방에게 투사해서 폭발시킨다. 급작하게 바뀌는 태세전환, 즉 평가절하의 단계로 들어서면 상대방의 인생은 모욕과 무시로 점철된다. 상대방은 한 순간에 ‘최고의 존재’에서 ‘최악의 인간’으로 바뀌게 된다.

그토록 미칠 듯이 사랑을 쏟아 붓다가 급격하게 애정을 철회해버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미워하더니 차버리는 이런 이상화와 평가절하의 패턴은 나르시시스트가 근본적으로 심리조절 장애를 겪고 있음을 뜻한다. 자신의 취약하고 무너지기 쉬운 자아를 보호하고 인간관계의 통제감을 잃지 않기 위해 사람들을 선과 악으로 정확히 분열하고 평가절하 함으로써 자신의 불안정한 상태를 부인하고 상대에게 비난을 모두 투사하면서 우월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평가절하의 단계로 들어가는 징후가 있다. 상대방에 대한 관심과 애정의 감소와 비판과 경멸의 증가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상대방의 결점에 집중하기 시작하고 이전에 칭찬했던 특성들은 비판의 이유로 바뀐다. 긍정적인 특성은 모두 사라지며 모두 나쁨이라는 평가가 내려진다. 나르시시스트가 가진 잘못된 기대치가 충족되지 않고  실망하게 되면 이들의 태도는 냉담하고 비판적으로 변한다. 상대방에 대해 경멸과 무시를 표출한다. 

이때 상대방은 극심한 혼란과 상실감을 경험하게 된다. 나르시시스트의 비난과 경멸은 상대방의 자존감을 손상시키고, 자신이 무가치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상대방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느끼다가 왜 자신이 갑자기 부족하게 느껴지는지, 왜 관계가 이렇게 변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목사도 늘 한결같이 목회현장에서 임하지만, 나르시시스트 성향을 가진 교인이 목회자에 대한 잘못된 기대치를 갖고 이상화시키고 애정과 관심을 쏟다가 자신의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때부터 목사의 욕을 하고 안티가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부터 목사는 나르시시스트 교인의 비난과 비판, 혐오와 모욕의 대상이 된다. 100명 중 나르시시스트는 보통 4%라고 할 때 목회자에 대한 잘못된 기대치를 가진 교인들이 분명히 몇 명 있을 것이기 때문에 목회는 참 어렵다고 할 수 있다. 

3. 폐기처분(Discardcing)

세 번째 단계는 ‘폐기처분’의 단계이다. 폐기란 쓸모없어진 물건을 폐기 처분하듯, 피해자를 ‘처분’하는 것을 말한다. ‘평가절하’와 ‘폐기’가 늘 같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어떤 피해자는 ‘평가절하’의 늪에 빠진 채, 영원히 나르시시스트와의 관계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폐기가 일어나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상대방에 대한 경멸 때문이고, 둘째는 지루함 때문이다. 늘 신기한 것, 새로운 것, 색다른 것을 찾는 성향이 있는 나르시시스트는 이제 자신이 사로잡은 피해자가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한다. 이때 많은 나르시시스트들은 피해자가 먼저 관계를 끝내주기를 기대한다. 그래야 자신은 “저 사람이 먼저 헤어지자고 했어” ”이혼서류를 먼저 내민 건 저 사람이야“ ”가정을 버린 건 너야“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수 있고, 자신은 선한 이미지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상대방에 대한 ’가짜 이야기‘들을 주변에 퍼뜨리기 시작한다. 물론 나르시시스트가 만들어낸 허구의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나르시시스트의 거짓된 이야기를 접한 주변사람들에게 피해자는 이미 나쁜 사람, 무정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 진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당신이 나르시시스트로부터 평가절하를 당했거나 폐기처분을 당했다면, 그것은 선물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당신을 병들게 만드는 나르시시스트와의 독성관계에서 도망칠 ‘일생일대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스트들은 온전한 자기 자신으로는 부적절하고 무가치하다고 느끼기에 외부의 완벽성, 우월함, 높은 평가로 삶을 지탱해야 한다. 이 때문에 타인을 이상화해서 자신이 꿈꾸는 완벽함을 상대에게 투사하고 꿈꾸면서 자신과 동일시하고 이런 환상이 깨질 때는 평가절하해서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을 악으로 규정하면 자신은 선의 위치를 차지할 수 있기에 자신의 취약한 자아를 다시 한 번 방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불안정하고 부적절한 자아감을 가진 나르시시스트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들의 이상화와 평가절하에 정서적인 타격을 입지 않도록 늘 깨어있을 필요가 있다. 

임석한(성복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