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뛰는 사람>, 베른트 하인리히 지음, 조은영 옮김, 윌북, 2022)

사람의 신체는 시기마다 힘이 붙는 부위가 있다. 아기가 일어서면 힘은 장딴지에 붙고 허벅지까지 오르는 청소년기를 거친다. 이 시기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땀으로 범벅이 되도록 뛰고 또 뛴다. 조금 크면 질풍노도가 되어 튀고 또 튄다. 회초리를 종아리와 허벅지에 대는 이유는 인생의 방향을 잡으라는 훈계다. 

입시와 취업 전후가 되면 힘은 배에 가서 붙는다. 이성을 보면 배가 울렁거린다. 몸이 결혼할 때가 되었음을 알려준다. 취업을 하고 힘은 가슴으로 간다. 가정이 경제적으로 안정된 시기에 이르면 명예를 추구한다. 어깨에 바싹 힘이 들어간 장년기를 넘어서면 코끝으로 힘이 갔다가 다시 어깨로 내려앉는다. 폐호흡이 쉽지 않아 어깨가 들썩거려줘야 그나마 숨쉬기 편해진다. 사람에게 붙은 힘을 마지막 순간 토해내면 수명을 다했다고 말한다. 이 모든 과정을 달리면서 정리해낸 과학자가 있다.

<뛰는 사람>을 쓴 베른트 하인리히는 80년을 달린 생물학자다. 그는 장단지에 붙은 힘을 유지하며 자연과 자신의 생체시계를 연구했다. 많은 사람들은 뇌를 중심으로 인간의 심리를 탐구했지만, 베른트 하인리히는 장딴지의 힘을 가지고 생리생태학을 전개했다. 

환경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헨리 데이빗 소로의 ‘월든’을 들었을 것이다. 베른트 하인리히는 우리 시대의 소로, 라고 불리는 생물학자이자 마라토너다. 소로가 서양의 노자라는 별명을 가진 것처럼, 저자는 자신의 책 머리에 순자를 인용하면서 이야기를 이끈다. “나에게 말해준다면 잊을 것이고, 가르쳐주면 기억할 것이며, 참여하게 하면 배울 것이다”

순자의 말을 실천에 옮기듯, 저자는 38세에 캘리포니아주립대 정교수가 되었지만 3년 만에 모든 걸 내려놓고 고향 메인주에 통나무집을 지어 자연으로 돌아갔다. 변변한 실험 기기도 없는 그 숲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논문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그 논문들은 저자가 뛰면서 장딴지에서 길어 올린 경험이고 영감이고 과학이다.

우리는 마라톤이 42.195km 외에도 울트라 마라톤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지 못한다. 저자는 160km를 12시간 27분에 달려 US 오픈 신기록을 세웠다. 252.2km를 24시간 안에 뛰기도 했다. 그는 자연의 한 구성원이자 그가 인용한 전도서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이 일으킨 창조사건 속에 있음을 뛰는 시간으로 확인했다. 

그는 80년을 달리면서 인간의 노화와 DNA를 연구했고, 나무와 곤충을 비롯한 자연의 생명에 감탄했다. 83세가 되던 해인 2022년에는 한국의 한 일간지와 가진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몸에는 상처를 치료할 때 원래대로 몸을 유지하기 위해 작동하는 보수 메커니즘이 있어요. 이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몸이 회복되고 정상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경미한 상처가 자극을 받아 이전보다 더 건강한 상태가 될 수 있거든요. 역노화 과정이 일어나는 거죠.”

자신의 몸과 연결을 지어서 자신의 전문 분야를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눕고 앉고 서고 걷고 달리는 모든 과정이 자신의 전문 분야와 긴밀하게 관계맺고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새삼스럽게 일깨워주고 있다. 오래 전에 분도출판사에서 낸 <일상>이라는 짧은 에세이에서 칼 라너는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일들과 익숙한 삶의 자리에서 신비와 만날 것을 권했었다. 일하는 것, 걷는 것, 앉는 것, 보는 것, 웃는 것, 먹는 것, 자는 것에 관한 에세이가 사뭇 진지했다.

그런데 신학자가 묵상하면서 뱉어낸 말의 영향력은 좀체 감지되지 않는 요즈음, 생물학자가 경험하면서 쏟아낸 말의 영향력이 파장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일까? 칼 라너가 책상에서 묵상했던 데 비하여 저자는 많이 뛰었기 때문이라고 해두자. 바야흐로 수련회 시즌이다. 뛰자.

유성원 목사 (서초 주님의몸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