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의 도시, 베를린> 이계수, 스리체어스, 2023)

어릴 적엔 만화책<먼나라 이웃나라>를 참 많이 읽었다. 1권 네덜란드 편에는 독특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상한 도둑들이 빈 집에 침입해 24시간을 버티면 경찰도 그 사람들을 쫓아낼 수 없다는 이야기로 기억한다. 못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개정판이 집에 있어 찾아보니 그 부분이 쏙 빠져있다. 네덜란드에서 지난 2010년부터 모든 주택 점거를 금지하는 법률이 시행됐기 때문이다. 그 못된 도둑들은 사실 도둑이 아니라 ‘크라커(kraakers)’라고 불리는 사람들이었다. 네덜란드의 크라커는 빈집을 점거하고 자치 공동체를 이루는 운동을 벌였다. 이들은 버려진 건물을 활용해 주거 공간을 확보하고, 빈집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만들었다. 

1970년대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크라커 운동은 당시 주거난과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집을 점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 공동체를 형성하며 자발적인 주거 문제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이는 주택의 사유화와 부동산 투기 문제를 정면으로 비판하며, 공공재로서의 주택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베를린은 독일 통일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통일 직후 많은 빈집과 버려진 건물이 늘어나면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과 주거 불안정이 심화되었다.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 베를린은 저렴한 주거비로 유명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급격한 임대료 상승과 부동산 투기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거권을 보호하고 주택의 사회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이는 도시가 단순한 부동산 투자 대상이 아니라,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비롯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오늘날 도시 정치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베를린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도입하고 있으며, 시민들의 점거운동과 주택사회화 운동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운동들은 부동산 투기와 젠트리피케이션에 맞서 싸우며, 주거권을 보호하고 도시를 사회적 공간으로 유지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도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모든 도시 거주자들이 도시 공간에 대한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운동들은 주민들이 도시 공간에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며, 이를 위해 주거권과 도시 공간의 사회적 소유를 요구한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단순한 주거권을 넘어, 도시의 중심성에 대한 권리까지 포함한다.

책은 베를린과 유럽의 점거운동과 주택사회화 운동을 통해 한국의 주거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주택의 사유화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는 단순히 지역적 이슈가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책의 사례들은 한국의 주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다. 주거권은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어야 할 기본적인 권리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을 공공재로 인식하고, 사회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특히 전세 사기, 높은 집값, 임대료 상승 등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한국에서 이러한 인식 전환과 정책적 노력이 시급하지 않을까!

노승혁 전도사(색동교회)