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나 드라마속의 인물들 중 악인들을 살펴보면 주로 나르시시스트들이다. 아마도 대본을 쓰는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인간의 성격유형, 특히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할 것 같다. 배역 중 반드시 악인이 등장할텐데, 정신과 의사 ‘스캇펙’이 언급한 것처럼 악인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나르시시스트’이기 때문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인공 앤드리아를 괴롭히는 미란다는 자신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기를 주저하지 않고 모욕감을 주는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 상사이다. 영화 ‘서울의 봄’의 전두광(전두환역)은 소시오패스, 반사회적 성격장애 성향도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다 자신을 위해 존재하는, 자신이 이용해도 되는 존재라고 생각하고, 가스라이팅도 잘 하는 분명한 나르시시스트의 모습이다.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넷플릭스에서 시즌 6까지 이어진 인기미국정치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케빈 스페이시가 맡은 주인공 프랭크 언더우드 역은 매력, 카리스마, 자신감, 영리함을 활용하여 사람들을 능수능란하게 조종하는 외향적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 특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정치인중에 나르시시스트가 많다. 자기가 늘 중앙무대에 서있고, 다른 사람은 주변에 앉아 박수를 쳐주기를 바라는 이들이 선호하는 직업군이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2022년 인기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바람을 피운 남편 이태호(박해준)도 나르시시스트이다. 자신이 행한 불륜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합리화시키는 나르시시스트의 뻔뻔한 태도와 아내와 아들을 2년 동아이나 속이고 바람을 피우면서도 가정 안에서 행복한 척 연기하며 아내의 지원을 받으며 살아왔던 나르시시스트였다. 소위 ‘내로남불’이란 말은 나르시시스트에게 가장 적당한 말이다. 이렇듯 영화나 드라마에 나르시시스트가 많이 등장하는데, 사실 나르시시스트에는 4가지의 유형이 있다. 각 유형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거만한 나르시시스트 (grandiose narcissist)

거만한 나르시시스트는 모든 종류의 나르시시스트를 대표하는 표본과 같은 유형으로, 나르시시스트의 전형적인(classic) 특징을 가진다. 우리가 흔히 ‘나르시시스트’ 하면 떠올리는 바로 그 유형으로, 외형적(overt) 나르시시스트라고 부르기도 한다. grandiose는 (실속 없이) 거창하다는 뜻도 있지만, 과대망상을 의미하기도 하다. 거만한 나르시시스트는 과대망상형 나르시시스트라고도 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과대망상(誇大妄想)에 찌들어 자신의 현재상태를 턱없이 과장하여 그것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특히 재물, 권력, 명성 등에 관한 망상을 가지고 있어 자기가 남을 착취할 자격(entitled)이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공감능력이 없고 거만하다. 스스로를 내세우며. 화려하게 보이길 원한다. 명품 옷을 입고 외제차와 화려한 집을 자랑하고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주목받기 좋아하고,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과 관심을 갈구하며, 거창한 자아상에 스스로 도취된 채 “날 좀 봐! 내가 얼마나 대단한지!”하고 거들먹거린다. 이들은 가장 ‘기본’이 되는 나르시시스트이고, 우리가 알고 있는 나르시시스트의 모든 특성을 갖춘 유형이다.

2. 악성 나르시시스트(malignant narcissist)

악성 나르시시스트는 나르시시즘의 가장 위험한 형태이다. 악성 나르시시스트는 거만한 나르시시스트가 가진 모든 특성을 다 가지고 있다. 공감능력의 결여, 자기만 특별하다고 여기는 지나친 권위의식, 거창한 자의식, 청산유수 같은 언변, 오만함과 탐욕, 등의 특성을 동일하게 가지고 있다. 그런데 거기서 더 나아가, 악성 나르시시스트는 거만한 나르시시스트보다 훨씬 문제가 많다. 이들은 거의 사이코패스라고 여겨질 만큼 악의적이고 비열한 나쁜 짓들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사람들이다. 여기에서 ‘나쁜 짓’이란 심각한 범죄수준의 ‘아주 아주 나쁜 짓’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회사의 공금을 횡령하거나 애인과 배우자 몰래 바람을 피우고, 금융사기를 치는 등 엄청난 규모의 범죄를 말한다.

이 악성나르시시스트는 사이코패스와 유사해 보이지만 차이가 있다. 자기 주변사람들에게 나쁜 짓을 하고 나서 아주 약간은 안 좋은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다. 가족들에게 나쁜 짓을 했을 때 미안함과 죄책감을 조금 느끼긴 한다. 하지만 자신과 별 상관없는 희생자들에게 대해서는 전혀 신경을 쓰지는 않는다. 심리학자 존 카트너(John D. Gartner)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파괴적인 성격유형인 ‘악성 나르시시스트’로 규정하면서 트럼프의 편집증과 나르시시즘, 반사회성성격장애, 사디즘(가학증)의 4가지 핵심증상을 언급했다.

3. 내현적 나르시시스트(covert narcissist)

코버트(covert)는 ‘내현적, 내성적, 숨은, 은밀한’ 등 다양한 용어로 번역된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겉으로 보기엔 매우 수줍고 겸손해 보이기까지 해서 좀처럼 알아차리기 힘든 유형의 나르시시스트이다. 외향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지만, 내부적으로는 자신을 특별하다고 느낀다. 이들은 세상이 자신의 위대함을 절대 알아먹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도 자신의 진가를 알아보지 못한다는 환상에 빠져 있다. 이들은 온 세상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느끼고 있어서 늘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 마음속으로는 거만한 나르시시스트와 다르지 않고 여전히 오만한 마음으로 가득한 사람들이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은 주로 남탓을 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훌륭한 사람인데.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았다’며 모든 것을 남탓으로 돌린다. ‘라떼는 말야’ 하면서 은근히 남들을 깍아내리고 타인을 공격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자존감이 없고, 우울증과 분노를 가지고 있다. 굉장히 자신감이 없어 보이기 때문에 격려가 필요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 내면적으로는 거만한 사람들이다. 또한 이들은 비판에 대해서 극단적으로 예민하다. 자신에 대해서 비판하거나 인정을 해주지 않으면 은근히 비꼬면서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수동적인 공격을 잘 한다.

거만한 나르시시스트에 비해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는 알아차리기가 참 힘들다. 아무리 오랜 시간동안 친하게 지내도 내현 나르시시스트의 진짜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이다. 이들이 철저하게 피해자, 희생자, 헌신자의 가면을 쓰기 때문이다. 약자의 포지션을 취하는 내현적 나르시시스트가 가해자이며 학대자라는 사실을 주변사람들도 그리고 피해자 본인도 눈치 채기 쉽지 않다.

4.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 (commual narcissist)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는 스스로 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면서 그것을 내세우며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고아원, 장애인복지시설, 동물보호시설, 환경보호단체 등 각종 시설이나 사회단체에 큰돈을 기부하거나 봉사활동을 하면서 ‘이것봐 내가 얼마나 좋은 일을 했는지, 나는 항상 주는 것을 좋아하는 관대한 사람이야“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봐주길‘ 기대한다. 그런 선행을 통해 ‘나는 타인들보다 우월하다’는 확인과 증명을 보이며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형이다. 이들은 좋은 일을 할때 남몰래 뒤에서 조용하게 선행을 하는 법이 없다. 자신의 선행이 반드시 만천하에 널리 알려져서 각광을 받도록, SNS나 매스컴을 적극 활용한다. 자기가 사회에 기여했다는 광고를 함으로 스스로 타인보다 우월함을 내세우기 위함이다.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가 선행을 하는 목적은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안녕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본인의 인정과 찬사를 받기 위함이다. 그래서 자신의 선한 행동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묻히게 될 경우 이들은 분노한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과대성을 충족시키고 인정과 찬사를 추구한다. 이들은 사회적으로 중요하다고 인정받는 이타적인 행위들을 하면서 자신이 세상을 변화시킬 중대한 일을 한다고 믿는다. 거만한 나르시시스트가 “내가 여기서 제일 돈 많고 잘 나가는 사람이야”라고 생각을 한다면,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는 “내가 여기서 부족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제일 선한 사람이야”라는 생각을 한다. 선행에 그토록 열심을 내는 이들이건만 실제 그들의 행동에서는 엄청난 공감 능력의 결여가 엿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선행 자체가 아니라 ’선행을 베푸는 이렇게 좋은 나‘라는 나르시시즘이 그 본질이기 때문이다.

공동체적 나르시시스트는 종교에 심취한 경우가 많다. 이들은 종교 활동을 통해서 대중들에게 숭배의 대상이 되고자 한다. 대표적으로 사이비 종교 교주들이 이 유형에 해당한다. 또한 힐링 멘토를 자처하며 대중적 인기를 끌었지만, 범죄나 사기 행각이 발각되어 퇴출당한 유명인들도 이런 경우이다.

임석한목사(양정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